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한국거래소가 저 주가순자산비율(PBR) 기업 명단을 처음 공개하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과 금융당국이 국내 상장기업의 주가 저평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기업가치 제고 정책의 고삐를 죄고 있다.

이와 관련 여당은 기업가치 제고계획 공시 의무화와 상속·증여세제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당국도 기관투자자의 주주권 행사 활성화와 상장폐지 실질심사 평가기준 개선 등을 통해 기업가치 제고를 유도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 더불어민주당 '코리아 프리미엄 K자본시장 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오기형 의원(왼쪽)이 3월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특위 업무보고에 참석해 특위 위원인 김남근 의원과 대화하고 있다. 이날 업무보고에는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보건복지부, 국민연금공단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1일 여당과 금융당국 움직임을 종합하면 정부·여당은 저PBR 기업 명단 공개를 시작으로 공시제도와 세제, 시장규율 개선 등 후속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개별 정책의 적용 대상과 추진 단계는 다르지만 기업의 자발적인 가치 개선을 유도하면서 주주가치 보호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한국거래소는 오는 2일 저PBR 기업 명단을 처음으로 공표한다.

저PBR 기업 공표제도는 장기간 주가가 저평가된 상장기업에 대한 투자자의 정보 접근성을 높이고 기업 스스로 수익성 개선과 주주환원 확대에 나서도록 유도하기 위해 마련됐다. 공표 대상은 원칙적으로 최근 6개 반기 연속 동일 업종 내 PBR이 유가증권시장 하위 25% 또는 코스닥시장 하위 10%에 해당하는 기업이다.

다만 6개 반기 가운데 한 차례만 기준을 웃돈 기업은 과거 7번째 반기까지 확인하며 이번 첫 공표에서는 예외적으로 10월22일 기준 PBR이 선정 기준을 웃돌면 공표 대상에서 제외한다.

기업이 PBR 개선계획을 포함한 기업가치 제고계획을 공시하면 1년 동안 공표를 면제받을 수 있지만 누적 6년 동안 저PBR 상태가 지속된 기업은 면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7월 발표한 한국거래소의 5월 기준 간이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면, 최초 공표 대상 기업은 최소 120곳에서 최대 220곳으로 추산됐다. 이는 코스피와 코스닥 전체 상장기업의 약 5~10%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실제로 한국거래소가 10월23일 집계한 결과 공시 마감일인 22일까지 코스피 34곳과 코스닥 28곳 등 모두 62개 상장사가 PBR 개선계획을 제출했다.

여당에서는 기업가치 제고계획 공시를 법적 의무로 전환하려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김현정 민주당 의원은 지난 3월 PBR이 2개 사업연도 연속 1배 미만인 상장기업에 기업가치 제고계획 공시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해당 기업이 배당가능이익 처분과 자기주식 취득·소각 및 사업구조 개선 등에 관한 계획을 시장에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안도걸·이훈기 민주당 의원도 비슷한 취지의 법안을 발의했으며 안 의원안은 2개 사업연도 연속 PBR 1배 미만이라는 요건에 최근 3개 사업연도 평균 자기자본이익률(ROE) 8% 미만이라는 조건을 추가했다. 세 법안 모두 기업가치 제고계획을 제출하지 않은 기업에 1억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규정을 담고 있다.

정부·여당은 세제개편을 통해 최대주주가 상속·증여세 부담을 줄이려고 주가를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하는 이른바 '주가 누르기'를 방지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8월3일 발표한 세제개편안에는 장기 저PBR 기업 등을 주가 누르기 추정 대상으로 정하고 상속·증여세 과세를 위한 주식 평가액을 높이는 방안이 담겼다. 구체적으로 최근 13개 반기 가운데 12개 반기 동안 업종별 PBR 하위 25%(코스피) 또는 10%(코스닥)에 해당하는 기업 등을 대상으로 국세청 평가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현행 평가액의 130%와 과거 주가를 반영한 평가액 가운데 높은 금액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적용 요건이 지나치게 엄격해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정부는 9월1일 최종 세제개편안 확정 당시 당정 간 의견 수렴을 거쳐 정기국회 심사 과정에서 합리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부안과 달리 별도의 평가 하한을 설정하는 방식의 법안도 제시됐다.

현재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맡고 있는 이소영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5월 발의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은 최대주주 등이 보유한 상장주식의 시가가 세법상 순자산가치의 80%보다 낮으면 비상장주식 평가방식을 적용하고 평가액의 하한을 순자산가치의 80%로 설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장기간 저평가된 기업을 선별해 평가액을 재산정하는 정부의 당초 방안과 달리 주식 평가에 적용할 최저 기준을 설정하는 방식이다.

민주당 K-자본시장특별위원회는 9월29일 당정협의에서 정부안과 의원안을 함께 검토해 11월 중 세법 개정 방향을 정리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27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제11회 금융의날 기념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융당국은 상장폐지 실질심사 과정에 주주가치 관련 재무지표를 반영하는 제도 개선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7월28일 발표한 저PBR 기업 공표제도 세부기준안에 따르면 기존 상장폐지 실질심사에서 고려하는 기업 계속성과 경영 투명성, 투자자 보호 관련 평가항목에 PBR 등 주주가치와 연관된 주요 재무지표를 추가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다만 저PBR 자체가 새로운 상장폐지 심사 개시 사유가 되는 것은 아니며 기존 사유로 실질심사를 받는 기업에 한해 평가요소 중 하나로 고려하도록 하는 구상이다.

기관투자자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유도하기 위한 제도 개선도 추진된다.

금융위원회는 기관투자자가 PBR이 낮은 기업에 투자할 때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관여 활동을 강화하도록 스튜어드십 코드 가이드라인에 관련 내용을 반영하고 이행점검을 통해 모범사례를 발굴·확산하겠다는 방침을 제시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국민연금과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가 고객과 수익자의 이익을 위해 투자 대상 기업의 경영활동을 점검하고 필요할 경우 의결권 행사 등에 나서도록 하는 수탁자책임 원칙이다.

민주당 K자본시장특위도 9월29일 국회에서 열린 실무 당정협의에서 기관투자자의 스튜어드십 활동을 평가하고 그 결과를 국민연금의 위탁운용사 자금 배정에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당시 특위는 올해 말 연기금과 자산운용사의 수탁자책임 활동을 평가한 뒤 2027년 국민연금의 위탁운용사 선정과 자금 배정에 평가 결과를 반영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다만 해당 제도는 기관투자자의 수탁자책임 활동 전반을 평가하는 별도의 정책으로 저PBR 공표 명단에 포함된 기업에 대한 투자 여부만을 기준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정부·여당의 기업가치 제고 정책은 11월부터 연말까지 잇따라 구체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권석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