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 백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mRNA 백신과 그 외 백신의 수요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
[비즈니스포스트]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각국 정부는 코로나19 백신을 확보하느라 혈안이 됐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코로나19 백신이 다양해지고 공급도 많아지면서 오히려 백신기업들이 남은 수요를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변이 바이러스도 중요한 변수다. 변이 바이러스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은 코로나19 초기의 특수보다는 못하지만 꾸준한 주문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mRNA 백신보다 개발이 느린 다른 백신은 수요 감소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맞닥뜨리고 있다.
3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세계 코로나19 백신시장에서 mRNA 백신을 제외한 다른 백신들의 설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프랑스 제약사 발네바가 개발한 코로나19 바이러스 불활성화 백신 ‘VLA2001’이 대표적인 사례다. 불활성화 백신은 병을 일으키지 않을 정도로 약화한 병원체를 활용해 면역을 강화하는 백신을 말한다.
VLA2001은 올해 4월 영국에서 조건부 판매 승인을 받았고 6월에는 유럽연합 내 판매를 허가받았다. 하지만 VLA2001에 대한 수요는 그리 많지 않다. 공개된 수주는 유럽연합 차원에서 125만 도즈(1회 접종분) 분량의 사전구매계약을 체결한 것뿐이다. 반면 현재 발네바가 보유한 VLA2001 재고는 800만~1천만 도즈에 이른다.
발네바는 공장 가동을 멈추고 백신 원액을 공급하는 업체와 계약도 종료한 채 잔여 재고 처리에 힘쓰고 있다. 하지만 VLA2001이 아직 추가접종(부스터샷)용으로 승인받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발네바가 백신 유효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재고를 소진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미크론 등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효능을 높인 2세대 백신의 개발 여부도 불투명하다. 발네바는 당초 필요한 자금을 3분기까지 조달한 경우에만 2세대 백신 개발을 진행하겠다고 2분기에 밝혔다. 이후 3분기가 지난 지금까지 ‘잠재적인 파트너와 논의하는 중’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 백신기업 노바백스는 코로나19 합성항원 백신 ‘뉴백소비드’의 승인국가를 계속 확대해왔으나 실적은 오히려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노바백스 매출은 2021년 상반기 2억9800만 달러에서 2022년 상반기 1억8600만 달러로 줄어든 반면 순손실 규모는 3억5200만 달러에서 5억1천만 달러로 커졌다.
노바백스는 백신 수요가 예상에 못 미쳤다며 올해 연간 매출 추정치를 40억~50억 달러에서 20억~23억 달러로 하향 조정했다. 그러나 JP모건은 이같은 추정치도 지나치게 긍정적이라고 평가하고 노바백스 목표주가를 132달러에서 27달러로 낮춰 잡았다. 노바백스 주가는 지난해 12월까지만 해도 200달러 대를 기록했으나 이후 지속해서 하락해 주당 10달러 후반대로 주저앉았다.
노바백스는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오미크론 변이 대응 백신을 개발하고 4분기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는다는 목표를 세웠다. 코로나19와 독감을 함께 예방하는 백신도 개발한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노바백스의 새로운 백신에 대해 큰 기대를 보이지 않고 있다.
투자자문회사 모틀리풀은 “기존 변종을 해결하는 코로나19 백신이 이미 사용 가능한 상황에서 뉴백소비드 판매는 계속 부진할 가능성이 높다”며 “노바백스가 추가적인 자금 조달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코로나19-독감 예방 백신을 개발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좋지 않은 생각이다”고 바라봤다.
국내기업을 보면 SK바이오사이언스가 최근 합성항원 백신 ‘스카이코비원’을 허가받아 국내에서 접종에 들어갔다. 기본 접종뿐 아니라 3차, 4차 접종 등 추가접종도 진행되고 있다.
다만 기존에 공급된 백신보다 늦게 출시된 만큼 접종량 증가가 더디다. 30일 누적 기준으로 모두 1157명이 1~4차 접종을 사전예약했고 실제 접종을 마친 사람은 357명뿐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유럽의약품청(EMA)의 조건부 허가, 세계보건기구(WHO)의 긴급사용목록(EUL) 등재를 신청하는 등 스카이코비원을 국제적으로도 공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발네바와 노바백스의 사례를 고려하면 실제로 의미 있는 수요를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해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SK바이오사이언스의 향후 주가 반등 모멘텀은 코로나19 백신 이외 임상 개발 또는 사업 전략이다”며 “스카이코비원 개발로 지연됐던 폐렴구균 백신 개발 재개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mRNA 백신의 선구자인 화이자·바이오엔텍과 모더나는 빠르게 변이 대응 백신을 내놓으며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미국 FDA는 8월 말 화이자·바이오엔텍과 모더나가 각각 개발한 코로나19 2가 백신을 추가접종용으로 승인했다. 2가 백신은 2가지 바이러스를 한꺼번에 예방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승인된 백신들은 코로나19 초기 바이러스와 오미크론 BA.4·BA.5 바이러스에 대한 예방효과를 갖췄다. 오미크론 BA.4·BA.5 바이러스는 현재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우세종으로 자리잡은 변종으로 파악된다.
각국 정부는 코로나19 초기 바이러스 예방용으로 개발된 기존 백신 대신 변이 대응 백신을 확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10월부터 변이 대응 백신 접종이 시작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화이자·바이오엔텍과 모더나가 이처럼 다른 기업들보다 신속하게 새로운 백신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mRNA 플랫폼기술이 빠른 개발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mRNA는 체내 면역체계 형성에 필요한 항원 단백질의 설계도를 세포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 mRNA의 유전정보만 바꿔주면 새로운 질병에 대응할 수 있게 된다.
물론 mRNA 백신이라고 해도 백신 수요 감소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유럽 금융서비스그룹 ODDO BHF는 최근 바이오엔텍의 2022년 코로나19 백신 매출 예상치를 기존보다 28% 축소된 141억 유로(약 19조5천억 원)로 조정했다. 바이오엔텍은 2021년 mRNA 백신 판매에 힘입어 매출 190억 유로를 거뒀었다.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