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금융기관의 공적역할 강화를 강조한 가운데 시중은행들이 중·저신용자를 위한 포용금융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래픽비즈니스포스트>
정부가 금융기관의 공적역할 강화를 강조하면서 포용금융 확대를 주문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다만 은행권이 이미 생산적금융 확대와 가계대출 총량 관리, 고환율 등으로 건전성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포용금융 확대 압박까지 이어지며 포용금융과 건전성 관리 사이 균형점을 찾기 위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은 저축은행과 카드사, 캐피탈사 등 제2금융권 이용 차주를 위한 갈아타기 대출을 선보이며 ‘상생 사다리’ 구축에 힘을 싣고 있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제2금융권 대출을 은행권 중금리 대출로 전환해 중·저신용자의 이자 부담을 덜어주고 신용 개선을 돕겠다는 취지에서다. 은행권에서는 이를 금융 취약계층의 제도권 금융 안착에 기여할 수 있는 주요 포용금융 모델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다.
은행들은 저마다 금리 상한을 정해두고 지원대상 확대, 보증연계 등을 내세운 대환대출(갈아타기대출) 상품을 내놓고 있다.
우리은행은 이번 주 ‘우리WON드림 갈아타기 대출’을 출시한다. 이 상품은 우리금융그룹 카드·캐피탈·저축은행 대출을 이용해온 중·저신용 고객을 대상으로 한다.
특히 우리은행은 신용등급과 관계없이 개인신용대출 금리를 연 7% 이하로 제한하는 ‘대출금리 상한제’를 이번 갈아타기 대출에도 적용한다. 우리은행은 금융 취약계층의 이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올해 1월부터 대출금리 상한제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아울러 대안신용평가모형을 적용해 소득 증빙이 어려운 프리랜서와 주부도 이용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췄다.
신한은행 역시 7월 출시를 목표로 ‘저축은행 대환전용 대출’ 상품을 준비하고 있다. 대상은 재직 기간 1년 이상이면서 연소득 2천만 원 이상인 저축은행 중·저신용 차주다.
이번 상품은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브링업&밸류업’ 프로젝트를 전체 저축은행권으로 확대했다는 점에서 포용금융의 외연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존에는 신한저축은행 고객만을 대상으로 운영했다면 이번에는 지원 대상을 전체 저축은행권으로 넓혀 보다 다양한 차주를 수용하는 것이다. 대출 한도도 5천만 원에서 1억 원으로 두 배 늘린다.
신한금융은 2024년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브링업&밸류업 프로젝트를 통해 약 246억 원 규모의 대출을 실행했다. 앞으로 지원 범위가 확대되는 만큼 취약 차주를 향한 금융 지원 효과도 한층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은 올해 초부터 취약 차주를 위한 대환대출 상품을 새롭게 정비해 운영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3월 제2금융권 대환 전용 상품 ‘KB국민도약대출’을 선보였다. 이 상품은 근로소득자를 대상으로 한 ‘국민희망대출’을 개편한 상품이다.
연소득 및 재직 기한 제한을 없애 지원 대상을 넓혔으며 대출 금리는 연 9.5% 이하로 제한했다. 금융거래 이력이 부족한 고객을 위해 대안정보를 활용한 저신용자 특화 신용평가 모델도 도입했다.
하나은행은 2월부터 서울시와 함께 ‘서울형 사업자대출 갈아타기’ 상품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형 사업자대출 갈아타기 대출은 제2금융권을 포함한 기존 사업자 대출을 서울신용보증재단 보증부 대출로 전환해 주는 상품이다. 지방자치단체 보증이 결합된 덕분에 차주들은 연 2.55~2.75% 수준의 낮은 금리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이처럼 시중은행들이 취약 차주를 위한 대환대출 문턱을 낮추는 배경에는 정부와 금융당국의 포용금융 압박이 자리 잡고 있다. 금융구조 전반의 재설계를 요구하는 당국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은행권도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포용금융은 금융기관의 의무 중 하나”라고 강조하는 등 공개석상에서 금융기관의 공적 책임을 연이어 언급했다. 포용금융 실적을 반영해 금융사를 평가하는 체계 구축을 주문하기도 했다.
▲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포용금융은 금융기관의 의무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금융당국도 중·저신용자 대상 포용금융 정책 강도를 높여갈 방침이다.
21일 금융위원회는 ‘포용금융 전략 추진단’을 6월 출범하고 금융회사별 포용금융최고책임자(CIFO) 도입을 검토할 계획을 밝혔다. 금융 시스템을 전방위로 손질해 공적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추진단은 총괄·정책서민금융·금융산업·신용인프라 등 4개 분과로 구성된다. 초우량 차주 중심의 은행권 금융 구조 개선과 금융 소외계층의 제도권 안 진입을 주요 목표로 세워 뒀다.
아울러 포용금융 실적을 임직원 평가 및 인센티브 체계와 연계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처럼 포용금융을 주요 경영평가 요소로 다루겠다는 뜻이다.
정부와 금융당국의 포용금융 압박 수위가 높아지면서 은행권의 긴장감은 더욱 높아지는 분위기다.
시중은행들이 생산적 금융 확대와 가계대출 총량 관리 강화 등으로 이미 건전성 부담을 안고 있는 가운데 포용금융까지 확대하면 리스크 관리 부담이 가중될 수 있어서다.
갈아타기 대출은 제2금융권 차주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고객 비중이 높다. 경기 둔화 국면에서는 연체율과 대손비용 부담이 일반 신용대출이나 주택담보대출보다 더 커질 수 있다.
은행들이 금리 상한이나 보증부 대출 구조를 활용하더라도 전체적 여신 건전성이 저하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리스크 관리 체계를 충분히 갖춘 만큼 건전성 부담도 일정 수준에서 관리가 가능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중·저신용자 대상 대출이라고 해서 곧바로 건전성 부담으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차주의 상환 능력과 기존 채무 구조를 충분히 심사해 취급하고 있으며 연체율 등 건전성 지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포용금융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수익성, 건전성이 함께 개선되는 방안을 찾겠다고 강조했다.
이억원 위원장은 21일 기자간담회에서 “어떻게 보면 비용도 들고 시간도 가고 번거로운 거지만 수익성과 공공성이 같이 갈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다”며 “부실채권이 정상화하는 과정을 정교화해 고객을 더 많이 늘리면 수익성과 공공성이 함께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해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