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남양유업이 경영 정상화를 향해 한 발짝 나아가게 됐다. 

남양유업의 경영권을 두고 벌인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과 사모펀드(PEF) 운용사 한앤컴퍼니의 법적 분쟁에서 1심 재판부가 1년여 만에 한앤컴퍼니의 손을 들어 주면서 남양유업을 억누르고 있던 ‘오너 리스크’가 해소될 가능성이 커졌다. 
 

22일 남양유업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홍 회장 측이 앞서 3차례의 가처분 소송과 이번 본안 소송 1심에서 모두 패배한 만큼 향후 진행될 항소심에서도 한앤컴퍼니가 승소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날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30부(정찬우 부장판사)는 한앤컴퍼니가 홍 회장 등 남양유업 오너일가를 상대로 낸 주식 양도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홍 회장과 그의 가족이 한앤컴퍼니와 맺었던 계약대로 돈을 받고 남양유업 주식을 넘겨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번 재판의 결과는 예견됐던 일이다. 

법원은 이번 본안 소송 1심에 앞서 한앤컴퍼니가 제기했던 3차례의 가처분 소송에서 모두 한앤컴퍼니의 손을 들어줬다. 

가처분 소송은 2021년 8월 한앤컴퍼니가 홍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주식처분금지 가처분 신청과 같은해 10월 홍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의결권행사금지 가처분 신청, 올해 1월 홍 회장이 대유홀딩스와 맺은 ‘상호협력 이행협약’ 이행금지 가처분 신청 등이다. 

남양유업과 한앤컴퍼니의 악연은 지난해 5월부터 시작됐다. 

홍 회장은 지난해 5월 발효유 '불가리스'가 코로나19 억제효과가 있다는 발표를 한 이른바 ‘불가리스 사태’에 책임을 지겠다며 대국민사과를 하고 회장직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동시에 그는 자식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도 밝혔다. 

이후 홍 회장 일가는 들고 있는 남양유업 지분을 한앤캠퍼니에 3107억 원을 받고 매각하는 주식 양수도계약(SPA)를 2021년 5월27일 체결했다. 

남양유업은 홍 회장 일가가 지분 53.08%를, 나머지 지분은 소액주주들이 들고 있다. 

하지만 홍 회장은 경영권 이전을 위해 그해 7월30일 열릴 예정인 임시 주주총회를 돌연 연기했다. 두 달 뒤인 그 해 9월1일에는 지분매각을 위한 오너일가 예우, 백미당 분사 등 ‘선행조건’이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앤컴퍼니와 계약이 무효라고 주장하며 경영에 복귀하고 한앤컴퍼니에 주식매매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이후 홍 회장은 2021년 11월 들고 있는 남양유업 지분을 대유홀딩스에 매각한다는 상호협력 이행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앤컴퍼니가 홍 회장 등을 상대로 낸 주식처분금지·의결권행사금지·계약이행금지 가처분 신청이 모두 받아들여지면서 올해 3월 대유홀딩스는 홍 회장과 결별을 선언했다. 

다만 홍 회장 측이 1심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 법정 공방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홍 회장의 법률대리인 LKB앤파트너스는 “피고는 가업으로 물려받은 회사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쌍방대리 행위 등으로 매도인 권리를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LKB앤파트너스는 “원고(한앤컴퍼니) 측은 쌍방대리를 사전에 동의받았다고 주장했으나 이에 관련한 어떠한 증거도 내놓지 못했고 명백한 법률행위를 자문행위라 억지 주장을 펼쳤으며 상호 사전 합의한 내용을 이행하지도 않았다”며 “이러한 내용을 재판부가 충분히 받아들이지 않은 것 같아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가운데 피고의 권리 보장을 위해 즉시 항소할 것이다”고 밝혔다. 

한앤컴퍼니 측은 홍 회장이 항소심을 제기해도 이길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반박했다. 

한앤컴퍼니 측 법률대리인인 김유범 화우 변호사는 재판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만약 피고(홍 회장)가 항소를 하더라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1심에서 피고의 증거 신청을 단 한 건도 거부하거나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주장을 소명할 기회를 충분히 줬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2심에서 1심 판결을 뒤집을 만한 추가 증거가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한앤컴퍼니도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남양유업의 임직원, 소액주주, 대리점, 낙농가 등이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다”며 “(홍 회장은)경영 정상화가 조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법원 판결을 수용하고 국민들 앞에서 스스로 약속했던 경영 일선 퇴진 및 신속한 경영권 이양을 이행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다음 재판에서도 홍 회장 측이 반전을 꾀할 수 있는 카드가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남양유업 최대주주에 한앤컴퍼니가 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다만 대법원까지 갈 경우 최장 3년이란 시간이 걸릴 수 있어 양측의 법적 분쟁이 조기에 마무리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한앤컴퍼니로서는 법적 분쟁이 장기화할수록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자금이 예상보다 장기간 묶이게 되면서 사모펀드 수익률과 평판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홍 회장을 제외한 남양유업 주주들로서는 홍 회장으로 발생한 ‘오너 리스크’를 빨리 털어내고 경영정상화를 이뤄내는 일을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앤컴퍼니는 과거 웅진식품을 사들여 5년 만에 기업가치를 2배 이상으로 끌어올려 매각한 경험이 있다. 이같은 경험은 한앤컴퍼니가 남양유업의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보탬이 될 수 있다. 

남양유업은 2020년과 2021년 2년 연속 영업손실을 냈다. 올해 상반기에도 연결기준으로 영업손실 421억 원을 봤다. 2019년 3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 12분기 연속으로 영업손실을 냈다. 

남양유업의 실적 악화가 이어지고 있지만 홍 회장은 연간 수십 억 원의 보수를 챙기고 있다. 

홍 회장은 2021년 보수로 상여금 없이 급여로만 16억1900만 원을 받았다. 올해 상반기에도 급여로 8억1100만 원을 수령했다. 

2021년 5월 지분 매각을 추진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그가 1년 넘게 남양유업 경영에 적극 관여하지 못하고 있는데도 급여는 받아간 셈이다. 

남양유업은 올해 상반기 매출 기준으로 국내 우유업계 3위다. 2019년까지만 해도 매출 1조 원대를 유지하며 2위인 매일유업을 바짝 뒤쫓았지만 2020년부터 매출이 9천억 원대로 내려앉은 뒤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김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