[비즈니스포스트] 김재교 한미사이언스 대표이사 부회장이 한미약품그룹의 신약개발 경쟁력을 글로벌 기술수출 성과로 다시 한 번 입증했다.

한미약품은 2015년 프랑스 제약회사 사노피와 국내 제약업계 역대 최대 규모 기술수출을 성사시켰는데 10여년 만에 그룹의 핵심 플랫폼 기술인 '랩스커버리' 기반 신약 후보물질로 글로벌 대형 제약회사로부터 조 단위 계약을 따내면서 ‘연구개발(R&D) 명가’ 이미지를 굳히고 있다.
 
[오늘Who] 한미약품그룹 '신약개발 명가' 이미지 굳건, 첫 외부 출신 대표 김재교 리더십 주목

▲ 한미약품그룹이 전문경영인 체제 전환 이후 기술수출 성과를 거뒀다. 사진은 김재교 한미사이언스 대표이사 부회장. <비즈니스포스트>


김재교 부회장은 한미약품그룹 오너일가가 아닌 외부 출신 첫 전문경영인으로 취임한 뒤 조직 시스템을 '기술수출이 가능성을 높이는 쪽'으로 재정비하는 데 공을 들여왔는데 이런 노력이 성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1일 한미약품이 미국 대형 제약회사인 일라이릴리와 최대 12억6천만 달러(약 1조9천억 원) 규모의 바이오신약 후보물질 소네페글루타이드의 개발, 제조 및 상업화를 위한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한 것은 한미약품그룹이 전문경영인 체제 아래에서도 신약개발 명가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김재교 부회장은 2025년 3월26일 한미약품그룹의 지주회사인 한미사이언스 정기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거쳐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한미약품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뒤 오너일가가 아닌 외부 전문경영인이 지주사 대표를 맡은 첫 사례였다.

김 부회장은 제약 산업과 투자업계를 두루 거친 인물이다. 유한양행에서 약 30년 동안 경영기획과 글로벌전략, 인수합병, 기술수출 업무를 맡았고 2018년 유한양행의 폐암 신약 레이저티닙을 얀센바이오테크에 기술수출하는 과정에도 관여했다. 이후 메리츠증권으로 자리를 옮겨 바이오벤처 발굴과 투자를 이끌었다.

김 부회장의 이력을 보면 한미약품그룹이 신약개발과 사업개발 역량을 함께 강화하려는 방향성에 부합하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신약 후보물질을 보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글로벌 제약사와의 협상, 기술수출, 전략적 투자까지 연결해야 하는 제약바이오 산업 특성을 고려하면 김 부회장의 전문성이 한미약품그룹의 다음 성장 전략과 맞물릴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김 부회장도 취임 직후부터 한미약품그룹의 정체성으로 ‘신약개발 명가’를 강조하면서 조직 개편을 진행했다.

한미사이언스는 김 부회장 체제에서 기획전략본부와 이노베이션본부를 신설했다. 기획전략본부는 그룹과 계열사의 중장기 전략, 신성장 사업 기획, 전략적 투자를 맡는다. 이노베이션본부는 오픈 이노베이션과 라이선싱 전략, 내부 기술 및 제품의 글로벌 사업화 전략을 담당한다.

두 조직은 신약 후보물질을 글로벌 제약사와의 계약으로 연결하는 사업개발 기능과 맞닿아 있다. 후보물질의 임상 데이터와 시장성, 지식재산권, 글로벌 제약사의 개발 전략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계약 구조를 설계하는 역할이다.

이번 일라이릴리 계약은 이런 조직 개편 이후 한미약품그룹의 연구개발 자산과 글로벌 사업개발 전략이 실제 대형 기술수출 성과로 이어진 사례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번에 기술수출을 하게 된 후보물질 소네페글루타이드는 단기간에 새로 발굴된 후보물질이 아니다. 한미약품이 장기간 축적해 온 랩스커버리 플랫폼 기술과 임상 데이터가 결실을 맺은 결과에 가깝다.

그럼에도 김 부회장 체제에서 기존 연구개발 자산이 글로벌 빅파마와의 계약으로 다시 연결됐다는 점은 한미약품그룹의 R&D 중심 정체성이 전문경영인 체제에서도 이어지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이번 계약이 주목되는 이유는 단순히 계약 규모가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미약품의 핵심 플랫폼 기술인 랩스커버리가 2015년 대형 기술수출 이후 부침을 지나 다시 글로벌 제약사의 선택을 받았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랩스커버리는 바이오의약품의 약효 지속 시간을 늘려 투약 편의성을 높이는 한미약품의 독자 플랫폼 기술이다. 한미약품은 이 기술을 당뇨와 비만, 희귀질환, 항암 등 여러 영역의 바이오신약 후보물질에 적용해왔다.

한미약품은 2015년 사노피와 지속형 당뇨 신약 포트폴리오 ‘퀀텀프로젝트’를 기술수출하며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의 기술수출 역사를 새로 썼다. 퀀텀프로젝트는 랩스커버리를 적용해 당뇨치료제의 투약 주기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 바이오신약 후보물질 묶음이다.

당시 계약 규모는 39억 유로, 약 4조8천억 원이었다. 한미약품이 보유한 랩스커버리 플랫폼의 가능성을 글로벌 시장에 각인시킨 계기였다.

같은 해 한미약품은 당시 얀센(현 존슨앤드존슨이노베이티브메디슨)과도 지속형 당뇨·비만 치료 바이오신약 HM12525A 기술수출 계약을 맺었다. 한미약품은 2015년에만 굵직한 기술수출을 잇달아 성사시키며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의 연구개발 위상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후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사노피 계약은 일부 권리 반환과 개발 전략 수정을 겪었고 얀센도 HM12525A의 권리를 반환했다. 한미약품으로서는 대형 기술수출이 계약 체결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후속 임상과 허가, 상업화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점을 경험했다.

이번 일라이릴리 계약은 이런 부침을 지나 한미약품이 다시 랩스커버리 기반 후보물질을 세계적 제약사의 협상 테이블에 올렸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랩스커버리는 이제 기술수출 이력만 있는 플랫폼도 아니다. 한미약품의 호중구감소증 치료 바이오신약 롤론티스는 미국에서 롤베돈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롤론티스는 국내 개발 항암 분야 바이오신약 가운데 처음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시판허가를 받은 제품이다.

롤베돈이 미국에서 상업화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은 한미약품이 랩스커버리를 기술수출, 허가, 판매 경험을 모두 갖춘 플랫폼으로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오늘Who] 한미약품그룹 '신약개발 명가' 이미지 굳건, 첫 외부 출신 대표 김재교 리더십 주목

▲ 한미약품이 일라이릴리와 1조9천억 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사진은 서울시 송파구에 있는 한미약품 사옥. <한미약품>


이번에 일라이릴리가 도입한 소네페글루타이드 역시 랩스커버리가 적용된 후보물질이다.

소네페글루타이드는 GLP-2 유사체 계열 바이오신약 후보물질이다. GLP-2는 장 성장 촉진, 염증 완화, 장 점막 보호와 재생 등에 관여하는 물질이다. 한미약품은 소네페글루타이드를 단장증후군 치료제로 개발하고 있다.

단장증후군은 장 절제나 선천적 요인 등으로 장 길이가 짧아져 영양분과 수분 흡수가 어려워지는 희귀질환이다. 환자 수는 많지 않지만 치료 선택지가 제한적이고 장기간 치료와 영양 관리가 필요한 질환으로 꼽힌다.

일라이릴리가 글로벌 비만·당뇨 치료제 시장을 주도하는 회사라는 점도 한미약품에는 의미가 작지 않다. 일라이릴리는 GLP-1 계열 치료제를 중심으로 대사질환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워왔다. 이런 회사가 한미약품의 GLP-2 후보물질을 도입했다는 것은 한미약품의 펩타이드 설계 역량과 지속형 플랫폼 기술을 다시 평가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이런 평가는 계약금 규모에서 잘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국내 제약바이오 회사들이 글로벌 제약사와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할 때 반환 의무가 없는 선급금은 전체 계약 규모의 2~3%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미약품은 이번 계약에서 반환 의무가 없는 선급금 7500만 달러(약 1100억 원)를 받는다. 전체 계약 규모 12억6천만 달러(약 1조9천억 원)의 약 6.0%에 해당한다.

선급금은 계약 체결과 동시에 지급되는 확정 금액이다. 선급금 비중이 일반적인 기술수출 계약보다 높은 편이라는 점은 일라이릴리가 소네페글루타이드의 개발 가능성과 한미약품의 랩스커버리 플랫폼 경쟁력을 비교적 높게 평가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소네페글루타이드는 비만치료제는 아니다. 하지만 GLP 계열 후보물질이자 펩타이드 기반 바이오신약이라는 점에서 한미약품이 최근 강화하고 있는 비만대사질환, 희귀질환, 항암 분야 신약 포트폴리오와 맞닿아 있다.

한미약품은 랩스커버리를 적용한 에포시페그트루타이드, 에피노페그듀타이드, HM16390 등 후속 후보물질도 개발하고 있다. 에포시페그트루타이드와 에피노페그듀타이드는 비만대사질환 영역에서, HM16390은 항암 영역에서 개발되고 있다.

이번 일라이릴리 계약으로 한미약품은 랩스커버리 기반 후속 파이프라인의 글로벌 협력 가능성도 다시 부각시킬 수 있게 됐다.

한미사이언스 관계자는 “소네페글루타이드 계약은 한미약품그룹이 오랜 기간 축적해 온 플랫폼 기술과 신약 경쟁력을 글로벌 시장에서 재차 입증한 사례”라며 “앞으로도 오픈 이노베이션 및 라이선싱 전략을 강화하고, 연구개발 성과가 글로벌 사업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주사와 사업회사 간 유기적 연계를 공고히 하겠다”고 말했다. 장은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