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에서 평판을 구축하고 유지하는 일은 아무리 그 중요성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 Freepik >
뒤늦게 “우지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정부 발표가 있었지만, 한 번 추락한 이미지는 다시 세울 수 없었다. 그리고 8년 뒤, 대법원에서 삼양식품은 최종 무죄판결을 받았다. 당시 ‘우지파동’ 뒤에는 라이벌 기업 ‘농심’이 정치권과 손을 잡고 꾸민 공작이라는 설이 제기됐지만, 이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 묻어졌다.
‘공작설’은 근거가 상당히 빈약하다. 우지파동 당시 시장점유율 자체는 농심이 삼양라면을 거의 3배 가까이 앞서고 있었다. 더구나 농심은 1982년에 너구리, 1983년에 안성탕면, 1984년 짜파게티, 1986년 신라면 등 메가톤급 히트 라면을 출시하면서 삼양라면과 점유율 격차를 저만치 앞서나가고 있었다. 시장에서 1등이 이러한 모험수를 쓸 이유가 하등 없었다.
그럼에도 삼양라면이 우지파동으로 겪은 고통은 어마어마했다. 8년이나 걸린 재판으로 회사는 만신창이가 됐으며, 결정적으로 군납이 철회되면서 매출에 엄청난 타격이 됐다. 최근 삼양라면 측은 ‘삼양 1963’이라는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세간에서 “화병으로 숨졌다”는 이야기가 도는 창업주이자 선대 회장의 한을 조금은 풀어드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기업에게 평판은 양날의 칼과 같다. 좋은 평판은 막대한 이익과 성공의 기회를 가져올 수 있지만, 잘못 관리되거나 위기가 발생했을 때는 심각한 손실과 몰락을 초래할 수 있다. 그래서 기업은 평판 관리에 엄청난 비용을 들인다. 당장 돈으로 돌아오지 않지만, 언젠가는 따스한 칭찬으로, 또는 날카로운 비수로 실적을 올리거나 갉아먹기 때문이다.
SPC삼립은 파리바게뜨, 샤니, 파리크라상 등 주요 계열사에서 장시간 근무로 인한 노동자 사망사고가 잇따르자 언론에서 ‘피묻은 빵’, ‘죽음의 빵’이라는 말로 질타를 당했다. 일부 시민단체는 노동자의 고혈을 짜낸다는 이유로 불매운동까지 벌였다. 이재명 대통령도 공장을 직접 방문해 노동자의 안전 문제를 질책했다. 이후 SPC는 ‘8시간 초과 야근 폐지’를 시행했다.
이후 SPC 관계자는 “빵이 예전만큼 팔리지 않는다”, “영업이익이 성심당보다 두 배 이상 떨어진다”, “숙련 노동자의 이탈이 많아졌다”고 하소연했다. 이런 평판을 듣게 된 것은 SPC가 화를 자초한 것이다. 근로자들의 안전과 처우보다는 그들의 노동시간과 임금이라는 고혈을 짜내는 데 몰두했기 때문이다. 결국 노동자를 착취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탓에, SPC는 존경받은 프랜차이즈 기업이 아니라 반노동적인 죽음으로 내모는 회사라는 평판을 듣게 된 것이다. 이 역효과는 고스란히 가맹점주의 불안과 실적 하락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퇴근길에 방앗간처럼 들렸던 지하철역 옆의 파리바게뜨 매장에는 저녁 늦게까지 팔리지 못한 빵들이 당일 할인이라는 팻말 뒤에서 애꿎은 주인을 찾고 있었다.
이만큼 평판은 사람의 인식이라는 찌꺼기를 먹고 하나의 완전체가 되어 울타리 안에 가둔다. 평판은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위험한 현대 사회에서 본모습을 파악하고자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의 날카로운 시선을 분산시키고 세상이 판단하는 방식까지 어느 정도 통제한다.
평판은 요술지팡이와도 같은 힘을 갖고 있다. 한 번만 휘둘러도 힘이 배가될 수 있으며, 또는 황급히 달아나게 만들 수도 있다. 똑같은 행동을 해도 그것이 멋지게 비치느냐 끔찍하게 비치느냐는 전적으로 행위자의 평판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
확고한 평판은 존재를 부각시키고 굳이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붓지 않아도 장점들을 과장해준다. 또한 다른 이들에게 존경심을, 심지어는 두려움을 주입시키는 독특한 분위기를 창출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장군 에르빈 롬멜은 교활함과 기만 작전으로 모든 사람들은 공포에 떨게 만든다는 평판을 갖고 있었다. 그의 부대가 지쳐 있을 때에도, 영국군의 탱크가 독일 탱크의 다섯 배에 달했을 때에도, 그가 접근한다는 소식만 들리면 영국군은 퇴각하기에 바빴다.
‘전쟁의 기술’을 쓴 미국의 작가 로버트 그린은 “평판은 권력의 초석이다. 평판 하나만으로도 상대를 위협하고 승리를 거둘 수 있다. 하지만 일단 평판에 흠집이 나면 취약해지고 사방에서 공격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평판은 극도로 중요하다. 따라서 이 법칙에는 예외가 적용되지 않는다. 다른 이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면 무례하고 오만하다는 평판을 얻을 것이다. 기업은 소비자의 의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평판을 무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소비자들의 인식을 쓰지 않을 경우, 이들이 기업에 대한 인식을 마음대로 결정해버린다. 장원수 유통&4차산업 부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