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Who Is ?] 황창규 KT 회장

황창규 KT 회장.




황창규는 1953년 1월 23일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고와 서울대를 거쳐 미국 메사추세츠 대학교 에머스트 대학원에서 유학하였다. 이후 1989년 삼성전자에 입사했고, 2008년부터는 삼성전자에서 기술총괄 사장을 역임했다. 2010년부터는 이명박정권에서 지식경제 R&D 전략기획단 단장을 맡았다.

2014년부터 KT의 대표이사 회장으로 재직하고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삼성 반도체신화의 산 증인으로 반도체분야의 1인자라는 것에 이견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반도체와 관계없는 통신분야 CEO로 취임한 것에 대해서 의문이 제기됐다. 또한 황창규의 KT 취임과 관련해 현 정권과 관계도 주목받고 있다.

황창규는 취임 직후 인력 구조조정을 통해 KT를 재편해나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고, 이를 바로 시행에 옮기고 있다. 조직슬림화와 현장경영 강화가 중심이 된 조직개편은 기존 22개에 달하던 부문·본부 등을 9개 부문으로 통폐합했다. 임원을 30%가량을 감축하고 사내 지원조직의 임원급 직책 규모도 절반 수준으로 축소하는 대신 현장중심의 인사를 단행했다.

또한 비 영업부서에서 인원을 줄이고 이들을 현장에 재배치해 영업력 강화에 주력했다. 조직 전반을 심플하고 수평적인 구조로 조정해 통신사업 경쟁력 강화는 물론 현장-지원부서, 임원-직원간 소통 활성화를 강화하는 등 실용적인 경영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85년부터 미국 스탠퍼드대 전기공학과 책임연구원으로 일하며 능력을 인정받아 이례적으로 1987년부터 미국 Intel사에서도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스탠퍼드대 전기공학과와 Intel에서 일하던 도중 1989년 삼성전자에 영입돼 16MID 소자 개발팀장을 맡았고, 1992년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이사를 역임하였다.

이후 1994년 세계 최초로 256MID를 개발하는데 성공하였으며 2004년부터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겸 메모리사업부 사장을 역임하였다. 2008년부터는 삼성전자 기술총괄 사장을 맡았으며 2010년부터는 이명박정권에서 지식경제 R&D 전략기획단 단장으로 활동했다. 현재 KT 회장으로 재직하고있다.

◆ 학력

1972년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전기공학과에서 1976년 학사를 마쳤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전기공학 석사과정을 끝낸 뒤 1985년 미국 메사추세츠 대학교 에머스트 대학원에서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1985년부터 미국 스탠퍼드대 전기공학과 책임연구원으로 일했다. 유력한 대선후보 중 하나인 국회의원 안철수와 부산고, 서울대학교 동문이다.

◆ 가족관계

구한말 사군자(四君子) 중 매화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고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고종 곁을 지켜서 더욱 유명했던 화원화가 황매산 선생이 황창규의 조부이다. 연세대 음대를 졸업한 부인 정혜욱과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황창규의 장인은 케이씨피드(구 경북축산)의 창업주다.

◆ 상훈

1994년 ‘삼성그룹 기술대상’을 수상했고, 2004년 제39회 발명의 날 ‘금탑산업훈장’을 수여받았다.
2005년 외국인 최초로 IT 업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미국 ‘EIA 기술혁신 리더상’을 수상하였다.
2006년 제4회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수상하였다.
2006년 반도체 산업의 환경안전(EHS) 분야 최고 상인 ‘이노우에 아키라 상’과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술 명인(名人)에게 주어지는’IEEE 앤디 그로브상’을 수상하였다.
2009년 ‘서울대학교 공대 발전공로상’을 수상하였으며, 2012년 제22회 ‘자랑스러운 서울대인’ 상을 수상하였다.

◆ 상훈

1994년 ‘삼성그룹 기술대상’을 수상했고, 2004년 제39회 발명의 날 ‘금탑산업훈장’을 수여받았다.
2005년 외국인 최초로 IT 업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미국 ‘EIA 기술혁신 리더상’을 수상하였다.
2006년 제4회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수상하였다.
2006년 반도체 산업의 환경안전(EHS) 분야 최고 상인 ‘이노우에 아키라 상’과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술 명인(名人)에게 주어지는’IEEE 앤디 그로브상’을 수상하였다.
2009년 ‘서울대학교 공대 발전공로상’을 수상하였으며, 2012년 제22회 ‘자랑스러운 서울대인’ 상을 수상하였다.

어록


“메모리반도체의 집적도가 1년에 두 배씩 늘어난다” (2002/02 미국 샌프란시스코 국제반도체회로 학술회의 ISSCC에서 ‘황의 법칙’을 발표하며)

“잠들어 있는 ‘1등 DNA’를 되살려 KT인의 자긍심과 명예를 되찾자.”

"KT 임직원들의 자부심과 열정이 다시 끓어오를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바치겠다"

"주력인 통신사업을 다시 일으켜 융합의 영역으로 발전시켜 '1등 KT'를 만들어 나가자" (2014/01/27, 취임사 중)

◆ 평가

삼성 반도체신화의 산 증인으로 반도체분야의 1인자라는 것에 이견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반도체와 관계없는 통신분야 CEO로 취임한 것에 대해서 의문이 제기됐다. 또한 황창규의 KT 취임과 관련해 현 정권과 관계도 주목받고 있다.

황창규는 취임 직후 인력 구조조정을 통해 KT를 재편해나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고, 이를 바로 시행에 옮기고 있다. 조직슬림화와 현장경영 강화가 중심이 된 조직개편은 기존 22개에 달하던 부문·본부 등을 9개 부문으로 통폐합했다. 임원을 30%가량을 감축하고 사내 지원조직의 임원급 직책 규모도 절반 수준으로 축소하는 대신 현장중심의 인사를 단행했다.

또한 비 영업부서에서 인원을 줄이고 이들을 현장에 재배치해 영업력 강화에 주력했다. 조직 전반을 심플하고 수평적인 구조로 조정해 통신사업 경쟁력 강화는 물론 현장-지원부서, 임원-직원간 소통 활성화를 강화하는 등 실용적인 경영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 기타

해군 장교 출신이지만 음악이나 미술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어 지식이 상당하다. 연세대 음대를 졸업한 부인보다 더 음악에 박식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다. 부산고 시절 합창반 활동을 했던 황창규는 노래실력도 좋아 박인수의 ‘향수’나 김종환의 ‘사랑하는 이에게’를 즐겨 부른다. 운동신경도 뛰어나 서울대 공대의 테니스 대표선수로 활동했고, 골프 역시 싱글로 수준급이다.

바이올린리스트 장영주의 팬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