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중동 지역의 군사 충돌이 확대되고 있다. 이란이 주변 국가를 상대로 군사 대응을 확대하고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해 국제유가가 치솟고, 글로벌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번 전쟁이 단기간에 끝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에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장기화될 태세다.

최근 중동이 대규모 인프라와 산업 투자에 ‘기회의 땅’으로 부상하면서 한국 기업들도 현지 사업 확대에 속도를 내왔다. 그러나 전쟁 리스크가 현실화되며 이러한 전략에도 변수가 떠올랐다. 비즈니스포스트는 중동 지역에서 사업 확장에 나섰던 주요 기업들의 현안을 점검하고, 이번 사태가 기업들의 중장기 전략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살펴본다.

-글 싣는 순서
① '법인 최다' 삼성그룹 주말 긴급회의, 이재용 AI·스마트시티 프로젝트 변수에 초긴장
② 중동 확전 조짐에 삼성물산·현대건설 조마조마, '고진감래' 기대감도
③ 이란 전쟁에 미국 빅테크 데이터센터 구상도 흔들, 한국 반도체에 불안 가중
④ 현대차그룹 첫 중동 생산거점 빨간불, 정의선 급성장 중동 시장 공략 차질 빚나
⑤ LG전자 이란 전쟁에 '글로벌 사우스' 공략 차질빚나, 류재철 해외경영 위기관리 시험대
⑥ 출렁이는 환율·유가 파장 최소화 특명, 수출입은행 황기연 정책금융 역할 무겁다
⑦ CJ 이재현 '신영토 확장' 급브레이크, 중동 총성에 CJ제일제당·CJENM·CJ대한통운 '진땀'
⑧ HD현대 중동 확전에 사우디 거점 타격받나, 조선·전력기기 사업 차질 촉각
⑨ 네옴시티 드림' 꿈꾸던 네이버, 이해진 중동 사태에 사우디 사업 '암초' 
⑩ 중동 전쟁에 글로벌 에너지 위기 재점화, 재생에너지 전환에 차질 불가피  

[비즈니스포스트]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과 이에 대응한 이란의 무차별 주변국 보복공격이 이뤄지면서 정기선 HD현대그룹 회장이 추진하고 있는 중동 조선소·엔진공장 건설에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중동 현지 기업들과 손잡고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지역에 합작 조선소, 엔진공장을 건립하고 각각 2026년과 2027년 가동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조선소와 공장 건설과 가동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중동 영토확장 비상⑧] HD현대 중동 확전에 사우디 거점 타격받나, 조선·전력기기 사업 차질 촉각

▲ 지난 2023년 사우디 라스 알 헤어(Ras Al-Khair)의 킹살만 조선산업단지에서 열린 마킨 선박엔진 공장 착공식에서
한영석 HD현대중공업 부회장(왼쪽 두번째) 등 참석자들이 시삽하고 있다. < HD현대 >


정 회장은 지난해 HD현대그룹의 조선 부문 사업 재편을 통해 베트남, 필리핀,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모로코 등 국가에 현지 조선소 야드 개발에 박차를 가해왔으나, 이번 중동 사태로 해외 조선소 거점 확대에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12일 HD현대그룹에 따르면 HD한국조선해양이 현지 기업들과 합작해 건립하고 있는 사우디 내 조선소와 엔진공장이 이란의 미사일·드론 공격에 따른 피해는 없으나 현지 직원 철수, 물류 혼란 등으로 건설 작업이 지연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HD한국조선해양은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주바일 인근 킹살만 조선단지에서 현지 에너지 기업 아람코, 해운선사 바흐리, 아랍에미리트(UAE)의 에너지 기업 램프렐과 합작해 ‘IMI조선소’를 2026년 내 가동하는 것을 목표로 건설해왔다. 

IMI조선소는 대형 도크 3개, 골리앗 크레인 4기, 안벽 7개 등의 설비를 갖출 예정으로, 연간 선박생산 능력은 40척이다.

또 HD한국조선해양은 사우디아람코개발회사(SADCO), 사우디 산업투자공사 ‘두스루’와 합작사 ‘마킨’을 설립하고, 마찬가지로 킹살만 조선산업단지에서 2027년 가동을 목표로 선박엔진 공장을 건설 중이다. 

마킨 공장은 HD현대중공업이 독자 개발한 중형 선박엔진 ‘힘센(HIMSEN)’을 생산하는 최초의 해외공장이 될 예정으로, 연간 생산능력은 △선박용 대형엔진 30대 △중형엔진 235대 △선박용 펌프 160대이다. 추후 이중연료(DF) 추진엔진 생산 여부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합작 투자 사업은 중동 사태로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유광호 대외정책연구원 연구원은 "(중동 국가들의) 에너지 수출 감소에 따른 재정 압박과 외국인 투자 유입 위축, 건설 자재와 노동력 수급 차질 등의 요인이 맞물려 중동 각국이 추진 중인 중장기 개발계획의 동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중동 영토확장 비상⑧] HD현대 중동 확전에 사우디 거점 타격받나, 조선·전력기기 사업 차질 촉각

▲ 정기선 HD현대 회장은 2015년부터 사우디아라비아 현지 조선소와 선박엔진 합작 공장 건설 사업을 직접 챙겨왔다. 사진은 지난 2025년 9월25일 정 회장(오른쪽)과 칼리드 알팔리 사우디아라비아 투자부 장관이 서울 중구 반얀트리호텔에서 사업 협의를 마친 뒤 기념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 HD현대 >

사우디 조선소와 선박엔진 공장 건설 사업은 정기선 HD현대그룹 회장이 임원을 단 이듬해인 2015년 3월부터 직접 챙겨 온 사안으로, 그는 지난해 9월에도 방한한 칼리드 알팔리 사우디 투자부 장관을 만나 공장의 성공적 가동과 안정적 기자재 공급망 구축을 논의하는 등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왔다.

사우디 조선소·엔진공장 건립은 HD현대그룹 조선 부문 최초의 기술수출 사례가 된다는 점에서 정기선 회장의 해외사업 전략을 상징하는 사업이기도 하다. 

기존 HD현대그룹의 해외 사업장은 HD현대베트남조선, HD현대중공업필리핀, HD현대비나 등 회사가 지분 과반을 쥐고 직접 운영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하지만 사우디에서는 직접 운영 대신 조선소 건립·설계 지원·기자재 공급 등을 통한 수익과 향후 선박 건조 시 로열티 수익을 얻는 방식을 처음 적용했다. 

HD현대그룹은 우선 안전을 위해 사우디 현지 주재원 가족은 전원 철수시키고, 필수 인력을 제외한 직원들도 모두 한국으로 복귀시켰다.

중동 국가들을 주요 공급처로 두고 있는 그룹의 전력기기 계열사 HD현대일렉트릭 역시 군사적 긴장감 상승에 따른 수주·납품 차질 우려가 나온다.

HD현대일렉트릭은 2025년 중동에서 매출 8540억 원을 올렸고, 수주액은 4억6500억 달러에 달했다. 이는 전사 매출의 20.9%, 연간 수주실적의 10.9%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회사는 향후 사우디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 ‘NREP’와 에너지 전환 정책 ‘사우디 그린 이니셔티브’에 따른 송·변전기기 대규모 발주, 걸프협력회의가 발표한 35억 달러 규모의 중동 국가 간 전력망 연계 계획 등을 향후 중동 사업 기회 요인으로 꼽았지만, 중동 전쟁 사태로 사업 지연을 우려하고 있다. 

앞서 HD현대일렉트릭은 사우디 전력 설비 수요 확대에 대응해 2025년 8월 현지 유통사 ‘대쉬컨트롤시스템즈’와 중저압 차단기 사업 협력을 논의하고, 같은 해 9월에는 현지 산업용장비 기업 ‘디젤이큅먼트’가 첨단 개폐장치 생산공장을 건립하는 데 기술을 제공하는 계약을 체결키도 했다. 

HD현대일렉트릭 관계자는 “중동 현지 법인 직원들의 안전을 위해 대부분 재택근무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신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