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Who Is ?]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전해철은 문재인정부의 세 번째 행정안전부 장관이다.

‘경찰개혁’을 완수해 문재인정부 권력기관 개혁의 마침표를 찍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보건복지부와 함께 코로나19 방역 일선에 나서는 부처인 만큼 코로나19 상황을 관리하는 데도 관심을 쏟고 있다.

1962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다.

마산중앙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29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을 19기로 수료했다.

변호사로 개업한 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몸 담았던 법무법인 해마루종합법률사무소에 합류하면서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대통령후보 선거대책위원회 법률지원단 간사를 맡았고 노 전 대통령이 당선된 뒤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노무현정부에서 청와대 민정비서관, 대통령 정무특별보좌관을 지냈다.

18대 총선에서 경기 안산시 상록구갑에 통합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낙선했지만 19대~21대 총선에서 내리 세 번 같은 지역구에서 당선됐다.

노무현정부 청와대 시절 문재인 대통령과 오랫동안 함께 일했다. 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3철’의 한 사람으로 친문재인계 핵심인사로 꼽힌다.

참모시절 입이 무겁고 조용하게 움직이는 업무 스타일로 문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다.

자기관리에 엄격하다. 정치인으로 활동하는 동안 별다른 구설에 오른 적이 없다.

경영활동의 공과
[Who Is ?]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전해철 신임 행정안전부 장관이 2020년 12월29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국무위원 임명장 수여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행정안전부 장관 취임
문재인 정부에서 세 번째 행정안전부 장관에 임명됐다.

전해철은 2020년 12월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비대면 온라인으로 진행된 취임식에서 “위기 상황을 발판 삼아 국민 모두가 안전하고 골고루 잘 사는 나라를 구현해갔으면 한다”며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12월4일 전해철을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지명했다.

정만호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전해철을 두고 “국회에서 권력기관 개혁, 과거사 진상규명, 사법개혁 등을 위해 노력해온 변호사 출신의 3선 국회의원”이라며 “그동안 지방자치법, 지방세기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는 등 지방분권과 지방재정, 지역균형발전 등 지방자치 발전에 기여해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말했다.

정 수석은 “돌파력과 리더십, 당정청의 다양한 국정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 재난관리체계의 강화, 실질적 자치분권 실현, 정부혁신 등의 국정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특히 지역균형뉴딜을 통해 중앙과 지방 사이 균형발전을 잘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전해철이 친문재인계 핵심으로 꼽히는 까닭에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야당의 파상공세가 예상되기도 했지만 비교적 무난히 인사청문경과보고서가 채택됐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인사청문보고서에서 전해철을 놓고 "후보자가 3선 국회의원,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국정 전반에 대해 쌓은 경험이 행안부 장관 직무를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고위공직자 인사 배제의 7대 원칙에 위배되지도 않는다"고 평가했다.

다만 "현역 의원이자 대통령 핵심 측근으로 내년 재보궐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 2006년 구입한 아파트에 실거주하지 않고 막대한 시세 차익을 얻은 점 등은 공직자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다는 의견도 있다"고 덧붙였다.

전해철은 장관에 오르며 중앙재해대책본부 2차장도 함께 맡게 됐다.

2021년 1월11일 코로나19 예방접종 지원단을 구성해 본격 가동하기로 했다. 전해철은 "질병청, 지자체 등 관계기관과 긴밀한 협조체계를 유지하고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사전에 꼼꼼히 점검해 국민이 안심하고 신속하게 백신을 접종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21대 국회 민주당 첫 원내대표 도전 실패
전해철은 제 21대 총선에서 180석이 넘는 의석을 얻어 거대여당이 된 민주당의 첫 원내대표를 노렸지만 고배를 마셨다.

전해철은 2020년 4월2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들이 문재인 정부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고 개혁과제를 완수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줬다. 이제 시대적·역사적 과제 실현은 민주당의 몫"이라며 원내대표 경선 출마 뜻을 밝혔다.

3선인 전해철과 함께 4선인 김태년·정성호 의원이 원내대표 경선에 도전했다.

김 의원은 친문 당권파, 정 의원은 계파색 옅은 비주류 세력, 전해철은 핵심 친문으로 분류됐다.

2020년 5월7일 경선 1차 투표 결과 전해철은 163표 가운데 과반에 못미치는 72표를 얻는 데 그쳐 낙선했다.

김태년 의원은 과반을 넘는 82표를 얻어 1차 투표에서 원내대표에 선출됐다. 정성호 의원은 9표를 받는 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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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철(왼쪽부터), 양기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지사 경선 후보가 2018년 4월17일 SBS에서 TV토론회 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전해철 블로그>

△민주당 경기도지사후보 경선 출마
전해철은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경기도지사후보 경선에 출마했지만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전해철은 2018년 1월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지방선거 승리가 매우 중요하다”며 “경기도지사 경선 준비에 매진하겠다”며 출마를 선언했다.

이날 전해철은 민주당 경기도당위원장을 사퇴했다.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면 선거 120일 전까지 도당위원장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다.

당내 경선 과정에서 전해철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당시 경기도 성남시장으로 있던 이재명 지사였다.

이 지사는 2017년에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도 출마한 적이 있는 만큼 인지도 측면에서 전해철을 앞선 것으로 평가됐다. 반면 전해철은 친문 핵심으로 꼽히며 권리당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강점을 지니고 있었다.

전해철은 경선 과정에서 이른바 ‘혜경궁 김씨’(‘정의를 위하여’ @08_hkkim) 계정을 경기도 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하기도 했다.

혜경궁 김씨가 전해철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등에 비방 글을 올렸다는 이유에서다.

전해철은 2018년 4월8일 “계정 주인이 누구인지, 왜 그런 패륜적 글을 썼는지에 관해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해 고발조치했다”고 말했다.

당시 혜경궁 김씨 계정이 이재명 지사의 부인 김혜경씨의 것이란 의혹이 나오던 터였다.

혜경궁 김씨 계정과 관련한 수사는 경선이 끝날 때까지 종결되지 않았다.

민주당이 2018년 4월18~20일 실시한 경기지사후보 경선 결과 전해철은 1차 투표에서 36.80%의 득표율에 그치며 59.96%를 얻으며 과반을 확보한 이 지사에 밀렸다. 경기도지사 선거 본선에서도 이 지사가 최종 승리를 거머줬다.

혜경궁 김씨 사건과 관련해 경찰은 이 지사 아내 김혜경씨를 해당 트위터 계정 소유주로 보고 검찰에 송치했으나 검찰은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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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2017년 4월 문재인 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함께 목포신항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고 있다.<전해철 블로그>

△정치활동
전해철은 노무현 대통령후보 대선캠프의 법률지원단 간사를 맡으며 정계에 발을 들였다.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직후 공직을 맡지 않고 변호사로 복귀했지만 참여정부 출범 2년차인 2006년에 민정비서관으로 청와대에 합류했다. 2년 뒤인 2006년에는 민정수석에 올랐는데 이 때 전해철의 나이는 만 44로 역대 최연소 민정수석 기록을 썼다.

전해철은 블로그에서 “청와대에서 민정수석으로 있으면서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 등 권력기관이 법률과 규정에 따른 역할을 하도록 하고 배심원제의 일종인 국민참여재판이 시행되도록 법제화했다. 부패방지를 위한 제도와 시스템의 구축을 위해 국가청렴위원회를 설치했다”고 썼다.

이후 19~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내리 당선되며 2012년부터 현재까지 국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앞서 2008년 18대 총선에서 경기 안산시 상록구갑 선거구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이후 민주통합당의 안산시 상록구갑 지역위원장을 맡아 지역구 관리를 계속했고 2012년 19대 총선에서 이 지역구의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해 60.76%의 표를 얻어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초선이었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야당 간사를 맡아 수문장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대 국회 전반기에 국정원 국정조사특별위원회, 국정원 개혁특별위원회 위원을 했고 2014년 ‘국정원 간첩조작사건’에 관한 특검 도입을 1호 의안으로 통과시키는 일도 주도했다.

20대 국회에서는 당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민조사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아 전 대통령 박근혜씨와 얽힌 비선실세 의혹 등을 파헤치며 탄핵을 이끌어내는 데도 기여했다.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문재인 후보캠프의 공동 조직특보단장을 맡았다.
[Who Is ?]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전해철 민주통합당 의원(오른쪽)이 2012년 9월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경선 승리를 축하하며 함께 손을 들고 있다. <전해철 블로그>

△변호사 활동
전해철은 1987년 제29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 자격을 얻었다.

1993년 육군 법무병과 검찰관으로 제대한 뒤 본격적으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변호사 개업 뒤 법무법인 해마루종합법률사무소에 합류했고 해마루 안산사무소를 설립했다. 해마루종합법률사무소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천정배 전 의원 등이 함께 설립했는데 여기서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됐다.

안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는 동안 외국인노동자, 산업재해 피해 노동자들을 위한 상담과 변론을 하고 안산시 고문변호사로 일했다.

2000년 ‘수지 킴사건’을 의뢰받아 수지 킴의 유가족이 배상을 받도록 하는 판결을 이끌어냈다.

수지 킴사건은 국가기관이 남편에게 무참히 살해된 수지 킴을 간첩으로 만든 사건이다.

당시 수지 킴의 남편은 아내를 살해한 뒤 이를 무마하기 위해 아내를 간첩으로 몰았는데 전두환 정권이 이를 간첩조작사건을 만들어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수지 킴을 간첩이라고 선전했다.

이 과정에서 고문을 받은 수지 킴의 아버지는 후유증으로 사망했고 유가족들은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

3년 동안의 법정 싸움 끝에 수지 킴의 남편이 살인범으로 구속되고 유가족은 배상을 받을 수 있었다.

비전과 과제/평가

◆ 비전과 과제


문재인 정부 권력기관 개혁에 마침표를 찍는 일이 가장 중요한 과제다.

행전안전부가 경찰을 담당하는 주무부처인 만큼 전해철은 경찰이 넘겨받는 권한을 잘 행사하고 권력 남용이 벌어지지 않도록 통제해야 한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직접수사는 대폭 제한되는 반면 경찰은 수사종결권을 얻는 등 전보다 많은 수사권한을 쥐게 됐다.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 역시 경찰로 이관됐다.

권한이 커진 만큼 기존 검찰이나 국정원이 했던 일들을 경찰이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막대한 권한을 남용하지 않고 올바로 행사하게 될 지, 우려의 시선이 나오는 터라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며 제도를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중앙재해대책본부 제2차장을 맡는 행안부 장관으로서 코로나19 방역에 관한 질서 유지의 책무도 감당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태가 지속되며 여전히 전국적 재난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고 코로나19에 수반될 수 있는 각종 혼란 상황을 적절히 통제해 국민이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행정력을 발휘해야 한다.

정치인 장관인 전해철의 다음 정치적 단계로는 이미 도전한 적이 있는 경기도지사와 당대표 등이 꼽힌다.

친문재인계 핵심인물로 친문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점과 함께 장관으로서 경력을 더해진 덕분에 이전보다 경쟁력이 높아졌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만약 현직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대선 도전 등으로 2022년 열리는 지방선거에서 도지사에 출마하지 않는다면 전해철로서도 경기도지사 재도전을 유력하게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 평가

소탈한 성품에 기획력과 상황 판단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3철(전해철, 양정철, 이호철 등 이름에 ’철‘자가 들어가는 문재인 대통령 최측근)’으로 불리며 친문재인 핵심인사로 꼽힌다.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있을 때 민정비서관을 지냈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있을 때는 민정수석으로 함께 일했다.

민정수석 당시 전해철의 나이는 44세로 역대 최연소였다.

참모시절 입이 무겁고 조용하게 움직이는 업무 스타일로 문 대통령의 신임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전해철은 2017년 방영된 MBN의 방송 프로그램 ‘판도라’에서 정두언 전 의원으로부터 ‘진짜 실세 맞냐’는 질문을 받고 “실세가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는 사람을 정의하는 거라면 실세가 맞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자기관리에도 철저한 편으로 정치을 길으면서 별다른 구설에 오르지 않았다.

친문 핵심인 까닭에 행정안전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의 날선 검증이 예상됐지만 특별한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아 비교적 무난하게 통과된 점도 평소 처신을 잘한 덕분이란 말이 나온다.

아버지는 평양 출신으로 6.25전쟁 때 전남 목포로 내려왔다고 한다. 전해철은 어린 시절 목포에 살다 가세가 기울어 경남 마산에서 직장생활하던 큰 형에게 의탁해 마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사법시험을 1987년에 치러 합격했는데 수험생활 때문에 87민주대항쟁을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 없는 처지였다며 시대적 아픔을 함께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표시하기도 했다.

사건사고


△행정안전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부동산과 자녀 의혹
2020년 12월 국회에서 열린 전해철의 행정안전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부동산과 자녀 관련 의혹이 나왔다.

전해철은 2003년에 매입한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주상복합아파트(약 43평)가 있는데도 50평 아파트에 전세를 살았다는 야권의 비판을 받았다.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은 “43평 아파트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50평 아파트 전세로 옮겼다‘며 ”대통령은 13평에 4명도 살 수 있다고 했는데 친문 핵심인 후보자가 ’43평이 좀 그래서 50평으로 옮겼다‘고 한다면 국민 정서에 안 맞지 않느냐“고 따졌다.

경기도 안산을 지역구인데 아들을 서울 강남에 살게 한 것을 놓고도 야당의 공세를 받았다.

전해철은 “자녀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강남에서 생활했고 나도 서울 서초구에서 변호사를 했다”며 “이사할 때 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이라 안산으로 전학하는 게 현실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전해철의 아들이 척추측만증으로 5급 전시근로역(면제) 판정을 받은 사실에도 의혹이 제기됐다. 애초 4급 판정을 받고 공익근무요원 소집 대상으로 분류됐는데 4주 군사훈련을 받기 위해 신병교육대에 입소한 뒤 받은 신체검사에서 5급 전시근로역 판정을 받고 귀가조치됐다.

최춘식 국민의힘 의원은 “4급 판정을 받아 입소했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귀가조치를 한 것은 보기 힘든 일”이라며 “굉장히 이례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에 전해철은 “척추측만증은 척추가 휜 도수에 다라 4급이냐 5급이냐 판정을 하는데 아들은 4급과 5급의 경계에 있었다”라며 “5급 판정을 받아서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적어도 공정하게 판정받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력/학력/가족
◆ 경력
[Who Is ?]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전해철 민정수석비서관(오른쪽)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업무 보고하는 모습. <전해철 블로그>

1990년 사법연수원 제19기를 수료했다.

1993년 법무법인 해마루종합법률사무소(안산)를 설립했다.

1996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외협력위원장을 맡았다.

1999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언론위원장에 올랐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후보 선거대책위원회 법률지원단 간사에 임명됐다.

2004년 청와대 민정비서관에 발탁됐다.

2006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에 올랐다.

2007년 대통령 정무특별보좌관에 임명됐다.

2008년 법무법인 해마루 대표변호사에 올랐다.

2008년 민주통합당 안산시상록구갑 지역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12년 안산시상록구갑 선거구에서 제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세월호특별법준비위원회 간사를 맡았다.

2016년 안산시상록구갑 선거구에서 제20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16년~2018년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위원장을 지냈다.

2016~2017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을 역임했다.

2020년 안산시 상록구갑 선거구에서 제21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20년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장에 올랐다.

2020년 12월 행정안전부 장관에 임명됐다.

◆ 학력
[Who Is ?]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전해철이 1985년 2월25일 고려대학교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전해철 블로그>

1981년 마산중앙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5년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1998년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 가족관계

배우자 장선희씨와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 상훈

2016년 모범국회의원대상을 받았다.

2018년 대한민국 반부패청렴대상을 수상했다.

2019년 2018 입법 및 정책개발 우수국회의원에 선정됐다.

◆ 기타

2020년 12월 국회 인사청문요청안을 보면 전해철은 본인과 배우자, 두 자녀 등의 명의로 39억6025만 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본인 명의로 예금 22억1040만 원, 2대의 국산 자동차, 채권 등 28억4953만 원을 보유하고 있다. 배우자 명의 재산으로는 5억9000만 원 가액으로 신고한 경기 안산 상록구 아파트 1채, 경북 김천의 논, 충남 서산 임야, 경기 남양주 임야, 경기 양평 임야, 인천 서구 도로, 경기 안산 상록구 상가 임차권 보증금, 예금 등 8억586만 원을 신고했다.

장녀는 서울 용산구 오피스텔 전세금 2억9400만 원과 국산차 1대, 예금, 채무 등을 포함해 2억672만 원, 장남은 서울 성북구 빌라 전세금 1억6000만 원과 국산차 1대, 예금, 채무 등 9812만 원을 신고했다.

육군 법무병과로 복무해 중위 전역했다.

‘함께한 시간, 역사가 되다’(2018)를 출간했다.

어록
[Who Is ?]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전해철 장관의 학창시절 사진. <전해철 블로그>

“위기 상황을 발판 삼아 국민 모두가 안전하고 골고루 잘 사는 나라를 구현해갔으면 한다.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2020/ 12/24, 정부세종청사에서 비대면으로 진행된 취임식에서)

"국민들이 문재인 정부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고 개혁과제를 완수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줬다. 이제 시대적·역사적 과제 실현은 민주당의 몫이다." (2020/4/28, 국회에서 원내대표 경선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는 국가사법체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함은 물론 국론분열 방지와 국민의 불필요한 사법비용 낭비 방지를 위해서도 반드시 우리 정부가 이뤄내야 할 개혁과제다.” (2019/03/21,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서)

"일명 '드루킹' 사건을 이용한 야당의 정치공세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2018/04/19, 페이스북에서)

“4년이 흘렀지만 그날의 충격과 아픔은 여전하고 아직 세월호 문제도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2018/04/11, 세월호 4주기 행사 '중구난방-세월호 세대가 꿈꾸는 나라다운 나라'에 참석해)

"이재명 후보의 잇따른 토론 및 방송 출연 회피로 더불어민주당의 경기도지사 경선이 후보자의 정책과 자질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하는 ‘깜깜이’선거가 되고 있다." (2018/04/10, 페이스북에서)

"경기도에서 먼저 유리천장을 깨겠다. 지금껏 경기도 부지사 중에서 여성은 한 명도 없었다. 부지사 3명 중에서 1명은 여성부지사로 임명하겠다." (2018/03/24, 페이스북에서)

"경기도지사 출마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2017/10/11, U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서)

“이른바 3철, 친노 패권, 비선 실세 프레임에 굉장히 힘들었다. 이제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좀더 자유롭게 현실정치에 나서려 한다.” (2017/06/07, 한겨레 인터뷰에서)

"민생 경제 등 경제가 어렵다. 또한, 남북 관계가 경색되고 있고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정권 교체를 해야만이 더불어민주당이 충분한 정책적 대안을 제시해 국민들에게 필요한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정권 교체를 위해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정비되고 또한 혁신되는 게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경기도당 위원장에 출마했다." (2016/07/27, OBS 인터뷰에서)

“참여정부 때는 민정수석실, 또는 조사심의관실을 통해 보고를 받기 때문에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처럼 비선을 통해 정보가 새나갈 수 없었다.” (2012/04/02,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서)

“신문사주들의 비리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러 누군가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법률 개정 촉구서를 냈다.” (1999/10/13,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정기간행물 등록에 관한 법률 개정을 국회에 촉구한 배경을 설명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