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조건식 전 통일부 차관(62)을 새로운 현대아산 사장으로 낙점했다. 조 전 차관은 2008년부터 2년 동안 현대아산 사장을 지냈다. 현 회장은 최근 대북사업이 다시 활기를 띌 기미를 보이자 ‘구관이 명관’이라고 판단해 조 전 차관을 부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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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건식 현대아산 신임 사장. |
4일 현대그룹에 따르면 현대아산은 임기가 만료된 김종학 사장 대신 조 전 차관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했다. 조 전 차관은 오는 19일 주주총회를 통해 사장으로 정식 선임된다.
조 사장은 이번에 두 번째로 현대아산을 맡게 됐다. 조 사장은 2008년 7월 발생한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격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위기에 처할 때 현대아산 사장이 돼 뒤처리를 잘 해냈다. 처음에는 기업경영을 전혀 모르는 관료출신 CEO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당시 현대그룹은 “남북 분야에 대한 해박한 식견과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며 그를 감쌌고 정부와 현대아산과의 관계 조율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첫 번째 사장 재임 당시 현대아산이 영업손실 54억원의 적자를 기록하자 인력 구조조정 및 임직원 급여 삭감을 단행했다. 조 사장 본인도 급여 20%를 반납하고 30%를 유보하는 솔선수범을 보였다. 2009년 4월 개성공단에 체류하던 현대아산 직원 1명이 북한에 억류되자 여덟 차례나 방북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조 사장은 2010년 3월 “금강산과 개성 관광 재개와 사업 정상화를 매듭짓지 못한 책임을 지겠다”며 물러났다.
현 회장은 조 사장이 관료출신인데다 현대아산을 맡은 경험이 있는 만큼 이산가족 상봉 등 남북관계에 훈풍이 부는 시기에서 다시 현대아산의 대북사업을 되살려낼 적임자로 조 사장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조 사장은 첫 번째 현대아산 사장 시절에 대북사업이 중요하고(Significant), 안전하고(Safe), 세련된(Smart) ‘3S’ 사업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조 사장은 북한 전문가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경남대에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3년 통일원 교류협력관이 된 뒤 통일부 교류협력국장, 청와대 통일비서관, 남북회담사무국 상근회담 대표 등을 거쳐 2003년부터 2년 동안 통일부 차관을 지냈다.
현대아산 사장에서 물러난 뒤에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및 북한경제포럼 회장으로 일하는 등 북한과 관련된 일을 계속해 왔다. 현재 한국관광공사 남북관광자문위원장과 북한경제포럼 고문을 맡고 있다.
조 사장은 관료 시절부터 현대아산과 연을 쌓았다. 2001년 통일부 교류협력국장 시절 조 사장은 현대아산과 공조해 한국관광공사의 금강산 관광사업 참여를 이끌어냈다. 통일부 차관으로 일하던 2004년 김윤규 당시 현대아산 사장의 확인서를 직접 들고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소속 의원실을 방문하기도 했다. 2003년 북한 핵위기로 집행이 보류됐던 금강산 관광사업 정부 지원금 200억원을 승인받기 위해서였다.
현 회장에게 대북사업은 정주영 회장과 정몽헌 회장의 유지가 담겨있는 사업이다. 현 회장은 현대증권 등 금융자산을 모두 매각하는 초강수를 두며 현대그룹을 구조조정하고 있지만 손실이 7100억원에 이르는 현대아산은 포기하지 않고 있다. 현 회장은 한 인터뷰에서 “현대는 결코 금강산 관광을 놓치지 않을 것”이라 공언했다. 정몽헌 회장은 유서에 ‘나의 유분을 금강산에 뿌려주길 바란다’는 말을 남길 만큼 대북 사업에 정성을 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