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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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김범수는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며 최대주주다. 가난을 딛고 자수성가한 대표적 벤처사업가로 한국 스타트업 지원과 청년창업 교육에 앞장서고 있다.
1966년 3월8일 서울에서 태어나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내며 독하게 공부했다. 재수를 했는데 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손가락을 베 혈서까지 썼다고 전해진다.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했으며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산업공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삼성SDS에 입사해 입사동기인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과 직장생활을 같이 했다.
한양대 앞에 전국 최대규모의 PC방인 ‘미션넘버원’을 부업으로 열었다.
퇴사 뒤 PC방사업을 통해 모은 자본으로 게임회사 ‘한게임’을 세우고 1년6개월 만에 1천만 명의 회원을 모았다.
김범수는 한게임을 이해진 의장이 이끌던 네이버컴과 합병해 NHN을 만들었는데 네이버에 한게임을 무료로 제공하며 아이템을 판매해 큰 수익을 올렸다.
검색 서비스 ‘지식in’이 성공하면서 네이버가 포털 사이트 1위로 올라서자 네이버의 한게임 의존도가 낮아져 김범수의 입지도 좁아졌다.
김범수는 NHN 해외지사를 돌다 회사를 나와 미국으로 떠났다. 이후 몇 차례 사업에 실패했다.
그는 PC웹의 시대가 저물 것으로 보고 모바일시장을 공략하기로 했다. 미국에서 귀국하자마자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을 시장에 내놓았다.
카카오톡의 성공을 배경으로 국내 2위 포털업체 ‘다음커뮤니케이션’과 합병해 다음카카오의 최대주주이자 이사회 의장에 올랐다. 합병 1년 뒤 회사이름도 ‘카카오’로 바꿨다.
타고난 승부사 기질의 소유자로 평가받는데 현재 청년창업을 위한 교육활동을 하면서 스타트업을 자금지원하기 위한 회사를 설립하는 등 '카카오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 경영활동의 공과
- 비전과 과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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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대범하고 남자다운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승부사 기질도 강해 대학시절부터 고스톱 포커 당구 바둑 등을 즐겼다.
격식을 차리지 않고 소탈하다. 평소 티셔츠에 편한 바지를 입고 회사에 나온다. 오히려 정장을 입고 오면 직원들이 놀랄 정도다. 평소 직원들과 소통을 중시해 격의없는 대화를 나눈다.
그러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빠르고 과감한 모습을 보인다. 카카오 직원들 대부분이 다음과 합병한다는 사실을 합병발표 때 알았다.
화를 잘 내지 않고 친화력이 뛰어나다. 좋은 인재를 얻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CEO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으로 ‘유비정신’을 꼽을 정도다.
업계 인사들과 자주 골프장을 찾으며 인맥형성에 적극적이다.
가족과 관계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녀들과 함께 매일 게임을 1시간씩 할 정도로 자상한 아빠라고 알려져 있다.
NHN을 그만두면서 중학생이던 아이들도 휴학시키고 전 세계를 놀러 다녔다. 휴식기간 동안 최고의 기억은 가족과 함께 게임 ‘디아블로’를 깬 것이라고 말한다. 김범수는 가족이 함께 모여 디아블로를 무찌른 가장은 대한민국에서 자신 말고 거의 없다고 얘기한다.
‘카카오의 생태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김범수는 사람들이 카카오가 구축한 생태계에서 끊임없이 서비스를 이용하며 생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카카오가 최근 O2O 서비스를 지속해 출시하는 이유다.
2015년 12월 파이낸셜타임즈(FT)가 김범수의 인터뷰를 싣고 “온라인 게임과 사이버 커뮤니케이션 애정이 대기업 중심의 한국경제에서 보기 드문 자수성가형 자산가로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평소 ‘소셜임팩트’를 중요한 키워드로 꼽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셜임팩트 기업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동시에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재무성과도 내는 기업이다. 김범수는 한 컨퍼런스에서 “사회를 지속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조직은 기업”이라고 말했다.
주요 이슈가 있을 때 직원 전체를 대상으로 전체 미팅인 ‘T500(Thursday 5:00)’을 진행하고 직급없이 영어호칭을 사용하거나 서서 일할 수 있는 ‘스탠딩 데스크’를 도입하는 등 직원들의 창의성을 키우는 자유로운 업무환경을 카카오에 구현했다.
하지만 2017년 카카오 뱅크의 출범을 앞두고 한국투자증권 등 기존 금융권에서 이직한 인력들이 대거 들어오는 상황에서 보수적인 기업문화에 익숙한 기존 금융권 출신 직원들이 이런 자유로운 기업문화에 적응할 수 없을 것이란 말도 나왔다.
디자인회사 JOH의 대표였던 조수용 디자인총괄부사장과 여민수 광고총괄부사장 등 네이버 출신 인재를 대거 영입했다. 사석에서도 “네이버 출신 인재들이 일을 잘한다“며 네이버 출신 인물들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음커뮤니케이션과 합병한 뒤 다음커뮤니케이션 출신 직원들 사이에 ”카카오 출신에 밀리는 것도 서러운데 네이버 출신들이 줄줄이 와서 윗선을 채운다“는 불평도 있었다.
- 사건사고
- 경력/학력/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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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력
1992년 3월 삼성SDS에 입사했다.
1998년 11월 회사를 그만두고 한게임커뮤니케이션을 설립했다.
2000년 7월 네이버컴 공동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이듬해인 2001년 11월 네이버컴과 한게임이 합병해 생긴 NHN의 공동대표 이사를 맡았다.
2004년 1월 NHN의 단독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다. 같은 해 한국게임산업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2005년 10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NHN 글로벌 담당 대표이사를 담당했고 2007년 1월부터 7월까지 NHN 미국법인 대표를 맡았다.
2007년 8월부터 2008년 6월까지 NHN 비상임이사로 재직하다 2009년 회사를 떠나 미국으로 갔다.
2010년 2월 카카오를 만든 SNS애플리케이션 개발사 아이위랩의 대표가 됐다. 카카오톡 출시 뒤 회사이름을 ‘카카오’로 변경했다.
2011년 11월 이석우 전 카카오 대표를 선임했다.
2014년 9월까지 카카오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2014년 10월 카카오가 다음커뮤니케션과 합병함에 따라 다음카카오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2015년 9월 합병 1주년에 발맞춰 회사이름을 ‘카카오’로 변경했다.
◆ 학력
1990년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했다.
1992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산업공학 석사를 취득했다.
◆ 가족관계
2남3녀 가운데 맏아들로 태어났다.
김행자씨와 김명희씨가 누나고 김은정씨가 여동생이다. 막내 남동생인 김화영 전 케이큐브홀딩스 대표는 경기 성남시 판교에 있는 구 카카오사옥에서 ‘카페톡’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의 부모는 전남 담양에서 농사를 짓다 상경했다. 아버지는 막노동과 목공일을 했으며 어머니는 지방에 머물며 식당일을 했다.
중학생 시절 아버지가 정육 도매업을 해 작은 집을 장만하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나면서 할머니를 비롯한 여덟 식구가 단칸방 하나에 의지해 힘겹게 살았다고 알려졌다.
1993년 부인 형미선씨와 결혼해 슬하에 1남1녀를 뒀다.
형미선씨는 다음카카오의 2대주주인 케이큐브홀딩스의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 상훈
2003년 대통령표창 소프트웨어산업발전 유공자에 선정됐다.
2012년 제6회 포니정 혁신상을 수상했다.
2013년 제22회 다산경영상 창업경영인상을 받았다.
2015년 제60회 정보통신의 날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2015년 국제 투자자문회사인 EY한영 회계법인이 주는 ‘2015 EY 최우수 기업가상 마스터상’을 받았다.
◆ 상훈
2003년 대통령표창 소프트웨어산업발전 유공자에 선정됐다.
2012년 제6회 포니정 혁신상을 수상했다.
2013년 제22회 다산경영상 창업경영인상을 받았다.
2015년 제60회 정보통신의 날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2015년 국제 투자자문회사인 EY한영 회계법인이 주는 ‘2015 EY 최우수 기업가상 마스터상’을 받았다.
-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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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예측하는 최고의 방법은 그 미래를 스스로 창조하는 것입니다.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여러분 스스로의 미래를 그려나가시길 바랍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우리 삶을 통째로 바꿔놨고 인간과 기계가 경쟁하는 시대가 됐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지식 노동자를 대량으로 길러내는 교육패러다임에 머물고 있다. 게임의 룰이 바뀐 만큼 업을 찾아가는 과정 또한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 스타트업캠퍼스는 룰이 바뀐 현대 시대에 젊은이들이 모여 고민하고 체험하면서 업을 찾아가는 공간이 돼야한다.”(2016/10/25, 경기 성남 판교에서 스타트업캠퍼스 1기 입학식을 진행하며)
“’라이트 타임, 라이트 액션(Right Time, Right Action)’이 중요하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행동을 할 때 사업의 성패가 갈린다. 타이밍을 놓치면 의미가 없어진다. 인수합병도 늦으면 생사의 기로에 선다.” “인수합병도 중요하지만 인수합병 후 두 회사가 얼마나 시너지를 내고 화학적 결합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이해진 의장(네이버)이랑 호흡이 잘 맞았고 둘 다 잘했던 거 같다. 카카오와 다음도 화학적 결합이 되어야 한다.”(2016/07/27,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한게임과 네이버컴의 합병에 대해 이야기하며)
“나는 NHN을 나와서 미국으로 간 후 거기서 참 영향을 많이 받았다. 실리콘밸리에 머물렀고 실리콘밸리의 선순환구조를 보게 됐다. 벤처캐피탈(VC)가 있고 기업가들이 있고 시장이 있다. 이 세가지가 결합된 공통 분모가 크면 클수록 시너지효과가 발생한다. 스타트업도 힘을 받고 관심을 받고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서 돌아와서 제일 먼저 케이큐브벤처스라는 벤처캐피탈(VC)을 만든 것이다. ‘수익률 이런 거 많이 따지지 말고 좋은 팀이면 투자해줘라’라고 했다. 2014년 기준으로 2년 만에 36곳(2016년 현재 69곳)을 투자했다. 엄청난 것이다. 잘 투자했다고 격려도 많이 해줬다.” “창업이 활성화하려면 시장이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 벤처가 성공해서 기업공개(IPO)까지 가기 힘들다. 확률도 낮고 주변 지인의 도움을 받아도 회사가 망해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다. 벤처가 자립하기 어려운 것은 기본적으로 시장을 찾지 못해서인 것 같다. 벤처기업은 자본을 좀 해결하면 그 뒤엔 시장을 필요로 한다. 카카오는 이 ‘시장’을 만드는 것에 노력하고 있다. 이모티콘 시장도 생겼고 모바일게임 시장도 커지는 등 성공사례도 나오기 시작했다.” (2016/07/27,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벤처창업에 대해 이야기하며)
“미국에선 스마트폰에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고 즐기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 흠뻑 빠졌는데 스마트폰이 한국에서 무려 2년 동안 출시되지 않았다. 결국 TV에서 PC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오는 큰 흐름이 있었다. 거기서 스마트폰 시대에는 무엇을 하면 좋을지 원론적인 질문을 주고 받았다. 결국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답을 얻게 됐고 전방위적으로 여러 앱을 출시한 뒤 어떤 게 성공하는지 지켜보려 했다. 딱 2개월 뒤 카카오톡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고 카카오톡에 올인했다.”(2016/07/27,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카카오톡의 생성배경을 놓고 이야기하며)
“내가 가진 틀을 깰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아는 사람들 한두명 거쳐 만나고 싶은 사람과 연결하는 것이다. 책을 읽다가 참신한 생각이 있으면 만나서 이야기 들으려 노력한다. 이런게 요즘 가장 좋은 거 같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사람은 계속 틀에 갇힌다. 그걸 깰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하다. 결국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자극인거 같다.”(2016/07/27,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원천을 놓고 이야기하며)
“내가 청소년이었을 때는 미래예측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의 청소년은 다르다. 현대 청소년에게 20년 뒤 미래 모습을 얘기해주는 어른은 거짓말쟁이다. 어른들 말 대신 자기 스스로 선택해야 성공할 수 있다.” “5년 안에 일자리는 500만개가 사라지고 초등학교 입학생 65%는 세상에 없는 직업을 갖게 될 것이다. 선행학습, 좋은 성적 등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는데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기존의 주입·압축형 교육과 성공의 방정식이 바뀌어야 한다. 세계는 기존 방정식으로 잘 풀리지 않는 급격한 변화에 직면해 있다. 모두 대학에 진학할 필요도 없는데 여전히 진학률이 너무 높은 것은 기형적이다. 어떤 회사원이 그림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블로그에 매일 한 장씩 그림을 그렸더니 어느새 유명한 화가가 돼 있더라. 뭔가를 좋아한다면 굳이 직업에 국한해 생각하지 말아라.”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의미있는 것의 교집합을 찾아보면 인생의 업이 보일 것이다. 보이면 무조건 뛰어들어라. 10대 여러분의 나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2016/07/20,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한국투자증권 청소년 CEO캠프에서)
“카카오는 우리나라 전 국민이 쓰는 서비스로 사회에서 의미있는 역할을 해야한다.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의미도 가져야 한다. 새로운 사업을 하면서 기존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카카오택시에서 그랬듯이 기존 사업자들과 최대한 협력할 것이다.”(2016/06/12,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O2O신사업을 놓고 이야기하며)
“취업으로는 도저히 답을 낼 수 없는 사회구조로 변하고 있다. 트렌드가 그런데 기존 일자리 개념을 유지하려 하거나 늘리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생각한다. 기그 이코노미(Gig Economy)는 이른바 ‘알바’와는 다르다. 알바는 잘리면 다음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불확실성이 있지만 기그 이코노미는 일자리가 조각조각나서 항상 접속할 수 있다. 자신이 필요한 시간에 일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익이 보장되는 구조로 간다면 알바와는 개념이 다르다.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정규직보다 적게 벌겠지만 시간은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우리나라 여자골프에서 박세리가 나온 후 박세리 키즈가 쏟아져 나온 것처럼 벤처업계에서도 롤모델이 나오면 성공 사례가 계속 나올 것이다.”(2016/06/12,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구조에 대해 이야기하며)
“삼성SDS를 뛰쳐나와 한게임을 만든 것, 한게임을 네이버와 합병시킨 것, 네이버를 떠나 미국으로 간 것, 모두 환경을 변화시킨 것이었다. 이렇게 강제적으로 환경에 변화를 준 것이 내 성공의 비결이었다.”(2016/06/12,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것은 기업이고 가장 느린 것은 교육이다. 지금처럼 수능과 연결된 교육을 받아서는 창업하겠다는 마인드가 생길 수 없다. 예전 같은 고속성장 시대에는 좋은대학에 가면 좋은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성공공식이었다. 하지만 저성장시대에 들어가면서 좋은대학에 들어갔다고 안정적인 직장이 보장되지 않게 됐다. 알파고 때문에 부모들도 10~20년 후에는 내가 모르는 세상이 올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더 이상 아이들에게 공부만 강요하지 않고 있다. 이제는 옆을 보고 스스로 물어보기 시작하는 것 같다. 오히려 20대일 때에는 창업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작은 벤처에 들어가서 경험을 하고 미국보다 5~6년 늦게 창업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내가 교육을 바꿔 놓을 수는 없지만 혁신가들을 불러 네트워킹을 시키고 빨리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가속화하는 데 일조할 것이다.”(2016/06/12,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한국교육을 놓고 이야기하며)
“교육과정과 현실의 괴리에 학생들이 느끼는 건 열심히 축구경기를 준비한 선수가 경기장에 들어서는 순간 야구장으로 바뀐 느낌과 같다.”(2016/06/12,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한국교육을 놓고 이야기하며)
“한국에서는 한 번 실패하면 끝장나기 때문에 창업하면 인생을 걸어야 한다. 실패 경험이 새로운 아이디어로 이어지는 실리콘밸리 풍토를 한국에 이식하고 싶다.” (2015/12/29,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중국은 이미 모바일 분야에서 한국에 2년 앞서 있다.” “죽어라 뛰는데 차가 휙 지나가는 느낌이다.” “샤오미는 현재 하드웨어가 모바일서버와 연결돼 창출해낼 다음 세계를 보고 있다. 이 후폭풍이 어떻게 될지 예상되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어떤 조짐을 읽으면 항상 기회가 먼저 느껴졌지만 이번처럼 기회보다 공포감이 먼저 느껴지는 것은 처음이다.” (2015/09/22, 중앙50년 미디어 콘퍼런스에서)
“나의 창업스토리는 문제를 발견하고 모순을 정의하고 사고를 전환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모바일 시대의 핵심은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판단해 카카오톡을 선보였다. 하지만 서비스 하나의 성공보다는 전체 생태계의 부가가치를 만드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다는 철학 하에 ‘플랫폼’이라는 개념을 고민하게 됐다.” (2014/11/24, ‘스타트업 네이션스 서밋’ 기조연설에서)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 즐겁게 가자.” (2014/09, 다음과 카카오 직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네이버가 1등이고 다음이 2등인데 같은 차선으로 달리면 어떻게 네이버를 이길 수 있나. 새 합병법인은 차선을 갈아타야 한다.” (2014, 다음과 카카오의 합병이 결정된 후 속도경영을 강조하며)
“재수 1년을 워낙 힘들게 해서 그랬는지, 보상 심리랄까, 고스톱 포커 당구 바둑에 푹 빠졌어요. 교수할 것도 아니고, 서울대 졸업하고 취직 못할 것도 아니고, 이왕 놀 거면 도둑질 빼고는 다 해보자 싶었죠.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런 숱한 경험들이 버려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영역에서 시작하는 게 첫걸음인 것 같아요. 한게임 만들 때도 '그나마 내가 잘하는 게 뭐지'하다 보니 '내가 잘하는 게임과 잡기, 이런 걸 온라인으로 옮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밤새워 놀았던 경험들이 온라인에서도 되겠다 싶었죠.“ (2011/10/19,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 (2009, NHN을 퇴직하면서)
“꿈꾸는 자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 (좌우명)
◆ 평가
대범하고 남자다운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승부사 기질도 강해 대학시절부터 고스톱 포커 당구 바둑 등을 즐겼다.
격식을 차리지 않고 소탈하다. 평소 티셔츠에 편한 바지를 입고 회사에 나온다. 오히려 정장을 입고 오면 직원들이 놀랄 정도다. 평소 직원들과 소통을 중시해 격의없는 대화를 나눈다.
그러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빠르고 과감한 모습을 보인다. 카카오 직원들 대부분이 다음과 합병한다는 사실을 합병발표 때 알았다.
화를 잘 내지 않고 친화력이 뛰어나다. 좋은 인재를 얻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CEO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으로 ‘유비정신’을 꼽을 정도다.
업계 인사들과 자주 골프장을 찾으며 인맥형성에 적극적이다.
가족과 관계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녀들과 함께 매일 게임을 1시간씩 할 정도로 자상한 아빠라고 알려져 있다.
NHN을 그만두면서 중학생이던 아이들도 휴학시키고 전 세계를 놀러 다녔다. 휴식기간 동안 최고의 기억은 가족과 함께 게임 ‘디아블로’를 깬 것이라고 말한다. 김범수는 가족이 함께 모여 디아블로를 무찌른 가장은 대한민국에서 자신 말고 거의 없다고 얘기한다.
‘카카오의 생태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김범수는 사람들이 카카오가 구축한 생태계에서 끊임없이 서비스를 이용하며 생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카카오가 최근 O2O 서비스를 지속해 출시하는 이유다.
2015년 12월 파이낸셜타임즈(FT)가 김범수의 인터뷰를 싣고 “온라인 게임과 사이버 커뮤니케이션 애정이 대기업 중심의 한국경제에서 보기 드문 자수성가형 자산가로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평소 ‘소셜임팩트’를 중요한 키워드로 꼽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셜임팩트 기업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동시에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재무성과도 내는 기업이다. 김범수는 한 컨퍼런스에서 “사회를 지속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조직은 기업”이라고 말했다.
주요 이슈가 있을 때 직원 전체를 대상으로 전체 미팅인 ‘T500(Thursday 5:00)’을 진행하고 직급없이 영어호칭을 사용하거나 서서 일할 수 있는 ‘스탠딩 데스크’를 도입하는 등 직원들의 창의성을 키우는 자유로운 업무환경을 카카오에 구현했다.
하지만 2017년 카카오 뱅크의 출범을 앞두고 한국투자증권 등 기존 금융권에서 이직한 인력들이 대거 들어오는 상황에서 보수적인 기업문화에 익숙한 기존 금융권 출신 직원들이 이런 자유로운 기업문화에 적응할 수 없을 것이란 말도 나왔다.
디자인회사 JOH의 대표였던 조수용 디자인총괄부사장과 여민수 광고총괄부사장 등 네이버 출신 인재를 대거 영입했다. 사석에서도 “네이버 출신 인재들이 일을 잘한다“며 네이버 출신 인물들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음커뮤니케이션과 합병한 뒤 다음커뮤니케이션 출신 직원들 사이에 ”카카오 출신에 밀리는 것도 서러운데 네이버 출신들이 줄줄이 와서 윗선을 채운다“는 불평도 있었다.
◆ 기타
IT업계의 거물이 된 서울대 벤처 1세대들과 친분이 깊다.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김정주 NXC 넥슨 대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서울대 동문이다. 김정주 대표, 이해진 의장과 서울대 산업공학과 86학번 동기다. 김택진 대표는 전자공학과 85학번으로 1년 선배다. 서울대 경영학과 90학번인 나성균 네오위즈홀딩스 대표와도 잘 아는 사이다.
천양현 코코네 대표이사와 초등학교 시절부터 인연을 맺고 있다. 두 사람은 NHN 한게임의 창립 멤버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같이 다녔다. 서울 역삼동 소재 8층짜리 빌딩인 ‘씨앤케이(C&K)타워’는 두 사람의 영문 이니셜을 땄으며 공동입주했다.
남궁훈 엔진 대표와도 삼성SDS에서 같이 근무했다. 김범수가 NHN을 이끌 당시 남궁 대표는 NHN에서 게임사업을 총괄했다.
사색의 시간을 갖기 위해 ‘새벽 산책’과 ‘장시간 샤워’ 등의 습관을 갖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2016년 6월 11일 모나코 몬테카를로에서 열린 ‘EY 최우수 기업가상’ 세계 시상식에서 한국 대표로 수상했다. 기업가정신과 재무성과, 전략, 세계 영향력, 혁신성, 품성 등에서 모두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3월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2015 신규 억만장자’에 이름을 올렸다. 포브스는 세계 신흥 억만장자로 김범수를 소개하며 카카오톡으로 IT성공신화를 써낸 인물로 집중조명했다.
2014년 5월 카카오와 다음의 합병으로 1조 원대 주식부자 대열에 합류했다. 자수성가한 벤처부호를 부르는 이른바 ‘1조 클럽’에는 김정주 넥슨 회장과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 등이 포함됐다.
2016년 7월 조사된 창업 주식 부호 순위에서 김정주 넥슨 회장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보유하고 있는 카카오 지분 18.6%의 주식가치는 1조1848억 원으로 집계됐다.
2016년 7월 보유하고 있던 카카오 주식을 1년에 1만 주씩 3년 동안 사회혁신기업가를 육성하는 재단인 아쇼카한국에 기부하기로 했다.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이 4400억 원을 출연해 만든 민간 싱크탱크인 재단법인 ‘여시재(시대와함께하는집)’의 이사도 맡고 있다. 2016년 8월 출범한 여시재는 ‘동북아와 새로운 세계질서’, ‘통일한국’, ‘도시의 시대’ 등의 주제 안에서 정책솔루션개발, 인재양성, 지식플랫폼 운영 등의 사업을 하는 연구단체다.
2016년 10월 보유하고 있던 카카오 주식을 1년에 1만주씩 3년 동안 비영리 단체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ARCON)에 기부하기로 했다.
한국 창업구조와 교육에도 관심이 많아 한국에도 기그 이코노미(gig economy)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카카오가 김기사를 인수하는 등 실리콘밸리식 창업 생태계가 우리나라에서도 어느 정도 구축하고 있단 걸 근거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