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Who Is ?] 김동연 경제부총리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동연은 문재인 정부의 첫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가난한 집의 소년가장에서 장관급인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장까지 역임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경제관료로 30년 이상 일했으며 특히 예산 전문가다.

1957년 충청북도 음성에서 태어났다. 덕수상업고등학교를 다니던 중에 한국신탁은행에 취직했고 야간대학교인 국제대학교 법학과를 8년 동안 다닌 끝에 졸업했다.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 사무관으로 일을 시작했다. 기획예산처와 기획재정부에서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강한 기획력과 추진력을 보여줬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한국의 중장기적 목표인 ‘비전 2030’을 작성하는 실무를 맡았다. 박근혜 정부 첫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했다.

아주대학교 총장으로 학생들과 소통을 확대했다.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질문할 것을 요구하면서 ‘스펙’보다 인생의 경험을 넓혀야 한다고 조언했다.

풍부한 국정운영 경험과 소통능력으로 문재인 정부의 초대 경제부총리 후보에 유력하게 거명돼 왔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2017년 6월 9일 전체회의에서 김동연을 놓고 ‘적격’ 판정을 담은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했다.

저성장과 청년실업 등 산적해 있는 중대한 경제현안들을 풀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안고 있다.

경영활동의 공과


△경제부총리 내정과 인사청문회 통과
2017년 6월 9일 김동연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보고서가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했다. 김동연은 이낙연 국무총리와 서훈 국정원장에 이어 새 정부에서 세 번째로 국회 문턱을 넘어섰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전체회의에서 김동연을 놓고 ‘적격’ 판정을 담은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했다.

2017년 5월21일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첫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로 지명됐다. 문 대통령은 경제적 불안요인이 산적한 상황을 감안해 한국 경제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경제부총리를 최대한 이른 시기에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김동연을 경제부총리로 지명한 이유로 “경제를 거시적으로 통찰하는 능력과 조정능력, 위기관리 능력, 과감한 추진력을 모두 갖추고 있다”며 “서민의 어려움도 누구보다 공감할 수 있다”고 꼽았다.

김동연은 예산 전문가로서 재정지출을 늘리면서도 효율적으로 집행해 경제를 활성화하는 정책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부총리로 내정된 뒤 기자들에게 “사람 중심의 일자리 창출과 공정한 시장경제 구축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단기적으로는 위기관리, 일자리, 경제활성화에 힘쓰고 중장기적으로는 경제체제 및 구조 개선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고용증대를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에도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재정확장정책을 펼쳤을 때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증세할 것인지를 질문받자 “실효세율을 높일 방안을 찾은 뒤 신중하게 접근하겠다”고 대답했다.

△아주대학교 총장 역임
아주대학교 총장 시절 일반 학생들과 적극 소통하면서 개방적인 행보를 보였다.

2014년 12월 아주대학교 총장으로 내정돼 2015년 2월 취임했다. 총장이 되자마자 신입생 대상으로 이례적인 특별강연을 하면서 “자신에게 질문하고 남에게도 끊임없이 물어야 환경과 틀을 깨는 ‘유쾌한 반란’을 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동연은 취임한 뒤 ‘총장 북클럽’을 만들어 매달 학생 20명과 독서토론을 했다. 학생들과 햄버거·콜라를 먹으면서 학교 운영에 관련된 의견을 듣는 ‘브라운백 미팅’도 2주에 한차례씩 열었다. 총장으로 취임한 뒤 1년 동안 직접 만난 학생만 8천 명에 이른다.

방학 기간에 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선발해 해외 명문 대학교에 연수를 보내고 비용은 학교 예산과 기업 등의 기부금으로 충당하는 ‘애프터유’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김동연은 가난한 시절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경험을 거울삼아 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고 한다.

학생들과 소통을 중시한 반면 교직원 등과 소통은 미흡하다는 비판이 일각에서 나왔다. ‘모피아’ 출신으로서 대학교 총장에 올랐다는 시각도 존재했다. 모피아는 기관과 인맥의 힘을 앞세워 권력을 행사하는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출신 인사들을 부정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박근혜 정부의 초대 국무조정실장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2013년 2월 초대 국무조정실장(장관급)에 발탁됐다. 국무조정실장은 개별 부처의 정책 조율과 조정을 책임지면서 총리실 아래 있는 여러 회의체를 주관하는 자리다.

국무조정실장으로 지명됐을 때 하마평에 거의 오르내리지 않은 후보라 의외의 인사로 꼽혔다. 국무조정실장이 사회보장위원회를 주관하면서 4대 중증질환과 기초연금 등 복지정책을 총괄하는 자리임을 감안하면 그가 예산 전문가라는 점이 높게 평가된 것으로 추측됐다.

국무조정실장이 된 뒤 국정과제 점검체계인 ‘신호등 평가제도’를 만들고 규제비용총량제도 도입했다. 2013년 10월 백혈병으로 투병하던 장남을 떠나보냈지만 발인 날 오후에 출근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2014년 7월 가족과 건강 등의 이유를 들어 사표를 냈다. 그 뒤 경기도 양평으로 내려가 근처의 중고등학교에서 강연하거나 봉사활동을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을 맡았다. 당시 경제·재정·통화·금융분야를 총괄하면서 경기침체에 적극적인 정책으로 맞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9년 1월 이명박 대통령의 청와대 조직개편에서 국정과제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겨 공기업 선진화와 규제개편 등 주요 정책과제를 수행했다.

2010년 8월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에 오르면서 예산분야를 담당하게 됐다. 당시 이전에 증액됐던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줄이는 등 이명박 정부의 기조에 맞춰 재정건전성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2년 1월에 기획재정부 2차관에 올랐다.

2012년 4월 여야가 앞다퉈 복지공약을 내놓자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는 점을 들어 “여야의 공약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논란에 휩싸이자 사의를 표명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13년 박근혜 정부의 국무조정실장이 된 데는 이때의 ‘소신발언’이 영향을 줬다는 추측도 나온다.

김동연은 2015년 인터뷰에서 당시 발언을 놓고 “여야의 복지정책을 점검하니 재정 차원에서 감당하기 어려워 추가 증세나 국채 발행이 필요하다고 말했을 뿐”이라며 “야인이 될 각오를 했는데 오히려 더 큰 자리(국무조정실장)가 다가왔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의 ‘국가비전 2030’

노무현 정부에서 위상이 높아진 기획예산처 관료로서 여러 실무를 담당했다. 특히 당시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을 보좌하면서 노무현 정부의 중장기적 목표와 전략을 담은 ‘비전 2030’ 작성의 실무를 총괄해 두각을 나타냈다.

비전 2030은 2030년까지 한국을 삶의 질 세계 10위로 올려놓고 전체 예산의 40%를 복지재정으로 편성, 전체 육아비용에서 부모의 부담을 37%로 축소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때문에 김동연이 국가에서 복지를 책임지는 ‘큰 정부’를 선호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사회구성원 사이의 신뢰를 높여 사회적 거래비용을 낮추는 ‘사회적 자본’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비전 2030을 짤 때도 정부 공식보고서에 사회적 자본의 확충을 핵심적인 전략으로 넣기도 했다.

△흙수저
김동연은 엘리트 관료들이 즐비한 기획재정부에서 보기 드문 ‘흙수저’ 출신으로 꼽힌다. 어려운 가정환경과 비교적 낮은 학력을 극복하고 뛰어난 장관급 위치에 올랐다.

김동연은 덕수상업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1975년 한국신탁은행(현 하나은행)에 들어갔다. 그러면서도 야간대학교인 국제대학교(현 서경대학교)를 8년 동안 다니면서 업무와 학업을 병행했다. 이때 쓰레기통에서 우연히 찾은 고시잡지를 보고 관료가 되기로 결심했다. 주경야독 끝에 1982년 6회 입법고시와 26회 행정고시에 함께 합격했다.

1983년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 사무관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 뒤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에서 업무능력을 모두 인정받고 요직에 올라 ‘고졸신화’로 불렸다.
[Who Is ?] 김동연 경제부총리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가 21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의 한 카페에서 기자간담회를 위해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비전과 과제/평가

◆ 비전과 과제

김동연은 경제부총리 인사청문회를 통과하고 임명이 확정될 경우 저성장과 양극화 등 눈앞에 당면한 경제현안을 해결해야 하는 중책을 안게 된다.

김동연이 우선적으로 대처해야 할 문제는 높은 청년실업률로 꼽힌다. 문재인 대통령도 일자리위원회 상설과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을 통해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저성장에서 빠져나와 성장잠재력을 보충하는 것도 과제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12년부터 매년 2%대에 머무르고 있다. 소비심리도 여전히 부진한 편이다.

저출산에 따른 고령화와 생산가능인구 감소에도 대처해야 한다. 경기침체가 저소득층에게 큰 타격을 주면서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고 있는 문제도 있다.

국제적으로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적 보복과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 문제가 산적해 있다.

◆ 평가

재정경제원, 기획예산처, 기획재정부 등에서 오랫동안 일한 정통 경제관료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가까운 사이로 꼽혔다.

둥글둥글한 성격이면서도 합리적이고 추진력이 강한 ‘외유내강’형 인사로 평가된다.

실무관료 시절 일처리를 깔끔하게 하면서도 상사의 뜻을 잘 헤아리는 타입으로 평가됐다. 청와대에서 여러차례 일한 데도 근무태도가 한몫한 것으로 알려졌다.

꼼꼼하고 기획력이 뛰어난 인사로 꼽힌다. 노무현 정부부터 이명박 정부를 거쳐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계속 중용됐던 데도 특유의 치밀함이 높이 평가된 점이 작용했다.

국무조정실장 시절 대학생 강연에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취감을 얻는 방법으로 ‘반란’을 제시했다. 당시 그는 “처한 환경과 어려움부터 시작해 자기 자신, 나아가 사회에 건전한 반란을 일으켜야 한다”고 말했다.

어려웠던 가정환경과 고학생 경험 등이 관료 생활에 영향을 미쳤다. 2014년 7월 국무조정실장에서 물러날 때도 신임 사무관들에게 ‘공직관’을 강의하면서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따뜻한 가슴이 없다면 진정한 엘리트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11세에 아버지가 타계해 소년가장 역할을 했다. 이때 서울 청계천 판잣집을 전전하다가 경기도 광주대단지의 천막으로 강제 이주된 경험이 있다. 덕수상업고등학교를 다니다가 한국신탁은행에 들어간 것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서였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관료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열정과 낙관적인 자세를 들었다. 기획재정부에서 일했을 때 이같은 태도로 여러 후배들의 존경을 샀다.

청와대와 기획재정부 관료 시절 글로벌 금융위기 등에 빠르게 대처하면서 종합적인 위기관리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책을 수립하고 개별 정책들을 연계하는 데 뛰어나 ‘정책수립의 마스터’로 불렸다.

세계은행에 파견됐고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에서 개발도상국 지원사업을 맡는 등 국제경험도 풍부하다.

성실성으로도 유명하다. 기획재정부 예산실장 때인 2011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이 2013년도 예산 정책기조를 다시 점검할 것을 주문하자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예산안 검토에 집중했다. 2012년 초 기획재정부 2차관이 된 뒤에도 종종 야근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3월 국무조정실장으로 지명됐을 때 박재완 재정경제부 장관이 사석에서 “각 부처의 정책을 틀어쥐고 국정 현안을 조정해야 하는 국무조정실장 자리에 김동연이 최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개방적인 소통을 중시한다. 아주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한 뒤 총장실의 소파를 치우고 회의하기 편한 원탁형 테이블을 들여왔다.

아주대학교 총장 시절인 2016년 7월 매일경제 인터뷰에서 대학생 새내기 시절로 돌아갈 경우 “금융회사나 공무원 취직 대신 창업 등 하고 싶은 일을 ‘빡세게’ 찾을 것 같다”고 말했다.

2013년 10월 큰아들이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발인을 마치고 오후에 사무실에 나오는 등 평소처럼 근무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훗날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큰아들을 생각하면)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기도 하고 심장에 큰 구멍이 난 것 같기도 하다”고 단장의 아픔을 토로했다.
[Who Is ?] 김동연 경제부총리
김동연 아주대학교 총장(왼쪽)이 2015년 5월3일 경기도 수원 아주대학교 잔디밭에서 열린 '브라운백 피스트'에서 한 학생에게 맥주를 따르고 있다. <뉴시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82년 6회 입법고시와 26회 행정고시에 모두 합격했다.

1983년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 사무관으로 들어와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경제기획원에서 예산실 사무관과 대외경제조정실 사무관을 거쳤다. 그 뒤 대통령실 행정관, 재정경제원 과장을 역임했다.

2002년 대통령 비서실장 보좌관이 됐다.

2002~2003년에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 국제대학원에 풀브라이트 교환교수로 나갔다.

2003~2005년 동안 세계은행(WB) 선임정책관으로 일했다.

2005~2006년에 기획예산처 전략기획관으로 일했다. 그 뒤 기획예산처에서 2006~2007년에 산업재정기획단장, 2007~2008년에 재정정책기획관을 맡았다.

2008년에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조정분과 전문위원을 맡았다. 당시 대통령 당선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었다.

2008~2009년에 대통령실 경제수석실 경제금융비서관을 맡았다. 2009~2010년에는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실 국정과제비서관을 역임했다.

2010~2012년 2월 동안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으로 일했다.

2012년 2월~2013년 3월에 기획재정부 제2차관을 맡았다.

2013년 3월~2014년 7월 동안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했다.

2015년 2월에 제15대 아주대학교 총장으로 선임됐다.

2017년 5월21일 문재인 정부의 첫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내정됐다.

◆ 학력

1975년 덕수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일 때 한국신탁은행에 입사했다.

1982년 국제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국제대학교는 야간대학교로 회사와 업무를 병행했다.

1988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번에도 일하는 도중에 학위를 얻었다.

1993년 미국 미시간대학교에서 정책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얻었다. 이때 풀브라이트 장학재단의 지원을 받았다.

◆ 가족관계

아내 정우영씨와 슬하에 아들 2명을 뒀다. 2013년 10월 큰아들은 세상을 떠났다.

◆ 상훈

◆ 기타

2014년 4월 기준으로 본인과 가족 명의를 아우른 재산 16억8943만 원을 보유한 것으로 신고했다.
[Who Is ?] 김동연 경제부총리
김동연 기획재정부 2차관이 2013년 3월2일 국무조정실장으로 내정된 직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어록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예컨대 일자리를 확충한다면 어떻게 해야 경제 활력을 지속적으로 불어넣을 수 있을지, 성장 잠재력까지 키울 수 있을 지를 살펴 내실 있는 정책을 해야 한다.” (2017/05/21,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내정된 뒤 기자들과 만나)

“기성세대가 ‘나도 젊을 때 힘들었다’고 하는데 지금 젊은이들은 그보다 훨씬 힘들다. 나 때는 상고를 나와서 은행에라도 갔다. 지금 학생들이 느끼는 고민은 단순히 취업과 진로에 대한 문제에 국한된 게 아니다. 그것보다 훨씬 깊다.” (2016/07/17,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청년층의 취업난에 관해)

“국내 대학에서 A학점은 질문 안하고 교수에 순응적인 학생들에게 돌아가지만 미국 대학들은 교수들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도전하는 학생들을 높이 평가한다. 비판적 사고가 필요한 요즘에는 외국어 점수 등 ‘스펙’보다는 인생의 ‘스펙트럼’을 넓혀야 한다.” (2015/02/25, 경기도 수원 아주대학교 캠퍼스에서 진행한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열심히 생각하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공직자들의 자기희생이 필요하다.” (2014/07/22, 국무조정실장을 그만두면서 직원들에게 나눠준 이임사에서)

“세월호 사고로 자녀의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는 부모의 모습을 TV로 보면서 남 몰래 눈물을 닦았다. 떠난 자식에 대한 애절한 마음과 간절한 그리움을 누가 알까. 자식을 잃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알 수 없는 고통일 것이다.” “어른이라 미안하고, 공직자라 더 죄스럽다” “2년여 투병을 하다 떠난 큰애 생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한데, 한순간 사고로 자식을 보낸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생각하니 더 아프다. 사고 수습 과정에서 그분들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려고 노력했는지, 그분들 입장에서 더 필요한 것을 헤아려는 봤는지 반성하게 된다” (2014/05/04, 중앙선데이에 기고한 글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의 고통을 어루만지며)

“사회적 관계를 가능하면 단발이 아닌 연속게임으로 만들어야 한다. 선거 때 정치인들이 무분별한 약속을 남발하는 것은 유권자와 단발게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약의 이행을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거나 공약(空約)이 된 공약(公約)을 유권자가 기억하고 심판한다면 선거라는 정치적 거래관계도 연속게임으로 만들 수 있다.” (2013/06/29, 중앙선데이에 기고한 칼럼에서)

“정치권의 복지공약은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시킬 것이다. 정치권의 이런 요구는 재정차원에서 ‘재앙’ 수준이다. 정치권이 내놓은 복지공약을 모두 실현하려면 추가 증세와 국채 발행이 불가피하다.” (2012/02/20, 기획재정부가 당시 여야의 복지공약을 모두 수용할 경우 연간 43조~67조 원 규모의 재원을 추가로 투입해야 한다고 분석했을 때)

“지금은 재정건전성을 확보한다기보다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쏟아 부었던 재정을 회복하려는 것이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글로벌 위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재정회복은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위기에 대비하는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2011/08/14, 기획재정부 예산실장 시절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는)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 확충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생산성 증가에 의해 경제가 성장하는 혁신주도형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의 재원배분에 있어서도 이러한 환경변화에 맞춰 새로운 경제의 틀을 짜는데 도움이 되고 성장잠재력을 확충시키도록 재정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2006/09/27, 2007년도 정부예산안을 발표하는 국정브리핑 자리에서)

“큰 정부, 작은 정부라는 이분법적 접근은 옳지 않다. 정부 재정 중에서도 경제발전 관련 예산은 줄고 있지만 사회복지 분야는 늘고 있는데, 어느 분야를 보느냐에 따라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2006/02/10, 기획예산처 전략기획관 시절 한겨레 기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