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를 처음 만나거나 함께 일하게 됐을 때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을 감지하는 경우가 있다. 사진은 2025년 서울 서초구 원명초등학교에서 진행된 신입생 예비소집 행사에서 한 예비 초등학생이 창문너머로 교실을 바라보는 모습. <연합뉴스>
둘 다 고르기 싫다는 마음이 가장 먼저 들지만, 어쨌든 이 농담에는 전제가 하나 숨어 있다. 똥맛이 나면 카레일 것이고, 카레맛이 나면 똥일 것이라는 전제다. 이 세계에는 똥맛 똥도 없고, 카레맛 카레도 없다. 냄새도 수상하고 맛도 수상한데 알고 보니 정말로 수상한 것인 경우는 아예 선택지에서 빠져 있다.
그런데 사람을 대할 때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거나 함께 일하게 됐을 때, 무언가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 이른바 ‘쎄함’을 감지하는 경우가 있다. 상황은 다양할 수 있다. 말투가 묘하게 무례하거나, 농담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를 깎아내리거나, 이유 없이 내게 까칠해서 괜히 눈치를 보게 만드는 사람을 만났을 때처럼 말이다.
물론 이 느낌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편견을 가지고 있고, 첫인상은 종종 틀리며, 내가 불편하게 느꼈다는 사실만으로 상대에게 잘못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누군가의 말투가 낯설어서, 혹은 나와 다른 문화나 배경을 가지고 있어서 괜히 불편하게 느끼는 경우도 분명 있다. 그래서 우리는 조심하려 한다. 쉽게 판단하지 말자고, 사람을 단편적인 단서만으로 몰아붙이지 말자고 다짐하며, 내가 느낀 불편감이 혹시 나의 편견은 아닌지 돌아보려 한다.
이런 태도는 중요하다. 공정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나 역시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규정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 타인에게 조금 더 넓은 해석의 여지를 주고 싶은 마음은 모두 소중하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쎄함’만으로 상대를 성급하게 단정하지 않으려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너무 서둘러 희석해버린다.
“내가 예민한 거겠지.”
“사실은 나쁜 사람은 아닐 거야.”
“저렇게 말은 세게 해도 속은 따뜻할지도 몰라.”
“솔직한 사람이라서 저런 식으로 표현하는 걸 수도 있잖아.”
이렇게 우리는 스스로 느낀 경고 신호를 사연으로 덮기 시작한다. 상대가 툭툭 던지는 말에 상처를 받았는데도, 그가 사실은 표현이 서툰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계속 약속을 어기고도 미안해하지 않는 사람을 보며,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상상한다.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보며, 사회성이 없을 뿐 속마음은 순수할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상하게도 똥맛이 강하게 날수록, 우리는 이 사람이 반드시 카레일 것이라고 믿고 싶어진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단순한 착함이나 순진함만으로는 이런 마음을 다 설명할 수 없다. 더 깊은 곳에는 인지부조화를 줄이려는 마음이 있다. 인지부조화란 내가 알고 있거나 믿고 싶은 것과 실제로 경험하는 것이 서로 맞지 않을 때 생기는 심리적 불편감이다. 예를 들어 내가 매일 함께 일해야 하는 동료가 정말로 무례하고 위험한 사람이라는 결론에 이르면, 나는 꽤 불안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안전하지 않은 관계 안에 있다는 것, 앞으로도 계속 불편한 상황에 노출될 수 있다는 현실 말이다. 그러니 마음은 더 쉬운 길을 찾는다. “저 사람이 이상한 게 아니라, 내가 오해한 것일지 몰라.” 이렇게 생각하는 편이 당장은 훨씬 덜 불안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때로 합리화(rationalization)와도 닿아 있다. 마음속에 비어 있는 퍼즐 조각이 있을 때, 우리는 그 빈칸을 그냥 빈칸으로 두는 일을 어려워한다. 그래서 상대가 직접 보여준 적 없는 선의, 사연, 서툶, 진심을 내가 대신 만들어 넣는다. 그는 츤데레라서 그런 것이라고, 상처가 많아서 그런 것이라고, 사실은 여린 사람일 것이라고 말이다. 설명되지 않는 상대의 행동, 앞뒤가 맞지 않는 말, 묘하게 불편한 태도 앞에서 어떻게든 이야기를 완성하고 싶어진다. 그 설명은 상대를 이해하기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내가 처한 현실을 덜 불안하게 만들기 위한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놓치기 쉬운 사실이 있다. 수십 년간 살아오며 축적된 경험에서 오는 감각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생존 신호라는 점이다. 머리로는 아직 정리되지 않았지만 표정과 말투, 책임을 대하는 자세, 경계를 넘는 태도, 작은 권력을 사용하는 방식 같은 것들을 우리는 본능적으로 아주 빠르게 감지한다.
그렇기에 누군가에게서 반복적으로 찝찝한 감각이 든다면, 그것은 마음속 임시보관함에 넣어둘 만한 정보라는 사실을 당부하고 싶다. 당장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야”라고 결론내릴 필요는 없다. 그러나 반대로 “아니야, 내가 이상한 거야”라고 서둘러 지울 필요도 없다. 판단을 유보한다는 것은 상대를 선해한다는 뜻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앞에서 예를 든 밸런스 게임처럼 똥맛이 난다고 해서 카레일 거라 기대하지는 말자. 아직 모르는 것은 아직 모르는 것으로 남겨두고, 퍼즐의 빈칸을 내가 대신 채우지 않기를 바란다.
상대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언젠가 그 빈칸은 그 사람의 행동으로 자연스레 채워질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불편한 마음을 견디고 비어 있는 채로 그냥 두었던 그 조각이 결정적인 순간 나를 지켜주는 중요한 단서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반유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였고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여성학협동과정 석사를 수료했다. 광화문에서 진료하면서, 개인이 스스로를 잘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친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책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 '언니의 상담실', '출근길 심리학'을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