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을'의 촛불, 세상이 바뀌었다

▲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열린 '아시아나항공 No Meal(노 밀) 사태 책임 경영진 규탄 문화제'에서 아시아나항공 승무원 등 직원들이 박삼구 회장에게 책임을 물으며 경영진 교체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의 날개’가 위기다. 공교롭게도 양날개가 모두 그렇다. 

지금이야 저비용항공사들이 하늘 길에 속속 날아오르면서 선택의 폭이 넓어졌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외국항공사를 타지 않는다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양자택일을 피할 길이 없었다. 

국적항공사를 이용하는 이유는 개인마다 다를 테지만 승무원들과 말이 통한다거나 기내식이 맛있다는 것도 중요한 선택요인이었다.  

뜨끈한 불고기에 흰밥, 거기에 딸려 나오는 튜브 고추장이라니.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타고 한번이라도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국적항공사의 편안함을 경험해봤을 터다. 
 
6일 저녁 아시아나항공 직원들과 대한항공 직원들이 광화문에서 촛불집회를 연다. 과정은 달랐지만 목표는 하나다. 두 회사 직원들 모두 경영진 퇴진 혹은 교체를 바라고 있다. 

직원들이 경영진, 그것도 오너경영자의 퇴진을 요구하는 것은 과거 같으면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수직적 상하관계가 명백한 대기업 조직문화를 일거에 뒤집으려는 말 그대로 전복적 시도다. 

현직 대통령 탄핵으로 귀결된 촛불혁명은 역사의 한 페이지로만 장식된 게 아니다. 촛불혁명은 지나간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촛불혁명의 경험이 개인과 조직의 일상에도 깊이 새겨졌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권력남용과 적폐가 있는 곳이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촛불이 켜지곤 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위기를 부른 요인들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일종의 ‘평행이론’ 같은 것이 감지된다. 

두 항공사를 유례없는 총체적 난국에 이르게 만든 것은 재무적 위기나 항공기 안전사고와 같은 회사 내부에 국한된 요인이 아니다. 그랬다면 이토록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두 항공사의 위기를 부른 것은 한쪽은 광고회사, 다른 한쪽은 기내식 공급회사였을 뿐 시발점이 다르지 않다.   

비행기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하다 보면 시차 적응이 안 돼 극도의 피로감을 겪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영어로는 이런 시차부적응증을 jet lag라고 하는데 lag라는 단어는 원래 ‘뒤처진다’라는 뜻이다. 

우리 사회는 어쩌면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런 jet lag과 싸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령 1980년대 한국영화를 보면 방안에서도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버젓이 나온다. 만약 이런 장면이 지금 나왔다간 당장 심의에 걸릴 판이다. 술자리에서 은근슬쩍 여직원의 어깨에 손을 올리거나 신체부위를 만지는 행위 역시 낭만적 치기이기는커녕 성추행으로 고발될 만한 감이다.    

오랜 기간 굳어져온 ‘을’을 향한 ‘갑’의 관행도 이제는 그것이 부당하거나 과도하다면 명백한 횡포이며 심지어 폭력으로 간주된다. 

시대가 바뀌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시차 부적응 행위를 지속한다면 법적 처벌이든 도덕적 비난이든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조양호 회장 일가처럼 말이다. 

대한항공직원연대는 아시아나직원연대가 주최하는 6일 촛불집회 참여를 독려하며 안내문에 이렇게 썼다. 

“갑횡포를 뿌리뽑기 위해 갑횡포로 고통받는 이들과 연대해야 한다. 아시아나직원연대와 함께 할 것을 제안한다. 갑횡포를 막아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을’들의 단결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경쟁사란 점은 이제 두 회사 직원들에겐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셈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