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 대만대학교의 수공학연구소 건물 R201 연구실에서 비즈니스포스트와 인터뷰를 나눈 유징윈(영어명 Gene You) 교수. <비즈니스포스트> |
[대만 타이베이=비즈니스포스트 이근호 기자] 대만은 2021년 ‘10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겪었다. 2023년 봄에도 대만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가뭄이 들어 농사에 차질을 빚었다.
3년 사이에 2번이나 큰 가뭄을 겪으면서 한정된 수자원을 어떤 산업에 지원할지를 놓고 갈등이 일었다.
특히 ‘실리콘 방패’인 TSMC에 공업용수를 공급하려고 농지가 주로 분포한 지역에선 관개를 중단해 대만 안팎에서 이슈가 됐다.
대만 정부는 2021년 봄 약 10만5800개의 축구장 면적과 맞먹는 7만4057헥타르(㏊)의 농지에 일시적으로 물 공급을 끊기도 했다.
국립대만대학교 토목공학과 교수이자 수공학연구소 소장인 유징윈(游景雲, 영어명 Gene You) 교수는 당시 대만 정부의 선택이 아쉬웠다는 의견을 여러 매체를 통해 밝힌 적 있다.
유 교수는 국립대만대 토목공학 석사를, 미국 일리노이대 어바나샴페인캠퍼스(UIUC)에서 토목환경공학 박사를 받은 후 댐과 저수지 등 수자원과 경제 관련 연구를 15년째 이어오고 있다.
그는 2021년 뉴욕타임스와 2023년 미국 공영 라디오(NPR)를 통해 "대만 정부가 산업간 갈등과 같은 워터리스크를 극복하려면 더욱 스마트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스마트한 방식'이 무엇인지 직접 묻고자 2023년 9월20일 타이베이시 외곽에 위치한 국립대만대로 찾아갔다.
◆ 기후변화로 식량안보 위협요인 커지는데, 대만 식량자급률은 31%로 감소
한국에서 찾아온 기자들에게 그는 답과 함께 질문을 던졌다.
반도체 기업에 집중적으로 물을 대는 대만 정부의 정책이 지속될 수 있을 것으로 보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향후 기후변화가 어떻게 진행될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렵지 않겠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국내총생산(GDP)에 크게 기여하는 반도체 산업에 농업보다 우선해서 물을 대다 보면 식량 자급률이 더 줄어 식량 부족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2021년 기준으로 반도체 제조업을 포함한 공업 부문은 대만 GDP의 37.9%를 구성한다. 반면 농업은 1.5%에 그쳤다.
대만에서 반도체 등 공업 부문이 크는 동안 위축된 농업 부문은 식량안보까지 위협하고 있다.
대만의 식량자급률은 1986년 56%에서 2021년 31%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하위권이라는 한국의 2021년 식량자급률(44.4%)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유 교수는 “대만 식량 자급률은 더 떨어질 수 있다”며 “대만이 식량을 수입해 오는 국가들에서 기후변화 등으로 식량 생산에 차질을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올해 7월 쌀 수출을 금지했던 인도의 사례를 보라”며 “평화로울 때는 문제가 없겠지만 정부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일정 정도의 쌀을 생산할 수 있게끔 자원을 배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일의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이미 높아졌다. 기후변화와 엘니뇨(El Niño)가 겹치면서 쌀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블룸버그는 10월11일자 기사에서 말레이시아 말라야대학 생물과학연구소 무하마드 샤키린 미스판 부교수의 말을 인용해 “물 공급에 크게 의존하는 작물은 엘니뇨로 인해 심각한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 세계 1위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TSMC는 대만 경제에 막대한 비중을 차지한다. 사진은 TSMC가 대만의 2022년 GDP에 7.9%, 총 수출의 12.5%나 기여함을 나타내는 화면. 9월21일 대만 신주시에 위치한 TSMC 혁신박물관에 방문해 촬영했다. <비즈니스포스트> |
동태평양과 중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는 엘니뇨 현상은 악천후와 가뭄 등 기상이변을 일으킨다.
지구 온난화는 가뭄과 폭우를 이전보다 강하게 몰고와 세계 각국의 식량안보를 뒤흔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물 뿐만 아니라 전기와 인적자원 모두 반도체 산업에 몰리고 있다”는 데 유 교수는 경계심을 나타냈다.
“이대로 가면 산업 생태계의 다양성이 줄어드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이유였다.
그는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격언을 되새겨야 한다”며 “대만 TSMC와 유사하게 (한국에서도) 삼성이나 현대와 같은 대기업에 자원이 집중되지 않냐”고 되물었다.
◆ 매년 홍수 피해 반복되는 한국, “지자체 물 관리 기준 다르면 문제 커져”
한국 이야기가 나온 김에 홍수와 관련해서 어떤 워터리스크가 일반적으로 있을지 추가로 질문을 던졌다.
블룸버그가 7월16일자 기사에서 지적했듯 여름에 강우가 집중되는 한국은 거의 매년 홍수 피해가 일어난다.
당시 블룸버그는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침수 참사를 전하면서 한국이 매년 수십 명의 인명 피해와 재산 손실을 겪는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유 교수는 “지자체마다 물 관리 기준이 다른 점이 홍수와 관련해서 잠재적으로 문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홍수를 방지하는 인프라에 몇 년 마다 콘크리트 보강공사(retempered)가 필요한지 등 기준이 지역별로 다르면 관리가 어렵다”고 조언했다.
물은 한 지역에 머물지 않는다.
홍수로 물이 빠르게 이동할 때 각 지역마다 인프라를 관리하는 기준이 크게 다르지 않아야 취약 지역까지 보호할 수 있다.
한국은 2021년 1월1일자로 지방일괄이양법이 시행되면서 소하천 정비 사업 등이 국고보조사업에서 제외됐다.
상하수도와 방재시설 등 기반시설을 지방 사정에 맞춰 확대한다는 취지로 제정된 법이지만 이 때문에 지역마다 방재 기준이 달라져 역효과 우려가 일었다.
홍수 예방사업 등은 당장의 가시적 성과가 없다 보니 재정 건전성을 고려해야 하는 지자체로서는 관련 예산을 무턱대고 확대하기가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 비행기 창 밖으로 보이는 대만의 저수지들. 타오위안 공항 인근에는 '1천 개의 연못'이라 불리는 소규모 저수지들이 있다. 9월19일 대만을 방문했을 당시는 저수지들이 모두 차 있었지만 같은 해 봄에는 극심한 가뭄으로 저수지 수량이 크게 줄었었다. <비즈니스포스트> |
유 교수는 정부가 잘못된 의사결정을 하면 홍수와 관련한 워터리스크가 되려 커지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비가 더 온다는 근거가 확실해야 댐 수문을 개방한다고 하지만 이미 더 큰 강수량이 예고된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홍수 방지를 위해서는 정부의 의사결정이 더 정교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워터리스크 방지에 제 기능을 다하려면 시민의 관심과 비판이 필수”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데이터를 활용해서 물의 움직임을 연구하는 학문인 수문학(Hydrology)을 전공한 학자로서 유 교수는 최근 기후변화와 함께 워터리스크와 관련해 학자들이 시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임무 또한 커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수자원을 어떻게 배분하는지는 정치적인 이슈”, 즉 시민이 함께 결정해야 하는 이슈이기 때문이다.
미래 세대 교육의 역할도 중요하다.
유 교수는 “내가 속한 학과에서는 수학적 프로그래밍에 기반해 물 사용량을 측정하고 물이 얼마나 부족한지 또 어디에 물을 얼마나 공급해야 할지 등을 정확히 계산하는 기술을 가르친다”며 “의사결정에 필요한 도구 사용법을 대만의 미래 세대에 정확히 가르치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과 대만은 반도체 산업 비율이 높은 등 비슷한 부분이 많다”며 “두 국가뿐만 아니라 아시아 국가들이 워터리스크에 대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종합하자면 '스마트한 방식'이란 산업 생태계의 다양성을 지키는 것을 목표로 한 정부의 정교한 의사결정, 학계의 정확한 정보 제공, 시민과 미래세대의 바른 판단을 위한 교육, 그리고 국가 간 협력이 포함된 개념이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타이베이시 시내로 돌아오면서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을 강조한 그의 말이 머리에 맴돌았다.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는 시 차원에서 수자원 관리에 어떤 노력을 더 기울이고 있는지 그리고 민간 기업들은 어떻게 워터리스크에 대응하고 새로운 사업기회를 찾고 있는지, 9월22일 타이베이시 세계 무역센터에서 열린 ‘대만 국제 물 주간 2023(Taiwan International Water Week 2023, TIWW 2023)’ 행사를 방문해 살펴봤다. (
다음편으로 이어짐.)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워터리스크, 물이 산업안보다] 폭우와 가뭄 등 극단적 기후현상은 세계 많은 지역에서 점차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9월 한반도에 몰아친 115년 이래 최악의 폭우로 포항제철소 고로는 사상 처음 가동을 완전히 중단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공장 운영에 필요한 수자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투자 계획을 고심하고 있다. 물이 너무 많아도, 부족해도 문제다.
인구 증가와 산업 활성화, 기후변화로 ‘워터리스크(water risk)’, 물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수자원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일이 산업 안보에 중요한 과제가 됐다. 워터리스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반도체, 철강, 화학, 발전 등 주요 산업은 물론 국가와 지역경제도 위험해진다.
비즈니스포스트는 국내외 주요 기업과 물 관리 선진국의 리스크 관리 및 대응사례를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한국위원회인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과 함께 발굴해 보도한다. 최신 동향과 해법 관련 기사들은 비즈니스포스트 워터리스크 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