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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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양하 전 한샘 대표이사 회장.
입사 15년 만에 대표이사를 맡아 국내 최장수 전문경영인으로 24년 동안 한샘을 이끌었다가 2019년 10월31일 물러났다.
한샘을 ‘공간을 파는 기업’으로 규정하면서 가구와 생활용품, 소형가전 등을 모두 파는 종합 홈인테리어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이케아의 국내진출에도 맞서 성장세를 이끌었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 중국진출에도 공을 들였다.
1949년 10월7일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했다.
대우중공업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뒤 한샘에 경력사원으로 입사해 대표이사 회장까지 올랐다. 한샘 창업주인 조창걸 명예회장의 전폭적 지지와 신뢰를 받았다.
한샘 매출은 그가 대표이사에 오를 당시 1천억 원 수준에 불과했으나 2017년 2조 원까지 불어났다. 매출 2조 원을 돌파한 건 국내 가구회사 가운데 최초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경영철학으로 현장을 중시한다. 강한 추진력으로 '탱크형 리더'라는 평가를 받는다.
- 경영활동의 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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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국내 가구회사 최초로 매출 2조 원 돌파
한샘은 2017년 국내 가구회사 가운데 처음으로 매출 2조 원을 돌파했다. 온라인 판매사업 호조에 힘입어 2013년 매출 1조 원을 넘긴 지 4년 만이다.
업계 2~3위와 격차도 크다. 2위 현대리바트의 2017년 매출은 1조 원도 되지 않는다.
회사 규모도 커졌다. 2014년 1800여 명이던 한샘 임직원은 이제 2800여 명에 이른다.
다만 2017년 영업이익은 1405억 원으로 뒷걸음질했다. 하반기에 사내 성폭행 사건이 터지면서 여론이 악화돼 주요 매출처였던 홈쇼핑에서 판매를 거의 하지 못한 탓이다.
△국내 최장수 전문경영인, 샐러리맨 신화
최양하는 2018년 3월 연임을 확정하면서 2021년까지 한샘을 이끌게 됐다. 그는 국내 최장수 전문경영인으로 25년 동안 한샘 대표이사를 지내고 있다.
최양하가 장수한 비결로 실적이 꼽힌다. 입사 15년 만인 1994년 대표이사에 오른 뒤 당시 매출 1천억 원의 한샘을 2017년 기준 매출 2조 원 규모로 키웠다.
한샘은 초창기에 단순히 가구를 파는 가구회사였으나 현재는 종합 홈인테리어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최양하는 '한샘은 공간을 파는 기업’이라는 지론을 지니고 있다.
최양하는 1973년 대우중공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 뒤 1979년 작은 주방가구회사 한샘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생산과장으로 입사했는데 입사하자마자 공장의 생산방식을 자동화하는 데 주력했다.
그 뒤 조창걸 명예회장의 눈에 띄어 1994년 대표이사에 올랐다.
한샘은 1997년 인테리어 가구사업, 2000년대 후반 건자재사업에 진출하며 성공적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보했고 현재 전국 300여 개 대리점과 대형 직영 전시장인 플래그십스토어 9개, 27개의 키친&바스 전시장, 11개의 리하우스 전시장, 한샘몰 등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유통망을 갖추고 있다.▲ 한샘 실적
최양하는 ‘가장 힘들 때가 기회’라는 경영철학을 내세운다. 1994년 한샘의 전문경영인 회장에 오른 뒤 외부에서 위기가 닥칠 때마다 새 수익원을 찾는 방식으로 돌파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투자를 줄였던 경쟁회사 CEO들과 달리 주방가구에서 거실과 욕실 등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대형 직영매장인 ‘한샘플래그숍’의 첫 매장이 이때 문을 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도 전국의 인테리어 사업자들과 협업해 제품을 유통하는 ‘한샘IK’와 사무가구 전문인 ‘비츠’ 등 가구·인테리어 브랜드를 대폭 확대했다.
2014년 이케아가 2014년 한국에 진출하자 권영걸 전 서울시 디자인서울 총괄본부장을 최고디자인책임자(CDO) 사장으로 영입해 디자인의 고급화로 차별화에 성공했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한샘은 올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건자재패키지와 중국시장 진출이라는 신규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며 “어떤 여건이라도 그것을 활용해 성장한 것이 한샘의 저력이자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 비전과 과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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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전과 과제▲ 2014년 3월5일 오전 서울 강서구 화곡동 한샘 플래그샵 목동점에서 열린 '프리미엄 홈 인테리어 한샘 플래그샵 론칭 기자간담회'에서 최양하 한샘 대표이사 회장이 취재진과 플래그샵 투어를 하고 있다.
한샘은 2017년 하반기 중국에 매장을 열고 B2C(기업-소비자간 거래)사업을 본격화하기로 했다. 2016년 2월에는 300억 원을 들여 상하이법인(한샘 가구 유한공사)도 설립했다. 대형직매장 신규출점 대신 대형 표준매장을 육성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꾸기도 했다.
최양하는 사내 성폭력 사태로 추락한 한샘의 이미지도 다시 끌어올려야 한다. 2017년 사내 성폭력 사건이 알려지면서 한샘은 큰 타격을 입었다. 당시 소비자들이 불매운동을 벌이면서 주요 매출처였던 홈쇼핑에서 거의 판매를 하지 못한 탓이다.
최양하는 성폭력 사태 직후 대표이사 직속의 기업문화실을 신설해 성추행, 사내 폭언 등에 대한 중대 위반자 엄중 징계 등의 방안을 내놨다.
◆ 평가
한샘 창업주인 조창걸 명예회장으로부터 전폭적 지지와 신뢰를 받고 있다. 강한 추진력과 행동력을 가진 ‘탱크형 리더’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의사결정이 빠르고 솔직하며 직선적 화법을 구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IMF위기가 닥칠 당시 ‘홈인테리어 패키지’라는 개념을 선보였다. 가구만 파는 데 그치지 않고 ‘전문시공 서비스’를 같이 도입한 것이다.
최양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한샘을 유통회사로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인테리어유통사업인 ‘한샘IK’를 선보였다. 한샘IK는 전국의 인테리어사업자들과 제휴해 부엌가구와 일반가구, 욕실공사, 건자재까지 공급하는 유통사업 시스템이다. 한샘IK 인기에 한샘 매출은 2008년 5천억 원 수준에서 2013년 1조 원을 돌파했다.
어려운 시절일수록 기회는 더 크다는 것이 최양하의 경영철학이다. 최양하는 “가장 힘들 때가 기회”라고 말한다.
영업경험을 매우 중요시한다. "전 직원이 영업을 해봐야 생산부터 물류, 시공 프로세스를 이해할 수 있다"는 최양하의 뜻에 따라 직영매장과 대리점 등을 돌며 영업목표를 부여받는다.
'탁월함에 대한 도전'을 모토로 삼고 있으며 '성공이란 그 분야 최고가 되는 것'이라는 지론을 펼친다.
등산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말이면 회사 임직원들과 산에 오르고 공채 신입사원 입문교육 일정의 마지막을 태백산 야간등반으로 마무리한다.
평소에 '답은 현장에 있다'고 강조하며 매주 금요일이면 직매장, 시공현장, 물류현장 등을 직접 방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양하는 과거 대우중공업에서 작은 주방가구회사인 한샘으로 이직을 놓고 “대기업을 일궈보고 싶은 게 샐러리맨들의 꿈이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부모님과 아내는 이직을 반대했다고 한다.▲ 2014년 3월11일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조직위원회가 인천 송도 미추홀타워에서 한샘과 인천아시안게임 공식후원 계약을 체결했다. 권경상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조직위원회 사무총장과 최양하 한샘 대표이사 회장(오른쪽 세번째) 및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건사고
- 경력/학력/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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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력
▲ 최양하(오른쪽) 한샘 대표이사 회장이 2015년3월18일 코엑스에서 열린 제 42회 상공의 날 기념식에서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1979년 한샘에 경력직으로 입사해 1994년 한샘 대표이사 전무, 1997년 한샘 대표이사 사장, 2004년 한샘 대표이사 부회장을 역임했다.
2009년부터 한샘 대표이사 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임기만료일은 2021년 3월까지다.
◆ 학력
1968년 서울 보성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3년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했다.
◆ 가족관계
부인 원유란씨와 2남을 두고 있다.
◆ 상훈
2015년 제42회 상공의 날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2014년 제23회 전문경영인 부문 다산경영상을 수상했다.
◆ 기타
2017년 가전·가구업계와 중소중견기업 상장사 현직 임원 가운데 가장 많은 25억 원의 보수를 받았다. 최양하는 한샘으로부터 급여 18억5400만 원, 상여 2억9700만 원, 특별·목표(PI) 성과급 3억5900만 원 등 모두 25억1100만 원을 받았다.
한샘 지분 3.95%를 보유하고 있다.
-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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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양하 한샘 대표이사 회장(오른쪽)이 2017년 12월11일 상암사옥 첫 출근날 직원들에게 직원들에게 샌드위치를 나눠주고 있다.<한샘 블로그>
“일 중심, 성과 중심으로 성장하다 보니 내부 소통을 소홀히 했다. 비정상의 정상화는 물론 새로운 기업문화 구축을 위해 노력하겠다.”(2018/03/16, 한샘 주주총회에서)
“기업이 성장한다는 것은 수많은 난관을 뚫고 헤쳐 나가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느끼게 한 2017년이었다. 지난 한 해를 반성하고 희망찬 새해를 설계하자.”(2018/01/02, 신년사에서)
“최근 일들로 많은 분이 참담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회사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임직원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과한다. 당사자 간 사실 관계를 떠나 그런 일이 회사에서 발생한 것과 상황이 이렇게 되기까지 직원을 적극적으로 돌보지 못한 점에 대해 뼈아프게 생각한다.”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직원을 제2, 제3의 피해로부터 보호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확실한 진상이 파악되는 대로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2017/11/4, 한샘 임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한샘은 올해와 같은 어려운 여건에도 건자재 패키지사업, 중국시장 진출이라는 신규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여건에 따른 성장이 아니라 어떠한 여건이라도 그 여건을 활용해서 성장해 온 것이 우리의 저력이자 경쟁력이다."(2017/01/02, 신년사에서)
“포부가 참 컸다. 한번 신흥재벌을 일궈보고 싶은 게 샐러리맨들의 꿈이었다. 부모님과 아내가 반대했지만 한번 꿈을 펼쳐보자고 생각하고 회사를 옮겼다.”(2016/11/23,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한샘은 주거환경을 개선해 인류에 공헌하는 기업이 될 것이다. 전 세계인의 집을 가장 가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으로 만들어 가겠다."(2016/11/23,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한샘은 이케아보다 비싸다. 대신 고객과 직접 판매 상담을 하고 배송까지 해준다. 상품이 아니라 서비스를 파는 것이다."(2016/07/02,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제품보다 서비스 자체가 경쟁력이냐는 질문에)
"내장재부터 가구, 소형가전까지 모두 한샘의 제품으로 집 안을 꾸밀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꿈이다."(2016/04/01,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현재 중국 홈인테리어 시장은 가구, 건재를 합쳐 총 750조원 규모로 추정되지만 아직 어느 글로벌 기업도 가구 부분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중국 현지에 맞게 차별화된 상품, 유통·마케팅·서비스 차별화로 750조원의 중국 홈인테리어 시장을 공략하겠다."(2016/04/01,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한샘은 1970년 설립 때부터 세계 최강의 가구기업이 되겠다는 꿈이 있었다. 이런 비전을 바탕으로 매출 1천억 원 달성에 20년, 1조 원 달성에 40년이 걸렸다. 홈데포와 이케아를 합친 사업모델로 세계 최대의 글로벌 홈인테리어 기업을 만들겠다.”(2016/01/29, 한국공학한림원 강연에서)
"한샘의 미래는 중국시장에 달려있다. 성공할 수 있다는 의지를 갖고 (중국 시장에) 도전을 해야 한다."(2016/01/04, 신년사에서)
“올해는 세계 최강의 기업에 도전하는 원년으로 국내 1위에 안주하지 않고 세계 최고의 제품과 마케팅, 기업문화를 만들겠다. 우리의 가장 큰 적은 업계 1위라는 자만심이다. 국내 1위에 안주하지 말고 외부 기업들을 벤치마킹해 세계최고를 지향해야 한다.”(2016/01/04, 신년사에서)
“이케아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대형매장에 한정된 비즈니스 모델, 택배와 시공서비스 부재 등 단점도 있다. 반면 한샘은 택배와 시공서비스는 물론 직매장, 인테리어, 온라인, 홈쇼핑 등 다양한 유통채널을 갖추고 있고 품질도 이케아보다 좋다.”(2015/02/11, 서울 JW메리어트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앞으로 대형 플래그숍 매장을 20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또 글로벌 가구 공룡 이케아에 대비해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해 차별화를 시도하면서도 신혼부부 등 전통적인 한샘 고객층 시장도 지켜가겠다.”(2014/03/05, ‘한샘플래그숍 목동점’ 오픈 기자 간담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