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을 놓고 ‘두부장수론’을 펼쳤던
김종갑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두부 가격 현실화를 위한 구체적 행동에 들어갔다.
김 사장은 그동안 원재료인 콩보다 제품인 두부를 싸게 파는 것과 같은 전기요금체계의 개편을 주장했다. 정부의 누진제정책을 따르면서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잡아 손익을 맞춰나가려 할 것으로 보인다.
1일 한국전력이 발표한 전기요금체계 개편안의 핵심은 필수사용량 보장공제의 개선이다. 함께 제시한 선택적 전기요금제와 원가 이하 요금 현실화 등과 비교할 때 가장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한전에게 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전력은 필수사용량 보장공제제도 연간 4천억 원 가까운 전기요금을 할인해 주고 있다. 제도를 손보면 한국전력은 즉각적으로 수천억 원의 손실을 보전하는 효과를 볼 수 있게 된다.
필수사용량 보장공제는 월 전기사용량이 200㎾가 넘지 않는 가구에 최대 4천 원을 할인해 주는 제도다. 저소득 취약계층이 최소한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에너지복지정책으로 추진된 것이지만 취지와 달리 고소득층도 혜택을 받는 문제점이 지적돼 왔다.
특히
김종갑 사장은 2018년 국정감사에서 그도 필수사용량 보장공제의 혜택을 받고 있다며 전기요금 체계개편의 당위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사용해 왔다. 2월 마련한 한국전력의 ‘2019년 재무위기 비상경영 추진계획안’에도 필수사용량 보장공제를 손질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정부는 그동안 필수사용량 보장공제에 소극적 태도를 나타내 왔다. 지난달 정부와 한국전력이 필수사용량 보장공제 폐지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산업부는 즉각 보도자료를 내 “필수사용량 보장공제 폐지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사장이 한국전력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는 누진제 개편안과 연계해 필수사용량 보장공제 개편을 시도하면서 정부도 이를 허용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정부는 한국전력이 필수사용량 보장공제제도의 합리적 개선방안을 2020년 상반기까지 마련해 인가를 신청하면 관련 법령과 절차에 따라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소득과 전기사용량 실태를 정밀하게 조사하고 취약계층 보완조치를 강구하도록 단서를 달았다. 보장공제를 손보기 위한 충분한 명분을 확보하라는 뜻으로 읽힌다.
김 사장은 여기에 한발 더 나가 이사회 의결안에서 전기요금과 에너지복지를 분리하고 요금체계 밖에서 복지를 별도로 시행하는 방안을 조속히 실행하겠다고 밝혔다.
요금체계를 개편하더라도 취약계층의 에너지기본권 지원이라는 공익적 역할을 유지해 요금제 개편의 명분을 끝까지 잃지 않으려는 것으로 파악된다.
김 사장은 직접적으로 한전이 이득을 얻을 수 있는 필수사용량 보장공제 외에는 정부의 정책방향에 동조하면서 정부와 마찰을 최소화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전력 이사회 의결안에 담긴 선택적 전기요금제 도입과 에너지 소비효율 제고를 위한 수요관리 등은 정부가 이미 발표한 제3차 에너지 기본계획에 포함된 내용이다.
다만 정부의 에너지 기본계획이 20년 단위의 중장기 계획인 만큼 전기요금 체계개편이 생각처럼 빠르게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김 사장이 정부와 보조를 맞춰가면서 전기요금 체계개편을 시도하겠다는 의지를 자본시장 공시를 통해 확인한 것은 의미가 큰 것으로 관측된다.
필수사용량 보장공제 손질로 수천억 원의 이익을 볼 수 있고 장기적으로 전기요금체계 개편으로 정부정책을 현실화해 나가면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겼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