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목에 칼이 들어오는 것 같다." 

여러 기업 실무자들을 만나게 되는 직업이지만 그 어떤 기업 실무자도 내게 이보다 더 인상적인 말을 들려준 적이 없다. 
 
[ESG자본주의] 생존 문제 된 ESG 기업들만 각자도생 분투, 정부 지원 간절

▲ ESG는 기업에게 생존의 문제가 됐지만 각자도생하는 양상이어서 정부의 지원이 간절하다. 사진은 2022년 6월 국회에서 열린 RE100 실행, 재생에너지 직접구매의 난관과 해결방안 모색 토론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의원 등이 참석했다. <국회사진기자단>


칼이라는 말이 주는 섬찟함보다는 굴지의 삼성이라는 대기업 실무자가 국회와 정부, 다른 기업 실무자가 있는 간담회 자리에서 이런 표현을 썼다는 것 자체가 당시로서는 충격이었다. 

그이에게 목에 칼이 들어올 정도로 실존의 고민을 던져준 물음은 무엇이었을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여전히 위기에 놓였을지도 모를 그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문제는 RE100이었다. 당시 RE100이라는 용어조차 생경한 시기, 2018년 국회에서 가장 처음으로 RE100이라는 용어를 정책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해 겨울 '재생에너지선택권 이니셔티브' 가 출범되도록 했다. 

기업과 시민사회, 국회가 함께 RE100 대책을 수립하기 위한 기구였다. 애플과 구글 등 많은 글로벌 기업은 기후변화의 문제를 인식하고 100% 재생에너지 목표를 세우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협력업체에게도 부품 납품을 위해서라면 재생에너지로 생산 또는 생산계획을 요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정책은 요지부동이었다. 전력구매방식은 한 줄기였으며 재생에너지를 구매할 방식은 없었다. 물론 재생에너지 생산량도 턱없이 부족했다.

우리나라 기업이 특별히 기후변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들기 위해 RE100 이니셔티브에 참여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생존이다.

세계 시장을 선점한 글로벌 기업이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계약을 유지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들 기업에 부품 납품을 위해서라면 우리 기업 또한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은 반드시 이행해야 할 생존조건이다.

참여했던 기업군도 누구나 들으면 알 수 있는 유명 기업들이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신한금융그룹, 엘오티베큠, 오비맥주 등 기업 12곳이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관련 제도 도입을 지지하는 선언문을 채택했다. 

기업의 선택을 이끄는 일에 힘을 보탠 시민사회의 노력 역시 이전과는 다른 실용노선의 힘이 작동했다. 그만큼 급박하고 필요했다는 뜻이다. 

그린피스, 세계자연기금, 에너지시민연대, 생물다양성재단, 환경운동연합,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는 단체이지만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길에서 기업들의 선택을 적극 지지했다. 

그린피스는 재생에너지산업이 세계적으로 일자리 천만 개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화석연료 관련 직종이 두 개의 일자리를 만들 때 재생에너지는 2.5배인 5개의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고도 강조했다. 

강성 환경단체인 그린피스조차 산업과 일자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것을 보며, RE100은 기업의 생존이자 우리 미래세대의 삶을 바꾸는 전략임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2022년 3월9일 대선을 앞두고 RE100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RE100과 ‘택소노미’라는 낯선 용어들이 후보들의 토론 테이블에 올라왔다.

경중은 있었지만 말들의 성찬 속에서 후보들은 기후위기가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대선은 끝났고 RE100이라는 용어보다는 원자력에너지 발전에만 골몰하던 후보가 승자가 되었다. 재생에너지 성장의 험로는 뻔하게 예측되었다.

기후위기를 지나 기후난민, 기후불평등이 만연해지고 있는 시대다. 이전 상태가 아닌 정말 다른 상태가 되었다. 기후 재앙으로 폭우를 만난 반지하방은 고통의 무덤이 되어야 했다. 폭염이었지만 제대로 휴식하지 못한 젊은 마트노동자는 쓰러졌다. 

폭우로 제방은 뚫리고 지하차도 안으로 쏟아져내린 물로 시민들은 참혹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농민의 눈물도 이어졌다. 몇 동강으로 흩어진 씨없는 수박은 출하를 앞두고 상품이 되지 못했다. 쓰레기가 되어 뿌리를 내렸던 땅 위에서 뒹굴고 있었다. 
 
[ESG자본주의] 생존 문제 된 ESG 기업들만 각자도생 분투, 정부 지원 간절

▲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번 정부는 생명을 이렇게 가볍게 여기는 시대를 지나 기후위기조차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

대선 기간 RE100이라는 용어를 알게 된 대통령은 RE100보다는 원전에 몰두하며 CF100이라는 괴이한 인증을 만든다고 하며, RE100을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다. 일찍이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의 글로벌 기업들이 이미 확고하게 세운 정책을 나 몰라라 하는 셈이다. 갈라파고스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러므로 기업은 각자도생을 선택하게 된다. RE100에 맞는 기업정책을 만들고 실행하기 위해 실무자들은 눈물겨운 분투를 겪고 있다.

ESG 역시 그 맥락과 같이 하고 있다. ESG를 깊게 느끼는 기업은 대체로 수출기업이다. 글로벌 기업은 공급망 실사를 통해, 납품기업을 선정하고 관리할 때 공급망 차원에서의 ESG요인들을 실사하고 있다. 애플과 삼성과 LG의 관계가 이러하다. 혼자 힘으로 해낼 수 없는 기업 실무자들은 정부의 지원을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누구는 ESG가 피로하다고 말한다. 오랜 기간 승패가 안보이는 전쟁터에서 겪는 우울함과 비슷하다고 여겨진다. 대한민국 기업들의 경제 분투기 속에서 다시 5년 전 대기업의 차장급이었던 실무자가 호소했던 말, ‘목에 칼이 들어오는 것 같다’를 떠올린다. 

정부는 칼을 치워주거나 칼이라 하더라도 무딘 칼일 수 있도록 효과적이고 주요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 그마저 하지 못하면 그게 친기업, 친시장을 외치는 대한민국 정부라고 할 수 있을까.

2023년 대한민국 기업현장은 뜨거운 분투를 겪는 실무자들의 사투가 여전히 넘실대고 있다. 거기 정치는 없다. 정치가 있어야 할 현장에 있는 것은 ‘각자도생. 2023년 국회 일터 역시 전쟁터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단 그 싸움의 대상은 과거로의 회귀, 기후위기에 눈감는 모습이어야 한다. 그래야 미래세대에 부끄럽지 않은 우리가 되지 않을까.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원욱 의원은 ESG 기본법 발의를 준비하며 기후환경 변화에 따른 기업들의 대응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제19, 20, 21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정보위원회 등에서 활동했다. 21대 국회 전반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을 지냈으며 현재 국회 세계한인경제포럼, 국회 모빌리티포럼 대표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