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정부가 비은행기관의 은행대리업 허용을 두고 오랜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지방 금융소외를 해결하기 위해 전국 영업망을 갖춘 우체국이 은행 일부 업무를 대행하는 ‘은행대리업’을 검토하겠다는 뜻을 내놨다.
▲ 정부가 비은행기관의 은행대리업 허용을 두고 오랫동안 고심하고 있다. |
이후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최근 국감에서 다시 이슈로 떠올랐는데 금융위는 지방소멸 여파에 우체국 수가 줄고 있다는 점, 은행업무를 비은행기관에 맡겼을 때 금융사고 등의 책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 등을 놓고 고심하는 것으로 보인다.
23일 우체국예금보험 현황 공시를 보면 금융영업을 펼치는 우체국 수는 6월 말 기준 2421곳으로 2019년 말(2572)보다 150곳 가량이 줄었다.
국가기관인 우체국도 수도권 집중에 따른 지방소멸 현상을 피하지 못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지방에서는 이미 우체국이 문을 닫으면서 금융뿐 아니라 택배마저도 처리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금융위가 오래 전부터 은행의 영업점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우체국에서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는 대리업 도입 계획을 내놨지만 우체국 수마저도 줄고 있는 것이다.
국민통합위원회는 올해 7월 우체국의 은행대리업 도입을 제안했고 금융위도 지난해 7월 ‘은행권 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오프라인 창구를 늘리기 위해 우체국 등에 은행대리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앞서 2020년 7월에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 금융정책 추진방향’을 통해서도 은행대리업으로 디지털 취약계층의 금융접근성 유지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찾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은행대리업 도입 계획을 내놓은지 4년이 넘게 지났지만 금융위는 여전히 우체국에서 은행업무를 볼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단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가 쉽사리 결론을 내지 못하는 셈인데 우체국이 은행업무를 처리할 때 벌어질 수 있는 내부통제나 책임 소재 문제 등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병환 금융위원장에 국민통합위원회의 우체국 은행대리업 도입 제안에 대한 의견을 묻고 있다. <국회 영상회의록> |
우체국 영업망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별정 우체국 관리 문제가 대표적이다.
별정 우체국은 개인이 지방에서 우체국을 세운 뒤 정부 인가를 받아 운영하는 곳으로 1960년대 정부 예산이 부족했던 과거의 유산으로 여겨진다.
별정 우체국은 국가 손길이 닿기 어려운 곳에 많이 설치돼 우체국 영업망의 상당 부분을 맡고 있다. 6월 말 기준 별정 우체국은 686곳으로 전체 우체국의 28.3% 가량을 차지한다.
일종의 ‘사유재산’ 개념이기도 한 만큼 별정 우체국장은 직계 가족이나 지정인 사이에서 승계가 가능하다. 과거에는 체신과 금융 업무를 도맡아 지역 편의성을 높였지만 가족과 친인척 중심으로 운영되는 사례가 많아 종종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은행 업무를 다루게 됐을 때 내부통제에서 허점을 보일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시장에서는 이 때문에 은행대리업을 허용할 때 소비자 보호 조치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김자봉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9월 보고서에서 “은행법으로 은행대리업을 허용한다면 대리업무 범위와 대리업자의 적격성, 금융소비자보호를 위한 공시, 은행의 관리책임 등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은행대리업 도입과 관련해 좀 더 적극적으로 검토할 뜻을 내비쳤다.
김 위원장은 10일 국정감사에서 “(국민통합위가 제안한 우체국의 은행 대리업의) 필요성은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면서도 “실제로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보완점이 있는지 검토해 입장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서 정하겠다”고 말했다. 김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