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는 이례적으로 과거 결정을 뒤집고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는데 이 부회장은 이를 따라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의 정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7일 공정위 등에 따르면 공정위는 합병관련 순환출자 가이드라인을 변경하는 내용의 예규를 마련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예규안을 발표한 뒤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했고 이제 전원회의 의결을 남겨뒀다.
예규가 확정될 경우 삼성SDI는 보유하고 있는 삼성물산 지분 전량(2.11%,404만 주)을 처분해야 한다. 약 5500억 원 규모인데 삼성물산은 삼성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회사라 그룹 전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을 처분하는 방안은 아직 불투명하다.
삼성물산이 삼성그룹의 지주회사 격이기 때문에 다른 계열사가 지분을 사들이면 신규 순환출자가 새로 형성된다.
이 때문에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사들이거나 삼성물산이 직접 자사주로 매입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특히 삼성물산이 최근 장부가액 5600억 원 수준의 서초사옥 매각을 추진하기로 해 삼성물산의 자사주 매입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2016년 2월 삼성SDI가 삼성물산 지분 500만 주를 처분할 때는 이 부회장과 삼성생명공익재단이 일부 지분을 매입하고 나머지는 기관투자자들이 소화했다.
이번에도 삼성그룹 공익법인이 지분을 매입할 수도 있지만 최근 공정위가 대기업집단 공익법인 전수조사를 하고 있어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통해 순환출자 고리가 형성되자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 900만 주 가운데 500만 주를 매각하도록 했다.
당시 공정위는 삼성SDI의 삼성물산 지분은 신규 순환출자를 형성한 것이 아니라 기존 순환출자가 강화된 것이라고 보고 지분 전량이 아닌 일부만 처분을 명령했다. 공정위 실무자들은 지분 전량을 처분하는 것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으나 최종 결정과정에서 삼성그룹 의견이 받아들여져 일부 처분으로 변경됐다.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순환출자 가이드라인 변경을 발표하면서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 전량을 처분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2년 전 실무진의 판단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이었다”고 해명했다.
문제는 공정위의 가이드라인 변경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공여죄 등을 재판한 1심 법원의 판단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1심 법원은 공정위 가이드라인을 놓고 “삼성의 청탁이 성공한 것”이라고 파악했다. 이 때문에 공정위는 사과와 함께 가이드라인 변경에 착수했다.
하지만 5일 2심 법원은 1심 법원의 판단을 대부분 뒤집었다. 2심 법원은 “부정청탁의 대상이 되는 포괄적 경영승계는 없었다”며 “삼성물산의 주식 처분량 최소화 등은 개별현안의 진행”이라고 바라봤다.
일단 공정위는 2심 판결과 관계없이 가이드라인 변경은 추진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김상조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법원의 판단은 달라질 수 있지만 삼성이 접촉을 했고 공정위 실무안이 변경됐다고 하는 사실관계 자체가 달라지지 않는다”며 “법원이 판단을 다르게 하더라도 공정위 결정은 변경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2심 판결이 달라진 만큼 삼성전자가 공정위의 가이드라인 변경에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집행유예 상태인데다 대법원에서 다시 판결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기에 무리한 소송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공정위는 올해 대기업집단 동일인제도를 손보기로 했다. 경영활동을 하지 못하는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부회장으로 삼성그룹 총수가 변경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그룹 순환출자 해소의 책임도 명시적으로 이 부회장이 짊어져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 고려할 때 오히려 이 부회장이 적극적으로 순환출자 해소에 나서면서 총수로서 책임을 다하고 삼성물산 합병 관련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편이 유리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