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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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철수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
1962년 1월22일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나 부산 범천동에서 자랐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의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규슈대학교 의학부 방문연구원,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학과장을 거쳤으며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해 컴퓨터백신사업에 뛰어들었다.
미국 유학을 떠나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석좌교수,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을 역임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대통령선거에 나섰으나 각각 박원순, 문재인 후보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출마를 포기했다.
서울 노원병 재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해 공동대표에 취임했으나 취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치룬 재보선에서 참패하자 책임을 지고 대표에서 사퇴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고 국민의당을 창당해 천정배 의원과 공동대표를 맡았다.
노원병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나 국민의당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의혹이 제기되자 당 대표에서 물러났다.
대선 출마를 공식선언한 뒤 손학규 후보와 박주선 후보를 상대로 7차례 전국 순회경선에서 모두 압승하며 국민의당 대선후보로 확정됐다.
대선에 패배한 뒤 잠시 일선에서 물러나 있다가 국민의당 안팎의 반발을 무릅쓰고 당 대표로 정계에 복귀했다.
국민의당 당 대표로 바른정당과 통합을 추진했다. 통합신당인 바른미래당 창당과 함께 대표에서 물러났다가 한 달 뒤 인재영입위원장으로 돌아왔다.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를 앞두고 있다.
감성보다 이성에 호소하는 정치스타일과 반듯한 이미지로 새로운 리더십을 주창해 지지층을 확장하고 있다. 정치 초보자이며 국가경영과 기업경영을 혼동하는 아마추어 정치인이라는 비판도 듣는다.
- 경영활동의 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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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출마
안철수는 4월4일 6·13 지방선거의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그는 공식 선언 자리에서 '서울의 혁신 신화, 성공 신화를 쓰겠다'고 강조했다. ‘바꾸자, 서울! 혁신경영 안철수’를 슬로건으로 내놓았다.
그는 '스마트 도시, 서울'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기술을 적용해 사고와 재해, 범죄 예방 확률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미래인재를 키우는 교육도시, 서울'을 위해 교육체계를 바꾸겠다고 했다. 코딩교육과 토론교육을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에 도입하는 방안도 들었다.
'일자리 넘치는 창업도시, 서울'을 목표로 창업을 막는 제도와 규제, 금융장벽을 낮추는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디지털 행정혁신, 서울'을 위해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한 행정서비스를 마련하기로 했다.
'따뜻한 공동체 도시, 서울'을 만들기 위해 각종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지하철 역사에 미세먼지 저감시설을 설치하고, 마을버스 노선을 늘리며 노들섬 개편 등도 공약으로 내세웠다. 기존 서울시 행정의 약점으로 강남 집값과 미세먼지 문제를 거론하기도 했다.
△바른미래당 창당 인재영입위원장 맡아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2018년 1월2일 비공개회의에서 신설 합당 방식으로 합당하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고 2018년 1월3일에 통합추진 협의체를 공식적으로 만들었다.
안철수는 유승민 전 바른정당 대표와 함께 통합추진위원장으로서 신당 창당에 힘썼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2018년 2월13일에 원내 30석 규모의 제3당 ‘바른미래당’으로 출범했다.
안철수는 합당과 동시에 대표를 내려놓고 2선으로 물러났다가 한 달 만인 2018년 3월16일에 인재영입위원장으로 복귀했다.
안철수는 인재영입위원장으로서 여러 인재들을 영입했다.
인천 송도국제도시 개발 특혜 의혹을 제기한 정대유 전 인천시 시정연구단장, 자유한국당에서 탈당한 전·현직 지방의회 의원들, 대기업 임원 등 전문가그룹을 영입했다.
전문가그룹에는 삼양홀딩스 임원이었던 서진웅씨, 정수경 변호사, 조용술 꿈꾸는골목 대표, 용성욱 한국IT융합기술협회 부회장 등이 속해 있다.
장성민 전 의원도 영입했다. 장 전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야당 총재 시절 비서를 지냈고 종합편성채널 TV조선에서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했던 경험이 있다.▲ 2018년 3월28일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서울특별시당 개편대회에서 안철수 인재영입위원장(왼쪽부터), 유승민, 박주선 공동대표, 김동철 원내대표가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뉴시스>
2017년 8월27일 대통령선거 패배 3개월여 만에 새 대표로 복귀했다.
안철수는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민의당 전당대회에서 2만9095표(51.09%)를 얻어 대표에 선출됐다. 과반 득표율로 결선투표 없이 당선을 확정했다. 임기는 2019년 1월까지로 내년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 등을 이끈다.
안 대표는 2017년 8월27일 당 대표 선출로 대선패배 3개월여 만에 다시 정치전면에 나서게 됐다. 안철수의 당 대표 선거출마를 놓고 당내에서 거센 반발이 있었지만 결국 당원들의 재신임을 얻는 데 성공했다.
이번 당선으로 국민의당은 안철수 대표가 창업주이자 당의 ‘간판’ 임을 다시 확인했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과 안 대표의 대선후보 시절 공약이 비슷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적폐 청산과 개혁 입법을 추진하는 데 초당적 협력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용기 자유한국당 원내수석대변인은 “문재인 정부가 인사청문 정국 등에서 오만한 인사를 할 수 있었던 건 국민의당이 보여준 자세, 처신 등과 무관치 않다”며 “문재인 정부의 독선, 독주, 견제하는 야권 공조를 굳건히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19대 대선 '뼈아픈' 참패
안철수는 2017년 5월9일 19대 대선에서 득표율 21.4%로 3위에 그쳤다. 문재인 대통령이 41.1%,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24%를 얻었다.
텃밭으로 여겼던 호남에서조차 문 대통령에게 큰 표차이로 뒤져 참패하면서 지역적 지지기반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안철수는 대선 과정에서 국민의당 중심의 집권전략인 ‘자강론’을 강조했다.
안철수는 2016년부터 자강론을 주장했는데 2017년 3월 들어 지지율이 오르면서 힘을 받았다. 2017년 3월30일 발표된 리얼미터 대선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안철수는 17.4%의 지지율로 안희정 충남지사를 끌어내리고 10개월 만에 2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지지율이 오르면서 박지원 당시 국민의당 대표와 김무성 당시 바른정당 고문 간의 물밑 라인을 통한 중도·보수 통합론도 잦아들었다. 안철수는 2017년 4월2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서울·인천지역 순회 경선에서 “정치인에 의한 공학적 연대론은 모두 불살랐다. 국민에 의한 연대, 그 길만이 진정한 승리의 길”이라며 인위적 연대론과 사실상 결별을 선언했다.
2016년 20대 총선 때 민주당의 야권 통합 요구에 맞서 “기득권 양당체제를 깨뜨리겠다. 광야에서 혼자 죽어도 좋다”고 외쳤던 것과 흡사한 태도였다.
안철수는 문재인 후보를 정면 공격하면서 양자 대결을 부각하려는 전략을 구사했으나 결과적으로 실패로 돌아갔다.
△경제공약 발표
19대 대선 과정에서 대기업의 금융계열사와 다른 분야의 계열사를 통합해 관리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안철수는 2017년 3월16일 국회에서 경제공약을 발표하면서 “삼성그룹과 한화그룹 등 대기업집단의 제조사와 금융사를 통합해 감독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금융 및 보험계열사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규제를 도입하고 계열사 사이의 출자를 적격자본에서 공제하도록 하는 그룹자본 적정성 평가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 또 그룹 전체의 위험을 관리하고 지배구조를 감독할 수 있는 제도를 점진적으로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삼성그룹과 롯데그룹 등 금융계열사를 보유한 주요그룹들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을 추진하는 가운데 안철수가 대기업의 금융 및 제조계열사를 통합해 관리한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4·13 총선에서 국민의당 약진
안철수는 2016년 4·13 선거에서 ‘국민의당 돌풍’을 일으키며 최상의 결과를 얻었다.
국민의당은 선거 전 여론조사와 달리 정당명부 투표에서 새누리당 다음의 지지를 얻어 전국정당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 결과 38석이라는 큰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16년 만에 양당체제가 허물어지고 다당체제의 출발점이 되는 선거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도 국회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기에 어느 당도 국민의당의 협조가 없이는 법안 처리를 못하게 되었다. 국민의당은 총선을 통해 38석이라는 큰 성과와 함께 '캐스팅보트'로서의 역할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호남에서 큰 성과와 달리 나머지 지역에서는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한계점으로 지적됐다. 국민의당은 지역구 25석 중 수도권 2석, 호남 23석, 13석은 비례대표 의원으로 의석을 얻었다.
△새정치민주연합 탈당
안철수는 2015년 12월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했다.
안철수는 문재인 대표가 조선대 강연에서 문재인, 안철수, 박원순 체제로 지도부를 구성하자고 했으나 이를 거부했다. 안철수는 다시 역제안으로 혁신 전당대회를 제안했으나 문재인 대표는 이를 거부했다.
안철수는 당시 당이 심각한 위기상황이라고 봤고 그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으로 혁신 전당대회라는 타개책을 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 12월13일 국회 정론관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을 떠나며 정권교체를 할 수 있는 정치세력을 만들겠다”며 탈당을 선언했다.
안철수는 당시 “지금 야당은 국민께 어떤 답도 드리지 못한다. 세상을 바꿀 수도, 정권교체의 희망을 만들지도 못한다, 더 큰 혁신은 배척당하고 얼마 되지 않는 기득권 지키기에 빠져 있다”며 문재인 대표를 비판했다.▲ 2018년 2월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8간담회의실에서 열린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추진위원회 3차 전체회의에 참석한 국민의당 안철수(오른쪽) 대표가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안철수는 2012년 9월19일 제18대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안철수는 유력한 대선주자였다. 당시 대선 전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근소한 차이로 1위를 달렸고 그 뒤를 무소속인 안철수,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차례로 잇고 있었다.
그러나 대선을 약 한 달 앞두고 문 후보가 안철수를 역전해 지지율에서 조금씩 앞서나갔고 안철수는 2012년 11월23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후보 사퇴를 선언했다.
안철수는 정권교체를 위해 문재인 후보에게 전격 양보한다고 밝혔는데 단일화 과정에서 문 후보 측과 여러 마찰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장 양보
2011년 9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나오면서 화제가 됐다.
이전에 정치입문 가능성을 단호하게 부정해왔던 안철수의 입장도 애매하게 바뀐 것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품게 됐다.
안철수는 당시 한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현 집권 세력이 역사를 거스르고 있으며,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결정을 내리진 않을 것”이라며 “이를 위하여 내가 출마하면 야권 단일화에 참여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원순 변호사에게 양보해야 하는지,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서울대 융합대학원 원장직을 그만두게 되면 신의를 저버리는 것이 아닌지, 정치를 한다면 10년 정도는 꾸준히 해야할 텐데 그럴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여지도 남겼다.
안철수는 결국 서울시장 보궐선거에는 출마하지 않기로 발표하면서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였던 박원순 변호사에게 사실상 양보했다. 박원순 후보는 정몽준 후보를 꺾고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무릎팍 도사’ 출연
안철수가 대중적인 관심을 크게 받기 시작한 것은 2009년 6월 MBC 예능프로그램 ‘무릎팍 도사’에 출연하면서부터다.
‘무릎팍 도사 안철수 편’은 16.6%의 높은 전국 시청률을 보였고 이를 계기로 안철수는 하루 아침에 대중적 인지도를 끌어올렸다. 안철수는 당시 정치에 입문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안철수는 이후 2010~2011년 ‘시골의사’ 박경철 안동신세계 연합클리닉 원장과 함께 대학을 돌며 ‘지방대학 기 살리기’강연에 나섰다. 이를 본 법륜스님이 청춘콘서트를 열자고 제안했고 이를 받아들여 대중과의 소통을 늘리며 젊은이들의 ‘멘토’ 이미지를 확실하게 굳혔다.
청춘콘서트 열풍으로 인지도가 높아지고 젊은층에서 전폭적 지지를 받게되자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뜻을 보였다. 그러나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출마를 양보하고 단일화를 발표했다.
△안철수연구소 설립
1995년 3월15일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했다.
안철수는 사업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처음 4년 동안은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당시 안철수연구소의 월급날은 매월 25일이었는데 월 초부터 직원들의 월급 걱정을 해야 하는 지경이었고 스스로 월급을 받지 않고 직원들의 월급을 줄 때도 있었다고 알려졌다.
1997년 세계적 보안솔루션 업체인 미국의 맥아피(Mcafee)로부터 ‘1천만 달러’에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제의가 왔지만 거절했다.
안철수는 “회사를 매각한다면 그 후에 직원들이 해고되어 실업자가 된다는 사실을 직시했고 또한 한국의 백신이 맥아피같은 해외 업체에 의해 장악당하는 그런 결과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절했다”고 밝혔다.
1999년 CIH(체르노빌)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백신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안철수연구소는 흑자 전환했다. CIH 바이러스로 인해 30만대 가량의 컴퓨터가 파괴되어 기업과 공공기관 등에서 수천억 원의 피해가 발생했는데 백신 관심도 급증했다.
이후 안철수연구소의 매출은 계속 늘어나 1999년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업체로는 한글과컴퓨터에 이어 두 번째로 연매출 100억 원을 넘었고 이후 세후 순익 100억 원은 안철수연구소가 최초로 달성했다.
- 비전과 과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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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전과 과제▲ 국민의당 안철수(가운데) 대표가 2017년 12월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6차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크레인 사고와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그는 다당제를 위해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의 통합을 꾀했고 바른미래당을 창당하는 데 힘썼다고 한다. 하지만 애초에 생각했던 대로 통합에 따른 지지율 상승은 이뤄지지 않았고 민주평화당이 창당되면서 의원 수도 줄어들었다.
안철수는 한자릿수인 바른미래당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6·13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는 동시에 인재 영입에 힘쓰고 있다.
안철수는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2012년 18대 대통령선거, 2013년 노원병 재보궐선거 등 다양한 선거를 경험한 경력이 있어 이번 선거에서도 좋은 성과가 기대된다는 말도 나온다.
안철수를 지켜보는 여러 당의 시선은 곱지 않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안철수가 서울시장 후보로 나가면 표가 없어 3등에 그칠 것이라고 깎아내렸다.
더불어민주당은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야권연대를 부각하며 설전을 예고하고 있다. 지지층이 일부 겹치는 바른미래당과 자유한국당이 표를 나눠 차지하게 되면 민주당이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안철수는 이번 서울시장 출마에서 좋은 성과를 얻지 못하면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당내에서 안철수와 당 지도부의 위상이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는데다 다음 대선에 출마할 때 필요한 정치적 자산을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 평가
2012년 9월19일 뉴욕타임스는 대선출마를 선언한 안철수를 놓고 ‘한국의 정치 스타’로 표현했다. 프랑스 AFP는 “부패와 정치, 기업 권력으로부터 때묻지 않은 인물”로 평가했다. 일본의 극우 언론인 산케이 신문은 “지금까지 정치인과 다른 신선한 인물”이라고 바라봤다.
국내 기성 정치권에서는 대체로 이와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이회창 전 총재는 “안 원장 같은 분은 유능한 과학자로, 컴퓨터 백신 전문가로 유능한 사람이니 그 분야에서 세계 1등이 되게 해줘야 한다. 정치권이 부추겨서 망가뜨리는 것은 안타깝지만 본인도 간이 배 밖으로 나오고 있다”며 정치인 안철수를 회의적으로 바라봤다.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안철수를 놓고 “경제민주화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부족한 사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세균 의원은 “정치를 모르는 초짜는 (대통령 후보로) 곤란하다”며 안철수를 겨냥해 직격탄을 날렸다. 김무성 의원은 안철수의 대선출마에 대해 “경험 없는 아마추어 정권이 나서면 대한민국은 더 큰 위기와 불안에 빠져 국민을 고생시킬 것”이라며 안철수의 출마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호평도 적지 않다.
“정치에 대한 불신, 기성 정당에 대한 환멸, 새로운 인물에 대한 갈망이 겹치면서 안철수 교수의 태풍현상이 있지 않았느냐. 기존의 정치권에서 기득권, 그리고 어쩌면 달린 식솔이 없으니까 그렇게 흔쾌히 홀가분하게 던질 수 있겠지만 그런 과정을 보면서 국민들은 바이러스 백신 무료배포, 대기업 독식 비판과 분노 등 안철수 교수의 공적 헌신을 했던 모습의 연장선에서 감동을 받는 것 같다”는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평가가 대표적이다.
2015년 12월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탈당한 뒤 공개석상과 사석에서 이전과는 다르게 거침없는 화법과 유머를 구사해 화제가 됐다.
기자들과 영화를 관람한 뒤 ‘더불어민주당’이라는 당 이름에 대해 “지금도 재미있잖나. 더‘불어’, 또‘터진’(민주당)”이라면서 탈당한 상황을 빗대어 “안철수없당” 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헤어스타일을 어디서 바꾼 것이냐는 질문에 “지역구에서 어디 한 곳만 가면 아줌마들이 싫어해 미용실을 돌아다닌다”고 말했다.
기자들과 오찬 간담회에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나눈 대화를 소개하며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김무성 대표의 성대모사를 하기도 했다.
틀에 박힌 모범생 이미지와 유약하다는 세간의 평가에서 벗어나 단호한 리더십을 지닌 호감형 정치인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한 시도로 풀이된다.
2016년 4월13일 총선에서 국민의당은 38석을 차지하며 3당 체제를 이끌어냈다. 이 체제의 최대 기여자 가운데 하나이자 수혜자로 평가받았다.
2017년 3월부터 시작한 국민의당 전국 순회경선에서 기존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아닌 중저음의 굵은 목소리로 연설해 관심을 모았다. ‘안 전 대표가 경선을 앞두고 스피치학원이라도 다닌 것 아니냐’는 농담이 나올 정도였다.
표정과 손동작에도 자신감이 보이자 ‘이제 진짜 정치인 다 됐다’는 평도 나왔다.
국민의당 경선 흥행과 함께 다자구도에서 10% 초반 대에 머물던 안철수의 지지율이 20%대까지 치솟으며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강력한 대항마로 떠올랐다. 안철수-문재인 양자구도로 가면 판세가 뒤집힐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에 밀려 득표율 3위에 그쳤다.
1991년 2월 입대해 해군 군의관(대위)으로 복무했다. 입대일 미켈란젤로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 있는 최초의 V3를 배포했으며 실수로 가족들에게 군대 간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나왔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나이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존댓말을 쓴다. 반말을 못한다. 심지어 군의관으로 복무하던 시절에도 병사들에게 반말을 쓰지 못했고, 부부싸움도 존댓말로 했다. 유년기 훈계조차 늘 존댓말로 하시던 어머니의 영향이라고 답변했다.
CEO는 대외적으로 회사를 대표하는 일을 하는 것일 뿐이라는 게 그의 기본철학이다. CEO와 직원 모두 수평적 관계에 있고 단지 하는 일이 다를 뿐이며 공유하는 가치관이 있다면 구성원이 바뀌어도 조직이 지속가능하다고 생각한다.
2011년 9월 서울시장 출마와 관련된 기자회견에서 아무리 수평적 리더십을 갖고 있어도 정부조직이 수평이 되면 곤란하다고 말하며 경영철학과 정치 사이의 고민을 드러냈다.
바둑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둑책 수십 권을 탐독한 뒤 대국에 나서며 바둑을 배웠다고 한다. 저서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에서 바둑에서 배운 경영원리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바둑은 부분적 이익보다 전체 국면을 봐야 한다”며 “바둑이 그러하듯 인생이나 사업도 결국은 장기전”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요소를 선점해야 바둑이 편해진다”며 “선점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에 회사가 어느 정도 성장한 뒤 관련 있는 영역으로 조인트벤처를 만들어 요소를 지켰다”고 밝히기도 했다.
- 사건사고
- 경력/학력/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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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력
▲ 안철수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예비후보가 2018년 4월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일빌딩에서 열린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1989년 8월부터 단국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전임강사로 근무했으며 1990년 당시 최연소인 만 27세의 나이로 의과대학 학과장을 역임했다.
7년 동안 교수와 프로그래머의 이중생활을 했지만 매년 증가하는 컴퓨터 바이러스를 혼자 해결하기 어려워지자 교수에서 물러나 1995년 3월15일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했다.
2005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샌프란시스코 캠퍼스에서 EMBA 2년 과정을 밟은 후 귀국해 2008년 5월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부임했다. 2011년 6월부터 2012년 9월까지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대학원장을 맡았다.
2005년부터 포스코의 사외이사가 됐고 2010년 포스코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됐다. 2008년 9월부터 4년 동안 아름다운재단 이사를 맡았고 2011년부터 포항공과대학교의 이사를 겸임했다.
2011년 6월부터 9월까지 의사 박경철씨, 법륜 스님 등과 공동으로 ‘청춘콘서트’를 주최했다. 대학등록금과 KAIST 학생 자살을 계기로 청년들에게 비전과 희망을 제공하는 강연회였다. 전국 25개 도시에서 열렸으며 출연진은 재능기부형식으로 참여했다. 강연은 청중의 자발적 기부로 이뤄져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즉답을 피했다. 9월 5일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지지를 얻었으나 6일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출마를 양보하고 단일화를 발표했다.
2012년 9월 19일 제18대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여론조사에서 유력한 대선주자였으나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 과정에서 차질이 빚어졌고 2012년 11월 23일 후보 사퇴를 선언했다. 이후 문재인 후보를 도울 것이라고 선언한 뒤 독자적으로 선거운동을 지원했다.
2013년 4월 서울 노원병 재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60.5%의 득표율로 당선됐고 제19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배정됐다.
2014년 3월 제3지대 창당방식으로 민주당과 합당해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하고 김한길 대표와 함께 새정치민주연합 1기 공동대표를 맡았다.
2014년 7월 7.30 재보선 참패에 책임을 지고 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와 대표에서 동반사퇴했다. 안철수는 “선거결과는 대표들 책임”이라며 “평당원으로 돌아가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2015년 12월13일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탈당하고 2016년 1월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2월부터 천정배 의원과 국민의 당 공동대표를 맡았다.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노원구병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16년 6월29일 홍보비 리베이트 의혹으로 천정배 당시 국민의당 공동대표와 함께 국민의당 대표에서 물러났다.
2017년 국민의당 대표로 복귀했으나 2018년 2월13일 바른미래당 창당과 함께 자리에서 물러났다.
2018년 3월16일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에 임명됐다.
◆ 학력
부산동성초등학교, 부산중앙중학교, 부산고등학교를 거쳐 1980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의과대학 졸업 후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생리학 전공으로 석사와 박사를 마쳤다.
1997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대학원에서 공학석사를, 2007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스쿨에서 EMBA(경영학 석사)를 취득했다.
◆ 가족관계
조부인 안호인씨는 일제강점기에 부산상고를 나와 금융조합에서 근무했다.
부친 안응모씨는 부산 판자촌인 범천4동에서 범천의원을 개업한 의사로 안철수의 서울대 의대 선배다. 남동생 안상욱씨와 여동생 안선영씨가 있다.
1988년 서울대 의대 1년 후배인 김미경씨와 결혼했다. 김미경씨와 사이에 외동딸 설희씨가 있다. 김미경씨는 서울대 의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 상훈
1990년 한국컴퓨터기자클럽 올해의 인물상을 시작으로 1996년 청와대 자랑스런 신한국인상, 1998년 중소기업진흥공단 주관 제2회 벤처기업대상 국무총리 표창을 차례로 받았다.
2002년 국가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뚜렷한 자에게 수여하는 동탑산업훈장을 받았고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 ‘세종문화상’ 사회봉사부문 수상 등 여러 공공기관 상훈을 수여받았다.
민간에서도 1998년 한국경제신문사 주관 제 7회 다산기술상 대상, 2000년 한겨레신문사 제1회 우수정보통신기업 디지털대상 최우수기업상 및 동아일보사 제14회 인촌상을 받았다.
2002년 주간 이코노미스트 ‘한국 디지털 CEO 상’ 및 한겨레 제3회 정보통신기업 디지털 대상 SW 부문 정통부장관상을 받았다.
2003년 신산업경영원 제1회 한국윤리경영대상 투명경영부문 대상, 한국SW산업협회 및 매일경제신문사 주관 제2회 대한민국SW사업자대상 경영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2009년 포브스 코리아 제1회 블루리더십 어워즈, 2010년 세종문화상 사회봉사부문, 2011년 대전광역시 명예시민패를 받았다.
2013년부터 3년 연속으로 국내 언론사 정치부 기자들이 한해 동안 모범적 의정활동을 펼친 의원에게 주는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백봉신사상’을 받았다.
2015년 국회의원 연구단체인 ‘일치를 위한 정치포럼’에서 선정한 ‘제5회 국회를 빛낸 바른언어상 상임위 모범상’과 전국 청소년 선플 SNS자단이 선정한 ‘제3회 국회의원 아름다운 말 선플상’을 받기도 했다.
◆ 기타
‘바이러스 분석과 백신제작’,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 ‘안철수의 생각’ 등 컴퓨터, 경영, 정치분야에 지식과 생각을 담은 30여 권의 책을 썼다.
안초딩이라는 별명이 있다. 대선후보로 TV토론에 나와 “내가 MB 아바타입니까? 문 후보님 말씀 해보십시오”라고 물었던 발언이 화제가 되면서 생긴 별명이다.
-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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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연말연시를 맞아 전방부대 군 장병을 격려하기 위해 2017년 12월28일 오전 경기 파주 육군 1사단 GOP 도라전망대를 방문해 망원경으로 개성공단과 비무장지대 등 접경지대를 바라보고 있다. <뉴시스>
"자유한국당은 경쟁하고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이다." (2018/04/01,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치 발전을 위해 경쟁구도를 만들겠다.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여당일 때 아무나 출마해도 당선되니 지역발전에 무관심하고 야당은 포기해 대구와 경북이 버림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정치가 발전하고 지방정부가 바로 설 수 있도록 경쟁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지방선거 모든 지역구에 후보를 내고 당선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2018/3/29, 경북도청 브리핑실을 찾아)
"(서울시장 후보로)아직 출마를 결심한 것도 아니지만, 결심한다고 해도 무슨 양보를 받아서 뭘 해보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정치적인 공격으로서 다른 정치적인 상대들이 그렇게(지나치게 출마 타이밍을 따진다) 주장할 수도 있다. 저희는 계획대로 먼저 해야 하는 일부터 뚜벅뚜벅해나갈 것이다." (2018/03/20, MBC라디오 양지열의 시선집중에서)
"우리가 바라는 인재는 깨끗하고 유능한 인재로서 그게 바로 우리 당의 지방정부 구상에도 맞는 인재다. 우리는 거대 양당이 제대로 못 하는 민생 문제와 미래 대비에 중점을 둔 지방정부를 꿈꾸고 그에 맞는 인재를 널리 찾겠다." (2018/03/19, 각계 대표자와의 인재영입 간담회에서)
“복귀 요청을 받고 망설였지만 지금 당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과 꼭 필요한 일이 인재영입이라고 생각해 (인재영입위원장을) 맡게 됐다. 인재영입을 책임지고 하는 것이 우리 당을 이번 지방선거에서 제대로 자리 잡도록 만드는 일이라 판단했다. 인재를 영입하는 모습을 국민께 보여드리고 (지방선거에서) 결과로 보여드리겠다.” (2018/3/18,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으로 당직에 복귀하며 기자간담회에서)
"통합은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완성된다. 정당은 선거를 통해 완성되기 마련이다. 그런 일들과 진정한 화학적인 결합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들을 정말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가 있다." (2018/3/8, 수도권 원외 지역위원장 간담회에서)
"이제 깜깜한 터널이 끝나고 환한 불빛이 보인다. 많은 사람이 (양당 통합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지만 결국은 해냈고, 당원과 국민의 힘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2018/02/13, 수임기관 합동회의에서)
"같은 방향을 보고 만났지만 달리 살아온 사람들이기에 양보하고 이해하지 않으면 싸우기도 하고, 또 그러면서 단단해진다. 통합을 줄곧 결혼에 비유했는데 결혼식만으로는 행복한 생활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역사의 진전은 결국 변화를 추구하는 이들의 의지에 따라서 바뀌었다. 오늘 만난 우리가 강한 의지를 되새기고 함께하는 뜻을 지키고 키워나갈 때 변화가 만들어지고 역사가 진전할 것이다." (2018/02/12, 공식합당을 하루 앞둔 바른정당과의 연석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과 한국당의 무책임의 끝은 어디인가. 협치 리더십도, 진정성도 없는 여당과 기본적 역할도 방기하고 정쟁만 일삼는 제1야당이 대안 야당의 필요성을 증명하고 있다." (2018/02/09,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통합을 이루는 과정이 당 대표 혼자서 한 것이 아니라 전 당원의 뜻을 모은 것이기 때문에 착잡하다. 호남의 미래,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이 길(통합)이 옳은 것이고 대한민국의 정치에 큰 획을 그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 일을 추진해 왔다. 개인적, 정치적 이유로 호남이 고립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총선 때 정당을 보고 투표해 뽑힌 분들이기에 정치적 소신이 다르다면 탈당하시고 그 당에 가서 활동하는 것이 정치적 도의라고 생각한다." (2018/02/06, 기자간담회에서 민주평화당 공식 출범과 관련해)
"중재를 위해 애써주시는 분들이 (통합에) 함께 해준다면, 2월 13일에 통합신당 창당을 완결시키고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 통합의 올바른 길에 한 분이라도 동참할 수 있도록, 제 사퇴가 그분들의 결심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는 심정으로 말씀을 드린 것이다. (중재파가) 함께할 것이라 믿는다." (2018/01/31, 최고위원회의 이후 기자들을 만나)
"별도로 창당을 할 거라면 국민의당을 나가서 해야 할 일이다. 당 대표로서 원칙과 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해 당헌·당규에 정해진 바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음을 분명히 한다." (2018/01/22, 최고위원회의에서)
"좌고우면 하지 않고 통합의길로 전진하겠다." (2017/12/31, 른정당과의 통합에 70% 넘는 찬성표를 던진 전당원투표 결과와 관련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결연한 각오로 국민의당 당 대표 직위와 권한 모든 것을 걸고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대한 전당원의 의견을 묻고자 한다."(2017/12/20, 바른정당과의 통합 문제와 관련해 전당원투표를 전격 제안하며 긴급 기자회견에서)
“신고리 5·6호기의 공정률 29.5%, 1조6천억 원이 투입된 공사가 대통령 말 한 마디에 멈췄다가 공론화위원회를 거쳐 결국 공사 재개로 결론이 났다. 이 뻔한 상식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대한민국은 최고 1046억 원을 날려 보냈다. 공론화과정의 직접 비용만 계산해보면 건설 참여업체의 손실이 1천억 원이 넘고 공론조사에만 46억 원의 비용이 들었다. 대통령은 공론화 과정을 칭송하고 넘어가려고 하지만 상처가 너무 크다.” (2017/10/23, 최고위원회의에서)
“문재인 정부가 혁신성장의 중요성을 이제야 깨달은 것 같다. 안보정책도 나약한 유화의 길을 가다 뒤늦게 국민의당의 제안을 따라왔는데 경제정책도 국민의당이 제안한 혁신성장의 길을 따라오는 것 같다. 처음부터 옳은 길을 갔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나. 만시지탄(때늦은 한탄)이지만 다행이다.”(2017/9/27, 부산시의회에서 열린 부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군산조선소는 전북 제조업 매출의 4분의 1, 전북 수출의 10%를 차지한다. 군산조선소 폐쇄로 전북 경제가 흔들린다. 대선을 거치면서 전북도민들은 군산 조선소가 다시 가동되리라고 꿈꿨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만간 답이 있을 것이라며 기대하라고 했는데 결국 가동중단됐다. 얼마 전 러시아가 유조선 15척을 한국에서 건조하겠다고 밝혔는데 이 물량 중 일부만이라도 군산조선소에 배정하면 재가동 될 수 있다. 군산이 살고 전북이 사는 정부의 결단을 이끌어 낼 것이다.” (2017/9/13, 전북도청에서 열린 국민의당과 전북도 정책협의회에서)
“새만금은 지금부터라도 속도전에 나서야 한다. 우리가 새만금사업에서 머뭇거리는 동안 비슷한 시기에 개발을 시작한 중국 상해 푸동지구는 경제규모면에서 100배 성장을 이뤄냈다. 내년도 예산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만큼 새만금사업의 성공을 위해 철저한 준비와 고민이 필요한 때다.” (2017/09/11,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새만금사업 부진요인 점검과 촉진방안 정립을 위한 세미나’에 참석해)
“김상조, 3류 정치가 1류 기업을 깔보고 있다.” (2017/09/11, 국회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김상조 공정위원장이 이해진 전 네이버 이사회 의장에게 ‘미래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며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을 비판하며, 20년 전 ‘우리나라 기업은 이류, 행정은 삼류, 정치는 사류’라고 했다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말을 인용)
“기업가를 머슴으로 보는 문재인 정부의 오만함을 고쳐야 한다. 더 이상 정부가 기업을 앞에서 끌고 가는 시대가 아니다. 정부가 뒤에서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도록 밀어주고 불공정행위는 일벌백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2017/09/11, 국회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우리 앞에 어려운 도전이 놓여있다. 단호한 압박을 통해 한미동맹의 한국 주도권 강화, 방위비 분담금 가중 대책수립 및 실추된 외교주도권을 회복해야 한다.” (2017/09/11, 국회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지금은 북핵 위기상황인데 자유한국당은 국회를 거부하고 있고, 더불어민주당은 야당 탓만 하고 있다. 한심함을 넘어 참담함을 느낀다. 제발 정신 차려라” “이런 것들을 바로 잡으라고 국민들이 국민의당을 세워준 것이다. 이럴 때야말로 중도개혁정당인 국민의당이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2017/09/04, 국민의당 소속 수도권 광역기초의원들과의 간담회에서
“극중주의는 예전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IMF를 3년 만에 극복했을 때의 그 노선과 정확히 일치한다.” (2017/08/10, 광주MBC ‘시선집중 광주’와의 인터뷰에서 ‘극중주의’가 애매모호하다는 비판을 받는다는 질문에)
“내가 살려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당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당 자체가 사라질 것 같다는 위기감이 엄습하고 절망과 체념이 당을 휩싸고 있다.” ( 2017/08/07, 노원구에서 국민의당 기초의원, 당원과 오찬간담회 이후 기자들과 만나 당대표로 나선 이유를 놓고)
“작지만 강한 야당인 ‘강소야당’을 만드는 동시에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는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 4%, 5% 이하의 당 지지율은 사실 존재감의 거의 없다는 것과 같다. 이 상태가 연말정도까지 지속된다면 내년 지방선거는 정말 참담한 결과를 얻게 될 것이고 당은 소멸될 위기에 놓이게 될 수밖에 없다.” (2017/08/06, 국회에서 ‘혁신비전 간담회’를 열고 젊고 스마트한 정당’, ‘분권정당으로 변화’, ‘당원중심 정당’, ‘민생정당으로 도약’을 국민의당 4대 혁신방향으로 제시하며)
“‘선당후사(先黨後私, 당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을 앞세우지 않는다)’의 마음 하나로 출마의 깃발을 들었다. 다음 대선을 먼저 생각했다면 물러나 때를 기다리는 쪽이 현명한 선택이겠지만 내 미래보다 당의 생존이 더 중요하다” 서울 여의도 국민의당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당대표 출마를 선언하며)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 투표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꾼다. 부모님 댁에 많은 나팔꽃이 피고 있는데 나팔꽃은 좋은 소식이라는 꽃말이 있다.” (2017/05/09, 서울 노원구 아파트 경로당에서 19대 대선 투표를 마치고)
“민심의 바다가 여론조사를 뒤집을 것이다. 안철수를 찍으면 안철수가 이긴다. 국민이 이긴다.” (2017/05/08, 19대 대선을 하루 앞두고 서울 여의도 국민의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막판 표심잡기에 나서며)
“대통령이 되면 당장 5월10일부터 청와대 개혁에 착수하겠다. 청와대 비서실을 축소하고 내각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겠다.” (2017/04/28, 서울 여의도 국민의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과 청와대 권한을 축소하고 대통합 개혁공동정부를 세우겠다고 밝히며)
“저 안철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대통령 되겠습니다. 안철수의 시간이 왔습니다. 안철수의 시간이 오니 문재인의 시간이 가고 있습니다. 저 안철수, 2012년보다 백만 배, 천만 배 더 강해졌습니다.” (2017/04/04, 대전 중구 한밭체육관에서 국민의당 대선후보 수락 연설을 하며)
“무능력한 상속자가 국민의 삶을 결정하게 해서는 결코 안 된다. 스스로 노력해서 자수성가한 사람이 정치를 이끌고, 경제를 이끌고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 저 안철수, 도전한 일을 중도에 포기한 적이 없다. 경제에서도, 정치에서도 스스로의 힘으로 성과를 만들었다.” (2017/04/02,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완전국민경선 서울·인천 권역 합동 연설회에서)
“이제까지 국민의당 중심 정권교체를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우리 스스로를 믿어야 국민도 믿어준다. 오직 국민을 믿고 국민의당을 믿고 전진할 때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 국민에 의한 연대, 오직 그 길만이 진정한 승리의 길이다.” (2017/04/01, 경기 수원 종합운동장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국민의당 대선후보자 선출 5차 전국순회경선 정견발표에서 ‘자강론’을 강조하며)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았던 민심이 총선 열풍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변화와 개혁을 원하는 절절한 민심이다. 뿌리까지 썩은 나라를 제대로 바꾸라는 국민의 명령이다. 부패세력을 청산하고 대한민국을 바꾸라는 요구다. 대한민국이 큰 위기다. 안보, 경제, 외교 모두 위기”라며 “계파패권주의 세력에 또 나라를 맡겨선 안 된다.” (2017/03/30, 대구실내체육관에서 열린 국민의당 대선후보자 선출 4차 전국순회경선 합동연설에서)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들이 투표에 참여해 주셨다. 고향인 부산·울산·경남 시민들께서 뜨거운 지지를 보내주셨다. 호남에 이은 부산·울산·경남의 지지가 대선 승리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2017/03/28, 국민의당 부산·울산·경남권역 경선 현장 투표에서 압승을 거둔 뒤)
“정당은 비전을 밝히고 국민의 평가를 받아 선거를 치르는 것이다. 대통령 탄핵불복 세력에 면죄부를 주는 연대, 특정 정치인을 반대하기 위한 연대, 정치인만을 위한 무원칙 연대에 반대한다.” (2017/03/20, TV조선에서 열린 종편합동 토론회에서 대선 전 비문·비박 연대가 가능한지 묻는 질문에)
“절망의 시간이 희망의 시간으로 바뀌고 있다. 선거에 출마해 반드시 당선되겠다. 평화를 지키는 과정에서 안보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국방비를 늘려서라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자강안보를 실현해야 한다.” (2017/03/19, 서울 종로구 ‘마이크임팩트 스퀘어’에서 열린 출마 선언식에서)
“한진해운 파산은 재벌의 도덕적 해이와 정부의 무책이 빚어낸 대참사다. 경영에 문외한인 최은영 전 회장이 한진해운의 부실을 심화시켰고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을 놓쳐 오히려 부실을 키운 책임은 정부에 있다. 정부는 부실기업을 처리하기 위한 상시적인 시스템을 구축해 선제적인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 (2017/02/17, 한진해운 파산을 놓고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과 정부를 비판하며)
“공정거래위원회를 경제검찰 수준으로 만드는 것이 공약 1호다. 경제를 공정하게 바로잡는 게 공정거래위원회의 역할이고 그걸 개혁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2017/01/17, SBS 뉴스에 출연해 공정거래위원회의 권한 강화를 주장하며)
“대기업이 기획부터 투자·제작·배급·상영까지 모든 것을 다 하다 보니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중소제작사에서 만든 작품은 심야상영이나 새벽상영으로 밀려난다. 영화산업 발전을 위해 중소제작사가 좋은 영화를 만들면 대박을 만들고 큰 제작사로 성장해야 한다. 그래야 전체적으로 파이가 커지고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2016/12/19, 국회 의원회관에서 참여연대·한국영화제작가협회와 공동으로 한국영화산업 불공정 생태계 개선을 위한 공청회를 열고)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운명의 일주일이다. 9일 탄핵안 표결에 국회의원 300명 전원이 동참해야 한다. 압도적으로 가결하라는 게 국민의 명령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걱정하는 국민이 많다. 어떤 일을 저지르지 말고 그대로 계셔달라.” (2016/12/05, 국회 본관 앞에서 열린 박 대통령 탄핵 촉구 대회에서)
“탄핵안은 상정이 아니라 통과가 목표가 돼야 한다. 대통령의 사퇴선언이 분명하게 나오지 않는 한 탄핵은 국회의원에게 주어진 중대한 의무이자 국민의 명령이다. 내일 탄핵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 (2016/12/01, 서울 중구 무교동에서 진행된 ‘정권퇴진 서명운동’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는 탄핵을 모면하려는 시간 끌기에 불과하다. 국회에서 반드시 탄핵을 가결하라는 것이 국민의 뜻이며 늦어도 다음해 상반기까지는 새로운 리더십이 세워져야 한다.” (2016/12/01, 트위터에서 박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에 대해)
“국민 세금과 연금에 손을 대면 다시는 사회에 복귀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삼성의 손을 들어주면서 5천억 원의 손실을 봤다. 전 국민이 아르바이트해가면서 400조 원을 만들었는데 한 방에 그 많은 돈을 날렸다.” (2016/11/30, 부산 동아대 특강에서 국민연금공단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개입 의혹을 거론하며)
“박근혜 대통령은 온국민이 다 알고 검찰 공소장에도 적시된 스스로의 죄를 혼자 부정하고 있다. 민심을 외면한 수사 회피용이자 탄핵 물타기용 담화다. 어떤 시민은 이번 담화를 대국민 광화문 초대장이라고 했다. 국민들을 언제까지 차가운 길거리에 나오게 할것인가?” (2016/11/29, SNS에서 박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에 대해)
“현 경제부총리와 차기 경제부총리 내정자가 공존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한 달째 이어지고 있다. 경제 컨트롤타워가 비어 있어도 경제는 돌아갈 거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전대미문의 국난 속에서도 국민들의 삶과 경제가 흔들리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2016/11/28, 페이스북에서 국정공백 극복을 위해 경제부총리 임명 문제라도 해결하자고 제안하며)
“100만, 200만 명 모인 민심이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다. 이렇게 모인 마음은 대통령을 바꾸라는 것을 넘어서 국가를 바꾸라는 요청이다. 지금이 기득권 세력을 몰아낼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번 기회에 부패 기득권을 척결하고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 (2016/11/27, 광주 조선대에서 열린 비상시국강연회에서 촛불집회를 11·12 시민혁명으로 규정하며)
“이번 사태로 대한민국의 민낯이 드러났다. 공공기관 뿐 아니라 학교, 사법체계, 회사에 이르기까지 뿌리부터 썩었다. 1970년대 정경유착이 지금 21세기 대한민국에 그대로 살아있다. 세상이 바뀌는 것을 막고 개인 욕심을 취하는 기득권 정치를 깨부술 때가 바로 지금이다.” (2016/11/26, 서울 종로에서 열린 국민의당 ‘박근혜 대통령 퇴진 당원보고대회’에 참석해)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18세가 투표하지 못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더 나아가 17세 투표권까지도 검토해봐야 한다.” (2016/11/17, 국회 의원회관 자신의 사무실에서 ‘18세 선거연령 인하’ 현판식 진행 뒤)
“국민의당을 중심으로 반드시 정권교체하라는 (국민의) 명령을 가슴 깊이 새기고 모든 것을 바치겠다.” (2016/08/28, 광주 무등산을 등반한 뒤 사실상 대권 출마를 선언하며)
“내년 대선은 예전의 양극단 간의 대결구도에서 벗어나 양극단 대 합리적 개혁세력 간 대결이 될 것이다.” (2016/08/27, 전남 광양 강연회에서 친박계와 친문계 사이에서 제3의 세력을 만들어 대선을 치르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며)
“남은 임기 동안 대한민국 국민들과 세계인들에게 좋은 업적을 남기실 수 있도록 노력해주길 바란다.” (2016/05/29, 대선 출마를 시사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서울 합정동 한 까페에서)
“더불어민주당은 김종인 대표의 무한권력 앞에 이해할 수 없는 형태로 변질됐지만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총선이 끝나면 패권정당으로 돌아가서 정권교체의 능력을 잃을것이지만 국민의당은 전국을 기반으로 교섭단체를 만들어 국회문화를 바꾸고 정권교체도 이루겠다.” (2016/03/12, 전주 한옥마을 동학혁명 백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전북지역 예비후보들과 간담회에서)
“국민의당은 지금 힘들고 두려운 광야에 있고 사방에 적뿐이다. 그래도 돌아갈 수 없다. 전진해야 한다. 야권통합을 위해 세 번 결단하고 국민 앞에 연대보증을 섰지만 정권교체에 실패했다. 그동안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새누리당의 세 확산을 위해 헌신했다. 누가 통합을 말할 수 있느냐. 나를 포함해 모두 이 광야에서 죽을 수도 있다. 그래도 좋다.” (2016/03/06, 기자회견을 열어 김종인 당시 민주당 대표의 야권통합 제안을 거부한다는 뜻을 재학인하며)
“(샌더스 후보와 내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샌더스 후보의 ‘분노의 주먹’ 사진을 보면서 ‘참 우연이다’ 싶었다. 나도 당대표 수락 연설 때 싸우겠다고 외치면서 주먹을 쥐고 여러번 강조했던 기억이 있다.” (2016/02/04, ‘대한민국, 공정성장으로 길을 찾다’ 토크콘서트에서)
“정치권에 들어오기 전 의사로, 프로그래머로, 경영자로, 교수로, 분절된 삶을 살았으나 지금은 내 인생이 하나가 됐다고 느낀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각 분야에서 따로따로 일했던 지식과 경험을 모두를 위해 쓰겠다.” (2015/12/29, 서울 여의도에서 출입기자들을 만나)
“새누리와 더불어민주당이 2~3등에서 엎치락뒤치락하게 만들 것이다. 콘크리트 같던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최근 여론조사에서 30%대로 내려앉았고 무당층의 정치참여가 늘고 있는데 매우 바람직하다.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정치권도 국민을 위해 일하지 않겠느냐. 어찌보면 그들의 비율이 특정한 한 정당의 지지율보다 더 높을 수 있다.“ (2015/12/29, 서울 여의도에서 출입기자들을 만나)
“전국정당이 목표입니다. 신당을 만드는 입장에서 더 외연을 넓혀서 그동안 (정치에) 기대를 접으셨던 분들 다시 설득하고 그 분들 영입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15/12/28)
“저나 신당에게 주어진 최우선적인 과제는 새로운 시대 요구와 새정치의 비전과 목표를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협력 문제는 이런 문제들이 어느 정도 해결이 된 후에야 가능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2015/12/21)
“제가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에 느낀 것은 이기는 공천은 없다는 것이다. 여론조사나 자료를 토대로 선거공학적으로 후보를 선출할 때 반드시 이기는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2015/12/29, 내년 총선이 ‘일여(一與)대 다야(多野)’ 구도로 치러지더라도 야권 통합과 연대를 고려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답변하며)
“국민 통합을 위해서, 세월호 참사로 상처받은 국민 마음을 치유할 인재를 찾기 위해서 박 대통령은 자신만의 인사 수첩을 폐기해야 한다. 그래야만 대한민국 시스템을 바꿀 진정한 탕평인사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훌륭한 재능을 가진 인재가 많다. 내 진영 사람 중에서,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서, 내 맘에 드는 사람만 기용하면 쓸 수 있는 인재풀이 줄어든다.” (2014/05/30,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주재 ‘국민 안심 선대위’ 본부장단 회의에서)
“정치경험 대신 국민들께 들은 이야기를 소중하게 가지고 가겠습니다. 여러분이 제 스승입니다.” (2012/09/19,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면서)
“상식과 비상식의 기준으로 말하고 싶다. 굳이 말하자면 난 상식파다.” (2012/07/23,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서 ‘안철수는 보수인가 진보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며)
“저에게 보여주신 기대 역시 온전히 저를 향한 것이 아니라 변화에 대한 열망이 저를 통해 표현된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2011/09/06,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불출마 선언 기자회견에서)
“사람들한테 대접받으면서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나는 자기 발전도 중요한 사람이고 끊임없이 학습하고 도와주며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이렇게 정치로 들어서면 자기 발전의 기회보다는 내가 가진 걸 소모하면서 도와줘야 한다. 지금껏 해왔던 것과 전혀 다르다. 10년 간 그런 삶을 견딜 수 있을까, 거기에 대한 고민이다. 나는 수평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정부 조직은 내가 아무리 수평적 리더십을 갖고 있어도 조직이 수평이 되면 곤란하다. 그런데 이런 관계를 10년 이상 그게 유지하는게 가능할까.” (2011/09/04, 서울시장 출마설에 대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대북문제에 대해서 보수적 입장을 갖고 교육문제에 대해서 진보적 시각을 갖고 있으면 진보인가 보수인가? 그것은 나눌 수가 없다. 그것을 나누고 분열함으로써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이런 짓을 한다.” (2011/09/04, 서울시장 출마설에 대한 MBC 시사매거진 2580과 인터뷰에서)
“참여정부 시절 정보통신부 장관 제의를 받았고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으로부터 서울시장 후보 제안을 받았지만 (정치를) 잘 할 자신이 없고 힘(권력)을 즐기지 못하기에 거절했다. 실무적 방법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 앞으로 정치를 할 가능성은 낮다.” (2009/12/18, 한 매체가 주관하는10만인클럽 특강에서)
“‘기업가 정신’을 이야기할 때 흔히 미국 실리콘 밸리를 예로 든다. 그런데 한국에서 실리콘 밸리의 성공사례에만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실리콘 밸리는 ‘성공의 요람’이 아니라 ‘실패의 요람’이다. 이 점을 외면하면, 우리는 실리콘 밸리에서 배울 수 없다.” (2009/03/20, 서울 수송동 희망제작소 세미나실 희망모울에서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에 대해 강연하며)
“V3를 외국에 넘겨버리면 (국내) 사용자들이 불편하잖아요, 세계 제일의 소프트웨어로 만들겠습니다.” (1998/06/22, 동아일보에서 ‘맥아피’로부터 들어온 ‘안철수연구소 100만 달러 인수 제의’ 거절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