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수 삼성생명 사장. |
삼성생명이 삼성그룹의 금융지주사로 가기 위한 준비를 거의 마쳤다.
중간금융지주사로 전환이 최선이겠지만 재벌개혁의 목소리가 높은 상황에서 국회에서 법적 근거의 마련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생명이 단순 금융지주사로 전환한 뒤 요건을 갖추는 데 주어지는 유예기간 5~7년을 최대한 활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 중간금융지주사법안의 운명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중간금융지주사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중간금융지주사법)’을 의원입법 형태로 올해 안에 발의하기로 했다.
공정위가 올해 법안을 발의하고 내년 초에 국회에서 통과되면 삼성전자가 이미 밝힌 지주사 전환을 위한 6개월 검토 계획과 시기적으로 맞아 떨어진다.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은 삼성전자 지배구조 개편과 비슷한 시기에 맞물려 진행될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인적분할한 뒤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이 어렵게 취득한 자사주 10.3%가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며 “삼성전자 인적분할과 삼성생명의 인적분할이 동시에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삼성그룹이 박근혜 게이트에 연루된데다 중간금융지주법인 재벌에 특혜를 준다는 시각을 지닌 야당 의원들이 많아 국회 통과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촛불민심이 재벌개혁을 촉구하고 있는 점도 중간금융지주사법안 통과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10일 서울 광화문과 전국 각지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다음 탄핵은 재벌입니다’ ‘국정농단의 주범으로 재벌을 처벌하자’ 등의 피켓과 구호가 쏟아져 나왔다.
◆ 국회 도처에 지뢰밭
중간금융지주회사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더라도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을 막는 법안들이 도처에 자리잡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인적분할 등을 통해 자사주의 의결권을 활용하는 방안을 막기 위한 법안들도 연이어 발의했다.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 시나리오 가운데 삼성생명이 인적분할한 뒤 자사주를 이용해 기업지배력을 높이려는 계획이 유력하게 꼽히는데 이를 가로막는 법안들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은 자사주 의결권을 활용하기 어려워져 지배구조 개편이 뒤로 늦춰질 가능성이 크다.
▲ 김창수 삼성생명 사장이 임직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는 모습. |
현재 보험업법에서는 보험사가 계열사의 주식이나 채권을 자산의 3%만 보유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데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취득원가로 계산한 삼성전자 주식가치는 삼성생명 자산의 3%를 훌쩍 뛰어넘는다.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대부분을 팔아야하는 셈인데 삼성전자의 지분의 경우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와도 밀접한 관련을 갖는 만큼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
◆ 삼성생명, 단순 금융지주사로 전환할까
중간금융지주회사법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삼성전자의 지주사 전환에 맞춰 삼성생명이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한 뒤 단순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방안이 제기된다.
국회에서 자사주 활용을 막는 법안이 통과되기 전에 삼성생명이 금융지주회사로 우선 전환한 뒤 유예기간을 활용해 국회에서 통과되는 법안 등에 맞춰 그룹 전체의 지주회사 전환을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지배구조는 이 부회장 등 오너 일가가 삼성생명 투자회사를 직접 지배하면서 그 밑으로 삼성생명 사업회사와 다른 금융계열사를 두는 형태로 이뤄진다.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르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집단)이 비은행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계획을 금융위원회로부터 승인받을 경우 관련 요건을 갖추는 데 필요한 유예기간은 최소 5년, 추가적으로 승인을 받으면 7년까지 받을 수 있다.
삼성생명이 단순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면 금산분리 규정에 따라 삼성물산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생명 지분을, 삼성생명이 소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해야 하는데 유예기간을 감안하면 당장 매각하지 않아도 된다.
윤 연구원은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7.4%를 삼성물산 또는 삼성물산과 삼성전자 지주회사가 합병한 법인에 유예기간 동안 매년 일부분을 나누어 매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그룹 전체에 대한 지배력을 높일 수 있게 된다.
물론 5~7년의 유예기간에 중간금융지주회사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삼성생명은 이에 맞춰 대응하면 된다.
이 과정에서 삼성생명은 보험업법상 자산운용한도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적 여력도 확보할 수도 있다. 삼성생명은 금융지주사로 전환하기 위해 삼성화재 지분 15%를 추가로 확보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는데 당장 계열사 주식에 투자할 수 있는 한도는 3천억 원가량에 불과하다.
임수연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유예기간 5년이 주어지기 때문에 삼성화재의 자사주 15.9%를 매입하는데 보험업법상 자산운용한도와 무관할 뿐 아니라 매입을 위한 시간 여유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최석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