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대통령의 포퓰리즘은 새로울 게 없는 얘기다. 본인은 달리 생각할지 모르지만 포퓰리즘의 브랜드는 성남시장 시절부터 그를 따라다녔다. 대선 때도 그의 포퓰리즘은 반대 진영의 공격 대상이었다.
물론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대중의 인기에 영합한다”는 포퓰리즘의 사전적 정의에 맞게, 자극적으로 말하고 선정적으로 행동했다. 그런데 과연 정치인의 포퓰리즘은 비난받을 일인가.
포퓰리즘은 세상 욕망의 흐름을 포착하고 그 흐름을 어느 쪽으론가 돌리려 한다. 사람들에게 이데올로기를 주입할 게 아니라면, 그들의 욕망을 파악해 거기에 부합하는 것만큼 요긴한 능력은 없다.
포퓰리즘은 다수결의 체제에서 방외의 자식만은 아닐 것 같다. 대통령은 포퓰리즘에 충실해 왔다.
집권하자마자 내놓은 ‘코스피 5천’ 선언도 그간의 행보에서 어긋나지 않았다. 암만 봐도 저평가된 코스피 지수는 대한민국의 괜한 부끄러움이었다. 주식을 하는 사람, 주식에 관해 아는 사람 모두 의문의 1패를 안고 사는 느낌이었다.
그런 시절에 대통령은 코스피 5천의 메시지를 내질렀다. 계엄과 탄핵에 지친 국민에게 사이다 같은 메시지였다.
자사주 소각 등 주주들의 수혜를 키우는 방향으로 법 개정도 예고했다. 한국 증시는 욱일승천까진 아니어도 강력한 우상향을 시연하며 단숨에 3천을 뚫었다.
우리 주가지수를 두고 ‘올해 상승률 세계 1위’란 헤드라인이 6월 하순, 이미 언론에 등장했다.
‘주가는 역시 기세야’란 호언들도 시중에 다시 돌았다. 그런데 코스피 지수가 3200을 횡보하는 시점에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주가가 조정의 폭을 넘어 내려앉았다. 섣부른 일이지만 ‘검은 금요일’ 얘기들을 했다. 엊그제, 8월 초의 일이다.
‘노란봉투법안’에서 기미를 찾아야 할 것 같다. 원래 이름은 노조법 2·3조 개정안이다. 이 개정안이 7월 28일 국회의 소위원회를 통과했다. 환경노동위원회의 전격적 법안 가결 직전, 개정안을 신속히 처리하라는 대통령실의 주문이 있었단 얘기가 돌았다.
노란봉투법안은 ‘사용자’ 범위의 확장을 규정한다.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어도 사용자가 ‘될 수’ 있다.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가 ‘실질적 사용자’로 판단되는 원청을 상대로 교섭할 권리를 얻게 된다. 원청이 노동쟁의를 이유로 청구하는 손해배상엔 제동이 걸린다.
노동자들은 환호했다.
반발은 외국기업들로부터 시작됐다.
노란봉투법의 국회 소위 통과 직후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는 밤늦은 시간인데도 서둘러 입장을 냈다. 기업의 사법 리스크가 커질 경우 한국 시장 철수를 고려할 수 있다는 엄포였다.
이틀 후엔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암참)가 동참했다. “한국에 대한 미국 기업들의 투자의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수사는 외교적이었지만, 그 뒤의 뉘앙스는 만만찮게 위협적이었다.
외국 기업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이들의 발언 하나하나에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원래 그런 일 하려고 만들어진 조직이다.
중요한 건 노란봉투법안이 지난 8월 1일의 주가 폭락을 어느 정도 예비했단 사실이다. 이후 동시다발적으로 튀어나온 법인세 인상, 상법 개정안이 합세해 만들어 낸 타격이지만, 노란봉투법은 그 모든 일들의 신호탄이면서 상징이었다.
직전 코스피 5천의 선언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메시지가 아무렇지 않은 듯 왜 나왔을까.
얼마 안 되는 시차를 두고 대통령(실)에게서 나와, 강렬하게 부딪친 코스피 5천과 노란봉투법의 메시지에서 오래된 포퓰리즘의 본능이 읽힌다. 두 개의 포퓰리즘이 충돌하고 갈등하는 모습이 보인다.
코스피가 5천에 이르려면 메시지와 정책, 시장을 적셔줄 유동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주가지수는 중장기적으로 기업 수익의 함수다. 주가를 끌어올리는 건 궁극적으로 기업의 혁신과 약진이다. 지수는 기업들의 수익을 뒤늦게, 그리고 선형적으로 추수한다.
달리 어떤 일이 가능하겠나.
노란봉투법안(과 법인세 인상과 상법 개정)은 기업의 혁신과 약진의 의지에 심대한 타격을 입힌다.
오랫동안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간의 정치와 행정의 궤적으로 짐작하건대, 대통령의 마음속엔 포퓰리즘의 본능과 구현 의지가 언제나 확고하다. 그에게 코스피 5천은 국민 전체의 환심을 살 수 있는 메시지이다. 노란봉투법은 국민 가운데 자신에게 상대적으로 더 우호적인 유권자 집단의 마음을 사는 메시지를 담았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선 많이 헷갈린다.
대통령은 코스피 5천 가자면서 왜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려 할까……?
실용적인 로마인들이 즐겨 쓰던 말 중에 ‘쿠이 보노(Cui Bono?)’란 질문이 있다.
누구에게 좋은가?
누구에게 이로운가?
포퓰리즘이 다중의 환심을 넘어, 그들의 이해를 충족시키는 미덕이 되려면 ‘쿠이 보노’의 객체 또는 수혜자의 입장을 그때그때 세심히 살필 필요가 있다. 포퓰리즘이란 게 워낙 실체보다 메시지의 도달 대상에 주목하다보니,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정책이어도 서로 충돌하기 쉽다. 파국까진 아니어도 어정쩡한 상황을 초래하고 만다.
대통령은 포퓰리즘의 고수이니만큼, 그의 마음속에서 들끓는 포퓰리즘의 충동과 충돌을 잘 관리하리라 믿는다. 이지형 금융증권부장(부국장)
물론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대중의 인기에 영합한다”는 포퓰리즘의 사전적 정의에 맞게, 자극적으로 말하고 선정적으로 행동했다. 그런데 과연 정치인의 포퓰리즘은 비난받을 일인가.
![[데스크리포트 8월] 대통령 그의 마음속, 포퓰리즘의 충돌](https://www.businesspost.co.kr/news/photo/202508/20250804110140_135580.jpg)
▲ 지난 1일 코스피지수가 3% 넘게 하락하며 3119.41로 마쳤다. 사진은 장 마감 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연합뉴스>
포퓰리즘은 세상 욕망의 흐름을 포착하고 그 흐름을 어느 쪽으론가 돌리려 한다. 사람들에게 이데올로기를 주입할 게 아니라면, 그들의 욕망을 파악해 거기에 부합하는 것만큼 요긴한 능력은 없다.
포퓰리즘은 다수결의 체제에서 방외의 자식만은 아닐 것 같다. 대통령은 포퓰리즘에 충실해 왔다.
집권하자마자 내놓은 ‘코스피 5천’ 선언도 그간의 행보에서 어긋나지 않았다. 암만 봐도 저평가된 코스피 지수는 대한민국의 괜한 부끄러움이었다. 주식을 하는 사람, 주식에 관해 아는 사람 모두 의문의 1패를 안고 사는 느낌이었다.
그런 시절에 대통령은 코스피 5천의 메시지를 내질렀다. 계엄과 탄핵에 지친 국민에게 사이다 같은 메시지였다.
자사주 소각 등 주주들의 수혜를 키우는 방향으로 법 개정도 예고했다. 한국 증시는 욱일승천까진 아니어도 강력한 우상향을 시연하며 단숨에 3천을 뚫었다.
우리 주가지수를 두고 ‘올해 상승률 세계 1위’란 헤드라인이 6월 하순, 이미 언론에 등장했다.
‘주가는 역시 기세야’란 호언들도 시중에 다시 돌았다. 그런데 코스피 지수가 3200을 횡보하는 시점에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주가가 조정의 폭을 넘어 내려앉았다. 섣부른 일이지만 ‘검은 금요일’ 얘기들을 했다. 엊그제, 8월 초의 일이다.
‘노란봉투법안’에서 기미를 찾아야 할 것 같다. 원래 이름은 노조법 2·3조 개정안이다. 이 개정안이 7월 28일 국회의 소위원회를 통과했다. 환경노동위원회의 전격적 법안 가결 직전, 개정안을 신속히 처리하라는 대통령실의 주문이 있었단 얘기가 돌았다.
노란봉투법안은 ‘사용자’ 범위의 확장을 규정한다.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어도 사용자가 ‘될 수’ 있다.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가 ‘실질적 사용자’로 판단되는 원청을 상대로 교섭할 권리를 얻게 된다. 원청이 노동쟁의를 이유로 청구하는 손해배상엔 제동이 걸린다.
노동자들은 환호했다.
반발은 외국기업들로부터 시작됐다.
노란봉투법의 국회 소위 통과 직후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는 밤늦은 시간인데도 서둘러 입장을 냈다. 기업의 사법 리스크가 커질 경우 한국 시장 철수를 고려할 수 있다는 엄포였다.
이틀 후엔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암참)가 동참했다. “한국에 대한 미국 기업들의 투자의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수사는 외교적이었지만, 그 뒤의 뉘앙스는 만만찮게 위협적이었다.
외국 기업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이들의 발언 하나하나에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원래 그런 일 하려고 만들어진 조직이다.
중요한 건 노란봉투법안이 지난 8월 1일의 주가 폭락을 어느 정도 예비했단 사실이다. 이후 동시다발적으로 튀어나온 법인세 인상, 상법 개정안이 합세해 만들어 낸 타격이지만, 노란봉투법은 그 모든 일들의 신호탄이면서 상징이었다.
직전 코스피 5천의 선언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메시지가 아무렇지 않은 듯 왜 나왔을까.
얼마 안 되는 시차를 두고 대통령(실)에게서 나와, 강렬하게 부딪친 코스피 5천과 노란봉투법의 메시지에서 오래된 포퓰리즘의 본능이 읽힌다. 두 개의 포퓰리즘이 충돌하고 갈등하는 모습이 보인다.
코스피가 5천에 이르려면 메시지와 정책, 시장을 적셔줄 유동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주가지수는 중장기적으로 기업 수익의 함수다. 주가를 끌어올리는 건 궁극적으로 기업의 혁신과 약진이다. 지수는 기업들의 수익을 뒤늦게, 그리고 선형적으로 추수한다.
달리 어떤 일이 가능하겠나.
노란봉투법안(과 법인세 인상과 상법 개정)은 기업의 혁신과 약진의 의지에 심대한 타격을 입힌다.
오랫동안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간의 정치와 행정의 궤적으로 짐작하건대, 대통령의 마음속엔 포퓰리즘의 본능과 구현 의지가 언제나 확고하다. 그에게 코스피 5천은 국민 전체의 환심을 살 수 있는 메시지이다. 노란봉투법은 국민 가운데 자신에게 상대적으로 더 우호적인 유권자 집단의 마음을 사는 메시지를 담았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선 많이 헷갈린다.
대통령은 코스피 5천 가자면서 왜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려 할까……?
실용적인 로마인들이 즐겨 쓰던 말 중에 ‘쿠이 보노(Cui Bono?)’란 질문이 있다.
누구에게 좋은가?
누구에게 이로운가?
포퓰리즘이 다중의 환심을 넘어, 그들의 이해를 충족시키는 미덕이 되려면 ‘쿠이 보노’의 객체 또는 수혜자의 입장을 그때그때 세심히 살필 필요가 있다. 포퓰리즘이란 게 워낙 실체보다 메시지의 도달 대상에 주목하다보니,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정책이어도 서로 충돌하기 쉽다. 파국까진 아니어도 어정쩡한 상황을 초래하고 만다.
대통령은 포퓰리즘의 고수이니만큼, 그의 마음속에서 들끓는 포퓰리즘의 충동과 충돌을 잘 관리하리라 믿는다. 이지형 금융증권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