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에서 노동자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플라스틱 폐기물 더미를 뒤지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플라스틱이라도 물과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암이나 치매처럼 인체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에 국제적 합의를 통한 플라스틱 생산 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향후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26일 주요 외신과 학계 논문을 종합하면 기존 인식과 달리 오염되지 않고 깨끗한 상태의 플라스틱이라도 물에 닿으면 해로운 물질이 검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에는 플라스틱이 쓰레기로 버려져 오랜 시간 동안 햇볕과 오염물질이 노출되면 변질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깨끗한 상태에서도 인체에 해롭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것이다.

미국 컬럼비아대 연구진은 최근 국제 학술지 '네이처'를 통해 플라스틱이 깨끗한 상태에서도 물과 반응해 해로운 화학반응을 보였다는 내용을 담은 논문을 공개했다.

구체적으로 물에 닿아 나오는 미세 플라스틱은 '활성산소종(ROS)'이라는 물질을 배출하는데 이 물질은 인체에서 암, 알츠하이머, 심장병 등 심각한 질환의 유발 가능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번 논문의 공동 저자인 웨이 민 컬럼비아대 화학과 교수는 과학기술 전문매체 19일(현지 시각) '아르스테크니카'와 인터뷰에서 "이번 연구는 미세 플라스틱이 활성산소종(ROS)을 생성하여 사람을 병들게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며 "인체 질병을 직접적으로 유발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추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워싱턴포스트는 26일(현지 시각) 이번 연구 결과를 놓고 산업계의 플라스틱에 대한 기존 인식이 완전히 뒤집힐 것이라고 바라봤다.

기업들은 기존에 플라스틱이 깨끗한 상태에서는 위험한 화학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간주하고 활용해 왔기 때문이다.

아스트리드 델로름 미국 하와이대 마노아 캠퍼스 플라스틱 연구원은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 "이번 연구는 깨끗한 플라스틱조차도 물과 접촉하면 화학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며 "이는 매우 중요한 발견"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컬럼비아대 논문에 따르면 플라스틱이 유해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미세 플라스틱으로 분류할 수 있는 5mm 이하의 작은 입자 단위로 분해됐을 때다. 평상시에 사용하는 플라스틱 컵이나 병은 괜찮으나 이것들이 손상돼 작은 입자가 발생하면 유해성을 띠게 될 수도 있다.

웨이 민 교수와 함께 이번 논문 연구를 진행한 나이신 첸 연구원은 14일(현지시각) 컬럼비아대 자체 뉴스 채널을 통해 "물이 생수병 안에 담겨 있거나 혈액과 접촉했을 때도 미세 플라스틱이 반응성이 높은 활성산소종을 자발적으로 생성했다"며 "이 같은 분자들은 동물과 인간의 조직을 손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인도네시아 자바섬 서부에서 주민들이 플라스틱병에 물을 옮겨 담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연구 결과로 국제적 합의를 통해 플라스틱 생산을 규제하자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시카고트리뷴은 지난 22일(현지시각) 컬럼비아대의 연구 결과와 플라스틱업계 관계자들의 반응을 소개하는 보도를 통해 "이미 80억 톤에 달하는 플라스틱이 지구를 오염시키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대 석유 회사들은 2060년까지 플라스틱 생산량을 3배 늘릴 계획"이라며 생산 규제가 시급하다는 요지로 보도했다.

현재 가장 현실적인 플라스틱 생산 규제 수단으로 꼽히는 것은 '국제플라스틱협약'이다.

국제플라스틱협약은 2022년 유엔환경총회(UNEA) 결의안 5/14에 근거를 두고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데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애초 국제플라스틱협약은 2024년 11월에 한국 부산에서 열린 회의에서 최종 타결이 예정돼 있었으나 중국,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들이 생산 규제에 강하게 반대한 탓에 협상이 현재까지도 지연되고 있다.

올해 8월 국제플라스틱협약 정부 간 협상위원회(INC) 의장실에서는 난항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생산 규제를 자율로 두는 초안을 발표했다가 환경단체들의 거센 반발을 부르기도 했다.

국제환경법센터의 리아 칼리니 환경보건프로그램 관리자는 최근 성명을 통해 "지금 우리에게는 단순히 또 다른 조약 하나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며 "플라스틱 오염 위기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고 행동에 나설 의향이 있는 회원국들에 최소한의 기준을 제시하는 조약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30일까지 태국 방콕에서 진행된 국제플라스틱협약 정부간 실무 협상도 이렇다고 할 성과는 없이 끝난 것으로 알려졌다. INC 의장실은 성명을 통해 2027년 1월에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리는 그룹 협상 직전까지 새 초안을 작성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칼리니 관리자는 "세계 플라스틱 수요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들이 강력한 국제플라스틱협약을 지지하며 행동에 나설 의향을 보였다"며 "이 정도의 비중이면 시장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