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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금 회장과 장평순 회장은 교육 사업으로 시작해 그룹을 일군 방문판매의 라이벌이다. |
장평순 교원그룹 회장은 지난 2010년 1월 시무식에서 “2015년에 3조원의 매출을 올리겠다”고 밝혔다. 장 회장은 바로 직전 해에 꿈에 그리던 1조원 매출을 넘겼다. 교육기업에게 1조원은 말 그대로 ‘꿈’인데 이를 달성한 것이다.
장 회장은 앞으로 신규사업과 인수합병을 통해 창사 30주년인 2015년 3배 성장의 청사진을 그렸다. 장 회장은 “역량이 갖춰지지 않을 때 수비가 현명하지만 역량이 갖춰진 후 공격적으로 회사를 이끌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장 회장이 내놓은 청사진 앞에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 있었다. 장 회장의 ‘공격경영’은 윤 회장을 쫓아가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장 회장과 윤 회장은 닮은 꼴이다. 학습지에서 시작해 그룹을 이뤘고 나란히 1조원 매출을 돌파했다. 그러나 윤 회장이 항상 앞서 갔고, 장 회장은 뒤따르는 모양새였다. 둘은 절친한 ‘바둑친구’이기도 하다.
장 회장이 2015년 비전을 선포할 때 윤 회장은 이미 매출 4조7천억원을 거둔 그룹의 회장이었다. 공기업을 제외하고 재계 34위를 기록하며 30대 그룹 진입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윤 회장은 시무식에서 “올해 창립 25주년을 맞는 웅진그룹은 스물다섯살 건장한 청년으로서 비약적 도약을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4년이 흘렀다. 두 회장의 운명은 크게 엇갈려 있다.
장 회장은 1조원에 육박하는 자산가가 됐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장 회장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의 가치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9584억원으로 추산된다. 비상장 계열사여서 사업보고서를 기준으로 자산액에 지분율을 계산해 보면 그 정도의 자산가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국내 주식부호 15위에 해당되는 금액이다. 14위에 오른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불과 1천억원 남짓 밖에 차이가 안난다. 그룹의 외형도 ‘1조원 매출에 1천억원 영업이익’을 확실하게 다져가고 있다.
하지만 윤 회장은 옹색한 처지에 놓여있다. 빚을 갚기 위해 사재 600억원을 내놓았다. 지난해 5월 시가 100억원대의 한남동 자택도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에게 넘겼다. 계열사도 대거 정리해 이제 웅진씽크빅 웅진에너지 등 8개 밖에 안 남았다. 매출 규모는 지난해 1조2천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나마 100억원 정도 흑자로 전환한 데 위안을 삼고 있다.
두 회장은 비슷한 면이 정말 많다. 태어난 해도 윤 회장이 1950년, 장 회장은 1951년으로 비슷하다. 그리고 거의 똑같은 길을 걸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다.
윤 회장이 먼저 기업을 세웠다. 윤 회장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최단시간 내에 가장 많이 팔아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린 외판원이었다. 그러다 신군부가 과외금지 조치를 내리자 1980년 웅진출판(현 웅진씽크빅)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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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평순 교원그룹 회장 |
장 회장은 1985년 배추장사와 교재 판매로 종잣돈 10억원을 모아 중앙교육연구원(현 교원)을 세웠다. 두 회장은 그 뒤 학습지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며 규모를 키웠다.
방문판매를 중심으로 하는 판매조직을 강조하는 것도 두 회장은 똑같다. 윤 회장도 이미 영업의 달인이라고 알려졌지만 장 회장도 그 못지않다. 전집을 팔던 시절 99번 거절한 집을 100번째 찾아가 팔았다는 얘기는 그의 집요함을 보여준다.
장 회장은 2011년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누가 오든지 교원에서 새로 일하게 되면 무조건 영업을 시킨다”며 “(판매 영업은) 교원의 핵심역량을 파악하고 회사의 토대와 기업 문화를 알게 되는 가장 빠른 교육 방식”이라고 말했다.장 회장은 학습지 빨간펜 영업지국 1천여개를 매주 한 곳씩 방문해 지국장들에게 판매 노하우를 꾸준히 강의하기도 했다.
장 회장이 학습지 판매로 돈을 번 뒤 사업다각화를 펼칠 때 생활가전에 눈을 돌린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 분야의 성과는 판매역량이 좌우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또 그 길은 윤 회장이 앞서 가면서 성공을 보여줬던 길이기도 하다.
장 회장은 2002년 교원L&C(Living&Care)를 설립해 생활가전 분야에 뛰어들었다. 당시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는 윤 회장이 1989년 세운 웅진코웨이였다. 웅진코웨이는 정수기와 비데 등 생활가전 분야에서 부동의 1위였다. 윤 회장도 방문판매의 강점을 살펴 웅진코웨이 사업을 벌려 큰 성공을 거뒀다.
장 회장은 당시 “휴대폰도 자동차도 잘 만들면 팔린다”며 “현재 시장을 웅진코웨이가 독식하다시피 한 상태라 해도 제품만 잘 만들면 후발주자인 우리도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장 회장은 웰스정수기(정수기)와 와우비데(비데)로 시작해 물망초(상조)와 교원건강엔(건강기능식품) 클럽휴미락(여행) 등 다양한 사업으로 확대했다. 이를 통해 교원은 모기업을 포함해 총 6개의 비상장회사를 거느린 그룹의 모습을 갖췄다.
장 회장은 사업 다각화를 해도 “방문판매나 인적 네트워크에 강점이 있는 점을 살리겠다”는 자신의 말을 그대로 지켜갔다. 학습지로 구축한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한 판매가 통할 수 있는 사업분야를 하나씩 접수해 갔다. 물론 중소기업 중심의 업종까지 무차별적으로 들어간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문어발식 외형 확장’은 상당히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장 회장은 그룹이 커지자 주요 사업 분야를 교육과 생활가전으로 정하고 각 계열사에 흩어져 있던 교육과 생활가전 사업을 통폐합하기도 했다.
그러나 윤 회장은 달랐다. 생활가전과 음료에서 성공한 뒤 전혀 낯선 분야에 도전하는 길을 선택했다. 몸집 불리기의 욕심이 컸다. 2007년 6600억원에 극동건설을 사들인 게 화근이었다. 극동건설을 포기하라는 얘기도 나왔지만 오히려 1조1천억원을 투입하며 매달렸다. 승승장구를 하다 ‘승자의 저주’를 맞은 것이다.
윤 회장은 금융계 진출을 목표로 2010년 사들인 서울저축은행에 2800억원을 쏟아부었지만 결국 실패했다. 미래 성장동력으로 야심차게 추진했던 태양광사업도 2012년 웅진에너지가 적자로 전환하면서 어려움에 빠졌다. 결국 지난 2012년 법정관리를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1조 원의 자산가인 장 회장 뒷편에도 어두운 구석들이 많다. 웅진의 법정관리 직후인 2012년 11월 장 회장은 생활가전 주력 업체인 교원L&C와 모기업 교원을 합병했다. 경영 효율화를 이유로 내세웠지만 사실상 ‘일감 몰아주기’ 비난을 차단하기 위한 조처였다. 당시 교원L&C의 매출은 100% 교원과 내부거래를 통해 발생했다. 교원L&C가 생산한 생활가전제품을 교원의 방문판매 조직을 통해 팔았기 때문이다.
창업 동지인 이정자 전 교원 부회장과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이 전 부회장은 2012년 4월 전격 해임됐는데, 2개월 뒤 “장 회장이 퇴진 대가로 약속한 보수와 퇴직금 및 공로보상금 등을 지급하지 않았다”며 231억원 청구소송을 냈다. 교원 측은 “이 전 부회장이 퇴사 후 동종 분야에서 사업을 벌이려고 했기 때문에 해임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업계는 장 회장이 아들과 딸에게 승계를 하기 위해 본격적 경영수업을 하는 와중에서 갈등을 빚은 것으로 보고 있다. 장 회장은 지난해 4월 이 전 부회장과 합의 끝에 소송을 매듭지었다.
장 회장이 매출 3조원 달성을 목표로 한 2015년이 불과 2년 남았다. 장 회장은 인수합병을 통해 본격적인 몸집 불리기에 나서고 있다. 장 회장은 최근 동양매직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고배를 마셨지만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교원이 동양매직을 품에 안으면 정수기 업계 2위를 굳힐 수 있다. 정수기 시장 점유율은 코에이가 38%, 동양매직이 10%, 청호나이스가 9%, 교원이 3% 다. 유력한 경쟁자는 현대백화점이다. 장 회장은 계속해서 공격적 인수합병 추진을 공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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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 1월1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사기성 기업어음(CP) 발행과 배임 혐의로 열린 첫 공판에 참석하고 있다.<뉴시스> |
윤 회장도 기지개를 펴고 있다. 지난달 법정관리에서 졸업한 뒤 웅진홀딩스와 웅진씽크빅을 중심으로 체제를 정비하며 앞으로 나아가려 하고 있다. 그룹이 반토막 났다고 해도 여전히 1조2천억원의 매출이 있는 그룹이다. 윤 회장은 다시 강점인 방문판매 노하우를 살려 새로운 사업을 펼치려 하고 있다. 윤 회장은 법정관리를 졸업한 날 “신사업을 앞으로 시작해야겠다”고 재기의 의욕을 밝혔다. 윤 회장은 웅진싱크빅을 통해 화장품과 건강기능식품사업에 진출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 영역은 다름아닌 장 회장이 지난 1월과 최근 교원이 각각 브레인루테인(건강기능식품)과 웰네이쳐(화장품)라는 브랜드로 승부를 던진 영역이기도 하다.
장 회장은 바둑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싸움바둑 스타일로 상대의 허점을 집요하게 파고 들어가 대마를 잡는 승부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회장과 예전에 꽤 바둑을 함께 두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두 회장은 서로를 너무 잘 안다고 할 수 있다.
두 회장의 승부도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다시 비슷한 매출액을 기록한 그룹을 진두지휘하며 똑같은 영역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