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이 미국 정부의 반도체 장비 규제 강화로 미국산 수입 금액을 크게 줄였지만 동남아에서 우회 수입되는 규모가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어플라이드머리티얼즈 반도체 장비 홍보용 사진. [출처=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 홈페이지]
미국이 중국에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를 강화한 뒤 중국 업체들이 자급에 힘줬으나 한계가 드러나며 동남아 국가에서 생산되는 미국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는 사례가 늘어난 결과로 분석된다.
닛케이아시아는 15일 자체 분석한 중국 세관 자료를 인용해 “미국 반도체 장비 기업들은 중국에서 여전히 가장 중요한 첨단 장비 수급처로 자리잡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중국으로 이동한 반도체 장비 수입액은 20억 달러(약 2조9500억 원) 안팎으로 파악됐다. 1년 전보다 37% 감소하며 2017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미국 트럼프 정부가 출범한 뒤 중국을 겨냥한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중국 기업들이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이 줄어든 데 따른 결과로 분석된다.
중국 정부가 미국을 비롯한 해외 국가에 기술 의존을 낮추려 자국 반도체 장비 기업을 육성하는 정책에 힘을 실은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반면 지난해 중국이 싱가포르에서 수입한 반도체 장비 구매액은 57억 달러(약 8조4천억 원), 말레이시아는 34억 달러(약 5조 원)로 미국을 크게 웃돌았다. 2024년 수입액과 비교해 모두 큰 폭으로 증가하며 신기록을 썼다.
투자기관 니덤은 닛케이아시아에 “동남아 국가에서 중국의 반도체 장비 수입이 급증한 원인은 미국 기업들의 생산 투자가 확대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전했다.
램리서치와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 KLA 등 미국 장비 업체들이 중국 고객사를 겨냥해 동남아에 생산 거점을 늘린 효과가 수입액에 반영되었다는 의미다.
결국 중국이 미국에서 수입하는 장비 구매액이 줄어들고 동남아에서 이를 더 많이 사들인 것은 미국 기업에 의존을 낮췄다고 보기 어려운 결과라는 관측도 제시됐다.
▲ 중국 사이캐리어(SiCarrier) 반도체 장비 홍보용 사진. [출처=사이캐리어 홈페이지]
닛케이아시아는 해당 미국 반도체 장비기업 3곳이 지난해 중국에서 거둔 매출 총합은 190억 달러(약 28조 원)로 중국 세관의 집계를 크게 웃돈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반도체 장비 기업들이 결국 다양한 국가로 생산 거점을 다변화해 중국 고객사에 물량을 공급하면서 미국에서 직접 수출하는 물량을 대폭 줄이고 있다는 것이다.
니덤은 중국 반도체 장비 기업들도 공급망 현지화 정책에 수혜를 보고 있지만 내수시장에서 이미 치열한 경쟁에 직면해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고 전했다.
가격 경쟁으로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어 중국 업체들의 성장세가 불안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러한 시장 흐름은 결국 중국 기업들이 미국을 비롯한 해외 기업 장비에 의존을 낮추기 어려워지는 배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닛케이아시아는 업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중국 정부는 자국 반도체 장비 기업을 키우면서도 해외 제품을 가능한 많이 확보하는 ‘투트랙’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규제 강화로 동남아 국가를 통한 우회 수입 경로까지 차단될 가능성에 대응해 적극적으로 해외 장비 구매를 늘리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 상원 및 하원 양당 의원들은 실제로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를 강화해 중국의 우회 경로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네덜란드와 일본 등 미국의 동맹국도 중국에 고사양 반도체 장비를 판매하거나 유지보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중국이 자국 기업들의 반도체 장비 기술력과 공급 능력을 빠르게 높여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 셈이다.
닛케이아시아는 “미국의 새 법안이 통과되면 글로벌 반도체 장비 기업들이 중국에서 사업을 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며 “미국 정치권은 현행 규제가 지나치게 느슨하다고 지적하며 수출을 더 옥죄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