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 국회의장이 ‘특수활동비 폐지’를 두고 여야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첫 주요 과제를 원만히 마무리한 만큼 하반기 국회에서 여야 협치를 끌어내며 민생입법을 처리하기 위한 동력을 얻은 셈이다.

▲ 문희상 국회의장.


문 의장은 13일 국회에서 열린 의장 주재 원내대표단 회동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특활비 폐지는 의정사에 남을 쾌거의 결단이다”며 “이것을 완벽한 제도화로 마무리하는 역할을 맡았으니 원내 교섭단체 합의 이상의 국회 차원의 결정을 서둘러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수활동비는 정보 및 사건 수사에 준하는 국정 수행활동을 할 때 직접적으로 소요되는 경비로 영수증이나 증빙자료가 필요 없다.

그동안 국회의장과 부의장, 18개 상임위원장, 특위위원장, 교섭단체를 꾸린 정당 의원들이 받았다. 일부는 생활비나 자녀 유학비로도 사용됐다.

이날 회동을 통해 특활비 제도 개선의 구체적 사안은 문 의장에게 맡겨졌다. 16일경 국회 차원에서 특수활동비제도 관련 세부적 방안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해마다 약 60억 원 규모로 추정됐던 특수활동비는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수활동비 폐지는 문 의장이 7월18일 취임 뒤 첫 기자간담회에서 예고한 개혁안이었다.

문 의장은 당시 “대명천지에 ‘깜깜이돈’ ‘쌈짓돈’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며 “특수활동비 폐지가 목표이며 원칙적으로 투명성을 확보하고 용도를 꼼꼼히 검토해 필요 없는 부분은 과감히 없애야 한다”고 밝혔다.

문 의장이 특수활동비 폐지를 제안하자 처음에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반대했다. 양당은 특수활동비를 유지하되 영수증이나 증빙서류를 내 투명성을 회복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냈다. 국회에서 일정상 필수불가결하게 사용할 수밖에 없는 비용을 어떻게 조달할지가 문제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폐지를 주장하며 연일 공격 수위를 높였다.

문 의장은 폐지와 별개로 법원이 ‘20대 현역의원의 특수활동비 내역(2016년 하반기)을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리자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이에 기름을 부은 듯 여론이 더욱 들끓게 됐고 결국 민주당과 한국당도 특수활동비 폐지에 합의하기로 했다.

문 의장은 국회의장으로서 처음으로 넘어야 할 시험대를 통과한 셈이다.

특수활동비 폐지를 놓고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사회가 변하는 계기’,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국회 개혁의 시금석이자 제도 개선의 출발점’이 될 것으로 바라봤다.

특수활동비를 폐지한 것은 문 의장이 이뤄내야 할 협치에 더욱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문 의장은 8월 임시국회에서 민생·개혁 입법을 우선해 처리하는 ‘실력국회’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혀왔다. 20대 상반기 국회는 여야의 갈등으로 법안 처리율 17%에 그치는 ‘식물국회’ 상태였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회동에서 “특수활동비 폐지 과정에서 우리 국민이 국회를 불신하고 일하지 않는 국회로 보는 데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다”며 “8월 임시국회와 정기국회에서 일하는 생산적 국회를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 의장은 하반기 국회에서도 여야 대치 상황에서 협치를 이뤄내는 ‘조조’ 리더십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문 의장은 민주당 내 현역 국회의원 가운데 최고령으로 6선 국회 연륜과 경험을 두루 갖춘 중진이다. 투박한 외모와 달리 지략은 조조처럼 많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문 의장은 1980년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제의를 받고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정세 판단이 빨라 동교동계 ‘기획맨’으로 통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초대 정무수석과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을 지낸 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의 대선기획단장을 맡았고 정부 출범 뒤 첫 비서실장이 됐다.

문 의장은 1945년 경기도 의정부에서 태어나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숭문당이라는 서점을 운영하다가 정치에 입문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임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