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전탑들이 10월5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라 카냐다 플린트리지 인근에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미국 송전망 시장은 노후 설비 교체 수요로 변압기와 전선 등 전력기기 발주가 늘고 있다. 하지만 주민 반대로 건설이 지연되면 HD현대일렉트릭과 LS일렉트릭, 효성중공업 등 한국 전력기기 업체의 사업 불확실성을 높일 변수가 될 수 있다.
8일 월스트리트저널과 파이낸셜타임스를 비롯한 주요 외신을 종합하면 미국 내 송전망 건설 속도가 주민 반대로 늦어지는 사례가 잇달아 나타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미국 버지니아주와 조지아주 등에서 송전선 건설을 둘러싼 주민 반발이 확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례로 버지니아주 애슈번에서는 전력회사 도미니언에너지가 데이터센터 밀집 지역의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주거단지 인근에 높이 165피트(약 50m)의 송전탑을 설치하려 하면서 갈등이 발생했다.
조지아주 코웨타에서도 송전선 건설을 위해 주택 29채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주민과 전력회사 조지아파워 사이에 갈등이 불거졌다. 주민들은 토지 수용에 따른 보상, 환경 파괴 등을 문제 삼았다.
파이낸셜타임스 보도를 보면 아이오와주에서 위스콘신주를 잇는 102마일(약 164㎞) 거리의 송전선은 야생동물 보호구역 통과, 주·연방 규정 차이와 주민 반대 등으로 2008년 사업 승인부터 완공까지 13년이나 걸렸다.
전력회사로서는 송전망 확충 작업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미시간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알렉산드라 클래스 에너지법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전력회사들이 송전선 건설 계획을 공개하길 꺼린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송전선로 건설을 둘러싼 주민 반대가 전력망 확충의 주요 장애물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내 송전망 상당수가 노후한 데다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와 제조업 확대에 따른 전력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미국 송전선의 70%는 최소 25년 전에 설치됐고 대형 변압기 평균 연식은 40년을 웃돌아 일반적 기대수명을 초과했다.
송전망 확충이 늦어지면 급증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 데이터센터와 제조시설 등에 전력을 공급하는 데 차질이 생길 수 있다.
그동안 미국 내 송전망 확충은 주·연방 정부의 인허가, 환경영향평가, 전력기기 공급 경색 등으로 속도가 더뎠는데 주민 반대라는 변수까지 더해지면서 사업 추진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셈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송전망 건설 허가가 나더라도 이해관계 집단이 법원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며 “개발업체는 수년 동안 불확실성에 시달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주민 반대에 따른 미국 송전망 건설 차질은 HD현대일렉트릭과 LS일렉트릭, 효성중공업 등 한국 전력기기 업체의 사업에도 변수가 될 수 있다.
한국 전력기기 업체가 미국의 노후 전력망 교체와 AI 데이터센터 확충에 따른 수요 증가를 기회로 삼아 초고압 변압기와 차단기 등 생산 확대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 효성중공업이 제조한 초고압 차단기가 미국 내 전력망에 설치돼 있다. <효성중공업>
HD현대일렉트릭은 지난 3월6일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 초고압 변압기 제2공장 기공식을 개최했다. 내년 4월 준공해 생산 능력을 기존의 연간 105대에서 150대로 40% 넘게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LS일렉트릭은 미국 유타주 시더시티에 지난 6월25일 배전반 생산 공장 규모를 기존의 6배 수준으로 증설하는 기공식을 열었다. 시더시티 공장은 내년 초 가동이 목표다. 이에 더해 LS일렉트릭은 부산 사업장에서 초고압 변압기를 생산해 미국에 공급하고 있다.
효성중공업은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 공장을 2028년까지 증설해 초고압 변압기 생산량을 확대할 계획을 세웠다.
또한 효성중공업의 자회사 효성하이코는 지난 6월14일 인프라 기업 콴타서비시스의 자회사와 미국 내 합작법인을 설립했고 펜실베이니아주에 소재한 콴타의 캐논스버그 공장에서 초고압 차단기 생산을 추진한다.
이들 국내 전력기기 3사는 최근 초고압 변압기를 중심으로 미국 내 수주를 확대해 매출이 대체로 증가했다.
HD현대일렉트릭은 올해 3분기 연결 기준 매출이 1조1799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5% 증가했다. LS일렉트릭(1조8778억 원)과 효성중공업(1조7406억 원) 또한 같은 기간 매출이 각각 54.4%와 7.2% 늘었다.
전력기기 3사는 호황에 힘입어 미국 현지와 한국 공장을 증설하고 있는데, 미국 내 송전망 프로젝트가 주민 반대와 인허가 지연으로 늦어지면 발주와 납품 일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더구나 송전선 건설이 차질을 빚는 주 일부는 이번 미국 중간선거에서 경합주로 꼽다.
인공지능 인프라 건설 속도를 조절하자는 민주당 후보가 건설 인허가 권한을 갖는 주지사 자리를 차지하면 송전망 확대가 더 늦어질 공산이 크다. 정치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조지아 주지사로 당선된 케이샤 랜스 바텀스 후보는 신규 데이터센터 건설에 반대하는 입장을 갖고 있다.
결국 미국 내 송전선 확대 사업이 각종 인허가와 규제에 주민 반대까지 겹쳐 지연될수록 HD현대일렉트릭과 LS일렉트릭, 효성중공업 등 전력기기 업체에 부담을 키울 가능성이 제기된다.
컨설팅 업체 그리드스트래티지스의 롭 그램리치 사장은 파이낸셜타임스에 “엄청난 위험 부담을 안으면 누가 투자에 나설지 의문”이라며 송전망 확대에 따른 주민 반대 리스크가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이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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