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한진해운을 놓고 또 다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한진해운 채권단이 조 회장에게 1조 원을 지원하면 한진해운에 대한 우선매수청구권을 주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회장이 그동안 한진해운에 강한 애착을 보였던 만큼 상당히 매력적인 카드다. 

그러나 대한항공을 통해 대규모 자금 지원에 나설 경우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 부담이다.

◆ 채권단 "1조 지원하면 우선매수청구권 주겠다"

14일 해운업계에서 조 회장과 한진그룹의 한진해운 지원 가능성을 놓고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진그룹은 최근 한진해운에 4천억 원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한진해운 채권단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채권단은 6천억 원의 자금이 더 필요하다며 모두 1조 원을 지원할 경우 한진그룹에 한진해운에 대한 우선매수청구권을 보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매수청구권은 시장에서 정해진 가격에 가장 먼저 살 수 있는 권리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지난해 우선매수청구권을 통해 금호산업을 되찾는 데 성공했다.

조 회장으로선 경영정상화 과정을 마친 한진해운을 비교적 쉽게 되찾을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채권단은 그동안 책임경영과 고통분담 차원에서 조 회장의 사재출연을 압박해왔는데 조 회장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준 것으로 풀이된다.

조 회장이 결국 자금 지원에 나설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조 회장은 그동안 한진해운에 강한 애착을 보여왔다.

조 회장은 14일 용선료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해외선주 가운데 한 곳인 시스팬의 게리 왕 회장을 만나는 등 직접 한진해운을 지원하고 나섰다.

조 회장은 2014년 대한항공까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안팎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한항공을 통해 한진해운을 인수했다.

조 회장은 그 뒤 한진그룹을 육해공을 아우르는 종합 물류회사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보였다. 조 회장은 당시 흑자전환할 때까지 무보수로 일하겠다고 밝힌 뒤 보수도 받지 않았다.

◆ 대한항공 경영상황이 열쇠

그러나 1조 원이 적은 돈이 아닌 만큼 조 회장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조 회장은 이미 대한항공 등 계열사를 동원해 1조 원이 넘는 돈을 한진해운에 쏟아부었다. 다시 자금을 지원할 경우 대한항공마저 흔들릴 수 있다.

조 회장이 최근 한진해운 경영권을 포기하자 대한항공 내부에서 드디어 한진해운 리스크에서 벗어났다며 반기는 목소리도 적지 않게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의 지원여력도 의문을 낳고 있다. 

신용평가사들은 올해 초 대한항공과 한진칼의 신용등급을 일제히 강등했다. 신용등급 강등으로 일반 회사채시장에서 자금조달이 어려워지자 대한항공은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을 대폭 늘렸다.

대한항공이 최근 4개월 동안 발행했거나 발행을 추진 중인 자산유동화증권은 1조 원대에 이른다. 자산유동화증권이란 미래에 발생할 수익을 기초자산으로 발행하는 채권으로 유동성이 시급한 기업들의 유동성 확보 수단으로 활용된다.

대한항공은 부채비율이 900%가 넘는다.

조 회장이 사재로 1조 원을 출연하는 것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조 회장은 한진칼과 한진 등 상장 계열사 주식 2천억 원 정도를 보유하고 있다. 정석기업 등 비상장 계열사 주식을 포함하면 금액은 더 늘어난다.

그러나 1조 원에 턱없이 모자랄 뿐 아니라 개인이 1조 원에 이르는 사재를 출연한 경우도 그동안 없었다.

이에 따라 조 회장이 1조 원 지원을 선택할 경우 조 회장과 한진그룹이 금융권 등을 동원해 자금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