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주의 '후판 고집' 마침내 빛보나  
▲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이 지난 1월9일 전국경제인연합회 1월 회장단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실로 들어서고 있다.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의 ‘후판’ 고집이 빛을 볼 것으로 보인다. 조선업황이 회복세를 보이면서 후판 수요가 크게 늘어날 전망이기 때문이다. 특히 동국제강은 고급 후판을 내세우고 있어 더 높은 수익을 낼 가능성이 높다.

20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올해 1~2월 국내 조선업체가 수주한 물량은 313만 CGT(부가가치환산톤수)로 전 세계 조선회사들의 발주량 가운데 40%를 웃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95억 달러에 이른다. 이는 지난해 연간 수주액인 411억 달러의 23%에 해당한다.

조선업황이 좋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철강업체들이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선박의 원자재인 후판(6㎜이상 두께의 철판) 수요가 확연히 되살아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들은 선박 수주에서 건조까지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조선용 후판 수요가 올 하반기부터 증가할 것으로 내다본다. 따라서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의 후판 고집이 머지않아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동국제강은 지난해 말 유동성 악화와 철강업계 불황이 겹치면서 후판 사업부문을 별도법인으로 쪼개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려고 했다. 하지만 장 회장은 “어떻게 키운 사업인데 조금만 더 지켜보자”며 분할방안을 백지화시켰다.

장 회장이 후판 사업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후판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다. 동국제강은 1971년 국내 최초로 후판을 생산한 원조 후판 생산업체다. 창업주 장경호 회장은 당시 정부가 중화학공업 육성에 나서자 부산제강소를 설립해 후판 생산을 시작했다. 2세 장상태 회장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자금을 들여 포항 1후판 공장과 2후판 공장을 증설했다.

3세 장세주 회장 역시 2009년 150만 톤 규모의 당진 후판공장을 세우면서 3대를 이은 후판 고집은 계속됐다. 그러나 이후 전방산업인 조선업의 장기 불황으로 수요는 계속 줄어드는데다 중국발 공급 물량이 대폭 늘어나면서 후판 단가가 떨어졌다. 이에 따라 동국제강의 후판 사업부문도 수년째 적자를 면치 못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동국제강은 2012년 노후화한 포항 1후판 공장을 폐쇄하고 원가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동국제강의 국내 후판시장 점유율은 2010년 40%에서 지난해 20%대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장 회장은 후판 사업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동국제강은 올해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후판시장에서 프리미엄 후판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을 내세웠다.

동국제강은 포항과 당진에 340만 톤 규모의 최신 후판 생산체제를 갖추고 고급제품 생산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포항 2후판 공장과 당진공장에서 고급강 중심의 후판 수요 대응에 보다 집중하고 후판 부문의 수익성을 높이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국제강이 생산하는 품목에 극저온에서 사용 가능한 해양구조물용 후판과 조선용 온라인 정밀제어 열가공처리 TMCP 후판, 내부식성 라인파이프용 후판 등이 있다.

또 고급 후판 생산의 기술력을 높이기 위해 지난 1월 세계 9위 철강회사 일본 JFE스틸과 기술협력 협정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후판 연압기술과 슬라브 소재설계, 슬라브 조달 부문 경쟁력을 키워나간다는 계획을 밝혔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기술협력을 통해 “최고급 후판시장 진출과 함께 원가 경쟁력도 10% 이상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국제강은 후판 사업부문의 일관 생산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브라질 제철소 건설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2015년 말 완공 예정인 브라질 CSP 제철소는 연간 300만 톤의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다. 동국제강은 브라질 제철소 완공으로 글로벌 고로 철강사로 도약하는 한편, 성장 잠재력이 큰 남미 시장을 선점하고 글로벌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