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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 레시피] '행복의 나라', 영화가 ‘10·26’을 기억하는 방식들

이현경 muninare@empas.com 2024-08-19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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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 레시피] '행복의 나라', 영화가 ‘10·26’을 기억하는 방식들
▲ ‘행복의 나라’는 허구의 인물과 이야기가 앞의 두 작품보다 훨씬 많이 가미된 작품이다. ‘행복의 나라’는 전반적으로 휴머니즘을 강조하는 이야기를 선호하는 그동안의 필모그래피를 이어가고 있다. 영화 '행복의 나라' 스틸컷. < NEW >
[비즈니스포스트] 역사는 영화의 소재로 자주 소환되곤 한다. 

같은 사건이라도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시선에 따라 해석은 다를 수 있다. 영화가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고정한다면 오히려 위험한 일이 될 것이다. 역사적 소재가 대중 서사에 들어오는 데는 대략 한 세대 정도의 거리가 필요해 보인다. 

1979년 10월26일 발생한 대통령 시해 사건은 보통 ‘10·26’으로 불린다. 이 사건을 본격적으로 처음 다룬 영화는 ‘그때 그 사람들’(임상수, 2005)이다. 이후 ‘남산의 부장들’(우민호, 2020)에 이어 현재 ‘행복의 나라’(추창민, 2024)가 상영 중이다.

이 세 작품은 같은 사건을 다루지만 영화적 스타일도 다르고 초점을 맞춘 부분도 차이가 크다. 

‘행복의 나라’는 허구의 인물과 이야기가 앞의 두 작품보다 훨씬 많이 가미된 작품이다. ‘마파도’, ‘사랑을 놓치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광해, 왕이 된 남자’ 등을 연출한 추창민 감독은 상업영화의 문법에 충실하여 대중들과 교감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행복의 나라’는 전반적으로 휴머니즘을 강조하는 이야기를 선호하는 그동안의 필모그래피를 이어가고 있다. 

10·26의 적극적 가담자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그의 수행비서실장인 박흥주 대령, 박선호 의전과장 등 세 명이다. 위에 언급한 세 작품을 비롯해 ‘제4공화국’ 같은 TV 드라마도 이 점은 동일하다. 영화마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세 명의 관계와 역할은 같다. 

흥미로운 점은 세 편의 영화에서 한 번씩 중심인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때 그 사람들’은 10월 26일 당일의 사건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박선호 의전과장이 모델인 주 과장(한석규)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김 부장(백윤식), 마 대령(김응수)보다 주 과장의 시점을 채택한 이유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무게감을 덜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블랙코미디답게 인물과 사건이 희화화되면서 비판적인 시각으로 그날을 바라본다. 대통령 경호실장이나 비서실장은 총격이 발생하자 숨기 바쁘고 총에 맞은 대통령 옆을 지킨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20대 여대생과 여성 가수였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여성 등장인물(윤여정)의 내레이션은 사건에 연루된 남성들과 시대를 조롱한다.

‘남산의 부장들’은 10·26 발생 40일 전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김재규 중정부장, 차지철 경호실장, 김형욱 전 중정부장이 중심이 되어 박 대통령과 갈등 상황을 보여준다. 

김형욱 역할인 박용각(곽도원)이 미국 하원의 청문회에 참석해 소위 ‘코리아 게이트’에 대해 증언하는 장면부터 배치한 것으로 보아 이 영화는 10·26과 미국의 암묵적인 개입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김규평 중정부장(이병헌)과 박 대통령이 점차 소원해지다가 결정적으로 김 부장이 안가에서 박통의 말을 도청한 후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된다. “친구도 죽인 놈”이라는 비난은 그의 억울함을 폭발시켰다. 도청은 김 부장이 느끼는 실망과 분노를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영화적 설정이다. 

‘행복의 나라’는 중정부장의 수행비서인 박태주(이선균) 대령을 중심에 두고 있다. 

정인후(조정석)라는 변호사가 박태주 대령의 변호를 맡고 그를 구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박태주의 실존 인물 박흥주 대령은 당시 현역 군인이라서 다른 사람들과 달리 1심으로 판결이 나는 상황이었다. 

가공의 인물 정인후는 속물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젊은 변호사였는데 박태주의 변호를 맡으면서 점차 진실과 정의에 대해 고민한다. 사회운동을 하던 목사 아버지를 원망하던 정인후는 박태주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고 오랜 세월 쌓인 앙금을 씻고 아버지와 화해하게 된다.
 
‘행복의 나라’는 논란이 될 만한 요소도 많은 영화다. 실제로 동료들 사이에 신망이 높고 청렴했다고 알려지기는 했지만 박태주의 행동이 옳았는지는 논쟁적이다. ‘명령을 따랐다’는 소신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 곤혹스러운 질문을 던진다. 

정인후가 전상두(유재명)을 찾아가서 박태주 구명을 위해 애원하는 장면도 보기에 따라 문제적이다. 박태주를 살릴 수 있다면 누구와도 손을 잡겠다는 제스처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10·26 사건 직후 참모총장을 태우고 차 안에서 남산과 육본 중 어디로 갈지 망설이는 장면에서 박태주의 역할도 사실과 다를 수 있다. 이런 문제들이 있지만 행복의 나라는 10·26 이후 알려지지 않았던 재판 과정을 복기하려고 시도한 면에서 참신함이 있다.
 
10·26이 발생하기 40일 전부터의 정치적 갈등 상황을 조망한 남산의 부장들, 10·26의 현장을 재현하려 한 그때 그 사람들, 10·26 이후의 재판을 상상한 행복의 나라 이렇게 셋을 합체하면 10·26의 퍼즐이 조금 맞춰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역사에 관한 교과서도 아니고 답안지도 아니다. 행복의 나라는 역사를 소재로 상상력을 펼쳐 본 영화로서 의미를 갖고 있다. 이현경 영화평론가
 
영화평론가이자 영화감독. '씨네21' 영화평론상 수상으로 평론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영화와 인문학 강의를 해오고 있다. 평론집 '영화, 내 맘대로 봐도 괜찮을까?'와 '봉준호 코드', '한국영화감독1',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등의 공저가 있다. 단편영화 '행복엄마의 오디세이'(2013), '어른들은 묵묵부답'(2017), '꿈 그리고 뉘앙스'(2021)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영화에 대해 쓰는 일과 영화를 만드는 일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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