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정부가 재난참사 피해자와 유가족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공익대변인’ 제도 도입과 상시 전담체계 구축 등을 추진한다.

이태원 참사 4주기를 맞은 가운데 오는 12월3일 생명안전기본법 시행을 앞두고 피해자의 알권리와 사고조사 참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제도 정비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공익대변인의 권한을 구체화하고 피해자 지원에 필요한 인력·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정책 실효성을 좌우할 듯하다.

▲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2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4주기 기억식에서 묵념을 하고 있다. <뉴시스>


29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 6월 시행 예정인 제1차 생명안전종합계획이 모든 국가계획의 최상위 기준으로 작동하도록 관련 법체계와 기준·계획·지표를 연계하는 방침을 추진한다. 해당 계획에는 재난참사 피해자와 유가족의 권리보장 강화 방안도 반영한다.

대통령 소속 국민생명안전위원회는 전날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제2차 전체회의를 열고 '피해자 권리보장 강화 추진방안' 등을 논의했다.

이번 추진방안은 재난참사 피해자와 유가족이 사고 이후에도 존엄과 권리를 보장받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피해자 중심의 권리보장 체계를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정부는 재난참사 이후 관계기관을 상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피해자와 유가족의 입장을 대변하고 권리 보호를 돕는 가칭 공익대변인 제도 도입을 추진한다.

이와 함께 피해자와 유가족이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해야 할 권리와 지원 수준에 관한 기준을 마련하고, 사고조사 과정에서 정보 제공과 피해자 참여를 보장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임시로 대응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피해자와 어린이·고령자·장애인 등 안전약자를 상시 전담하는 조직과 체계도 구축하기로 했다.

정부의 이 같은 구상은 오는 12월3일 시행을 앞둔 생명안전기본법과 맞닿아 있다.

지난 6월2일 제정·공포된 생명안전기본법은 안전하게 살 권리를 국민의 권리로 명시하고 국가와 지자체의 책무, 안전사고 피해자의 권리와 지원 원칙 등을 규정했다. 특히 제5조는 피해자가 안전사고의 예방·대비·대응·복구 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사고 원인과 국가 등의 대응 적정성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고 조사 과정에 참여를 요구할 권리, 법률지원 등 필요한 지원을 받을 권리, 재발방지대책 수립 과정에 참여할 권리 등도 규정했다.

제17조는 피해자가 국가나 지자체, 관련 기업 등에 사고정보 제공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요청 대상에는 사고 관련 조사 결과와 법원 판결서, 사고 원인과 재발방지대책, 피해지원과 회복에 관한 사항 등이 포함된다. 정보 제공을 요청받은 기관이나 기업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요청에 따라야 한다.

다만 법률에 권리가 규정된 것과 피해자가 이를 실제로 행사할 수 있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고 직후 피해자와 유가족이 여러 기관을 상대로 정보를 요청하거나 조사 절차에 참여하기 어려울 수 있는 만큼 이를 지원할 구체적인 절차와 담당체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공익대변인 제도는 이 같은 어려움을 줄이기 위한 수단으로 볼 수 있다. 다만 현재 공개된 추진방안에는 공익대변인의 구체적 선임 방식과 권한, 운영 주체 등이 제시되지 않았다.

공익대변인이 피해자를 위한 상담과 정보 안내를 담당하는 수준을 넘어 사고 관련 자료 요청이나 조사 참여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할지, 이를 위해 어떤 법적 근거를 마련할지가 제도 실효성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의 정보 접근권을 구체화하기 위한 하위법령 정비도 진행되고 있다.

행안부는 9월23일부터 생명안전기본법 시행령 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11월2일까지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시행령안은 안전사고와 피해자의 범위, 사고정보 제공 요청 절차, 독립적 사고조사 대상과 국가안전사고조사위원회 운영 방식 등을 구체화했다.

피해자 범위에는 사고 현장을 직접 목격해 정신적 피해를 입은 사람, 구조·수습·지원 과정에서 신체적·정신적·경제적 피해를 입은 사람 등도 포함하도록 했다. 사고정보 제공 요청 절차를 구체화하면서 국가안전보장 등 불가피한 경우에 적용할 예외 규정도 마련했다.

▲ 쿠팡물류센터 산재 사망 피해자 고 장덕준씨 모친 박미숙씨가 28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민생명안전위원회 제2차 전체회의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상시 전담체계를 뒷받침할 인력과 재원 확보도 과제로 꼽힌다.

생명안전기본법 제23조는 국가와 지자체가 피해자와 안전약자 지원을 전담하는 전문인력을 양성·확보하거나 전담기구를 운영하는 방식으로 지원체계를 갖추도록 규정했다. 제12조는 국가와 지자체가 안전 관련 사업의 전문적 추진에 필요한 인력과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도록 했다.

상시 전담체계가 실질적으로 운영되려면 중앙정부와 지자체 사이의 역할과 재정 부담을 명확히 하고 필요한 전문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지역별 지원 여건에 따른 격차를 줄일 수 있도록 공통적인 운영기준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고조사 과정에서 피해자의 알권리와 참여를 보장하기 위한 구체적 절차 마련도 과제로 남아 있다. 전날 국민생명안전위원회 회의에서도 산업재해 사망 노동자 유족은 사고에 대한 알권리와 조사 참여 보장을 요청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4주기 기억식 추모사에서 "정부는 국가의 존재 이유를 바로 세우기 위해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비롯해 '모두가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일에 국가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며 "오늘 이 자리에서 드리는 약속들이 유가족과 국민의 삶 속에서 확실한 실질적 변화로 확인될 수 있게 챙기겠다"고 강조했다.

한병도 민주당 원내대표도 이날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오는 12월3일 생명안전기본법 시행과 관련해 "법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되도록 빈틈없이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