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에 없는 80년대생 임원 쓰는 정유경, 신세계에 '이명희 DNA' 잇는다

▲ 신세계백화점에는 다른 백화점에 없는 80년대생 임원이 3명이나 있다. 정유경 신세계 회장(사진)의 특징이 드러나는 한 단면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신세계백화점에는 80년대생 임원이 3명이나 있다.

젊은 임원을 발탁하는 사례가 흔해지고 있지만 롯데백화점과 현대백화점에는 80년대생 임원이 없다는 점에서 신세계백화점만의 특징으로 이목을 끌고 있다.

‘영어가 유창하다’는 이유로 신입사원을 곧장 바이어로 발탁했던 이명희 신세계그룹 총괄회장의 DNA가 정유경 신세계 회장에게 그대로 대물림됐다는 평가이다.

25일 신세계백화점과 롯데백화점·현대백화점의 임원진을 비교해보면 신세계 계열사 곳곳에서 80년대생 임원이 적지 않은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김현진 신세계 기획담당 상무와 서민성 뷰티전략TF 상무는 2021년 10월 실시된 정기 임원인사에서 나란히 상무보로 승진하며 시쳇말로 ‘별’을 달았다. 두 상무는 1980년생인데 당시 마흔이 갓 넘은 시기였다.

김 상무는 언론인 출신 인물이다. 2005년 서울대학교 독어교육과를 졸업한 뒤 조선일보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3년 삼성전자로 이직해 글로벌커뮤니케이션실에서 2년가량 일했다. 2015년 2월 신세계로 자리를 옮겨 MD마케팅팀 MD전략담당, 기획관리담당 기획팀장 등에서 7년 가까이 근무하다가 상무보로 승진하면서 신세계까사 마케팅담당이 됐다. 상무보 승진 이절 신세계가 콘텐츠 투자를 위해 설립한 회사 마인드마크의 기획팀장을 맡았던 이력도 있다.

내부에서 역량을 인정받아 신세계가 2023년 초 사업성을 진단하고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자는 취지에서 띄운 조직 미래혁신추진단에 합류했다. 당시 신세계는 계열사의 기획·마케팅담당 임원을 끌어모아 미래혁신추진단을 조직했다.

그해 5월에는 기획전략본부 산하 기획담당으로 이동했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기획담당이 비즈니스 관련 사업성을 검토하고 회사의 방향성을 잡는다는 점에서 김 상무에게 중책을 맡긴 것으로 분석됐다.

김 상무는 2023년 9월 인사에서 상무로 승진했고 현재까지 2년가량 기획담당을 맡다가 2025년 5월 말 신세계인터내셔날로 이동해 레이블5 총괄을 맡고 있다. 레이블5는 뷰티부문의 글로벌 사업을 담당한다.

김 상무와 동갑인 서민성 상무는 정유경 사장이 중요하게 여기는 화장품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이다.

서 상무는 LG생활건강 출신으로 2014년 7월 신세계에 입사했다. 신세계세계인터내셔날 코스메틱2팀 팀장으로 일하면서 2018년 자체 브랜드 ‘연작’의 론칭을 이끌었다. 

연작은 현재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운영하는 여러 자체 화장품 브랜드 가운데 매출 성장률 선두를 달리는 브랜드로 안착했다. 서 상무의 역량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서 상무는 신세계가 글로벌 1위 화장품 ODM(제조업자개발생산) 기업인 코스맥스와 손잡고 만든 화장품 자회사 퍼셀의 대표이사도 맡고 있다. 퍼셀은 아직 손익분기점을 넘지는 못했지만 설립 3년여 만인 2024년 매출 103억 원을 내며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서 상무는 지난해 정기 임원인사에서 신세계인터내셔날 레이블3 총괄 겸 신세계 백화점부문 뷰티전략TF, 퍼셀 대표이사를 겸임하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 레이블3는 연작과 로이비, 아이엠샴푸 등 브랜드 3개를 담당하는 자리다.

겸직이 많다는 데서 서 상무를 향한 정 회장의 신뢰를 엿볼 수 있다는 평가가 많다. 서 상무 역시 김현진 상무와 마찬가지로 2023년 9월 상무로 승진했다.

이들보다 한 살 어린 백지원 브랜드디자인담당 상무보는 신세계의 현 최연소 임원이다. 2024년 10월 실시된 인사 당시 유일한 80년대생 임원 승진자였다.

백 상무보는 미국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최상위권 명문 사립 단과대학인 쿠퍼유니언에서 아트를 전공했고 사립 미술대학인 프랫인스티튜트에서 디자인 매니지먼트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1년 4월 신세계 디자인담당그래픽으로 입사해 2022년 브랜드연구소 브랜드디자인팀장을 맡다가 브랜드디자인담당을 거쳐 임원이 됐다.

주요 백화점3사 가운데 신세계백화점에만 80년대생 임원이 존재하는 것은 다소 특이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대기업에서 30대 임원이 발탁되는 사례가 점차 많아지고 있지만 유독 백화점업계에서는 30대 임원 발탁을 찾아보기 힘들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조직문화를 지닌 다른 백화점기업과 달리 정유경 회장이 능력만 된다면 젊은 임원을 적극적으로 발탁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주고 있다는 얘기가 신세계그룹 안팎에서 나온다. 80년대생들이 임원에 오를 당시 이들의 자질이나 역량을 의심한 사람이 없고 다들 고개를 끄덕였을 정도다.

정 회장은 좀처럼 외부에 나서지 않는 스타일이라 밖으로 알려진 면모가 적지만 추진력이 강하고 숫자로 성과를 증명하는 데 특화한 오너경영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정 회장의 인사도 이런 맥락과 닿아 있다.
 
경쟁사에 없는 80년대생 임원 쓰는 정유경, 신세계에 '이명희 DNA' 잇는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총괄회장(사진)은 과거 신세계백화점을 경영할 때 ‘신뢰경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오너경영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정 회장의 어머니인 이명희 총괄회장에게서 내려오는 신세계만의 인사 스타일로 볼 여지도 있다.

정 회장은 이명희 총괄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많이 빼닮아 ‘리틀 이명희’로 불린다. 이명희 회장은 아버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가르침을 새겨 한 번 사람을 믿으면 전적으로 신뢰하고 맡기는 모습을 보여준 것으로 유명하다.

실력만 있다면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하고 그가 역할을 주도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이명희 회장의 스타일을 놓고 ‘신뢰경영’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 있다.

실제로 이명희 총괄회장은 1990년대 신세계백화점 상무로 재직할 당시 한 인물을 파격적으로 발탁해 주목받기도 했다.

이 총괄회장은 1992년 신입사원 입사면접을 볼 때 미국 이스턴미시간대학교 출신 유학파인 한 여성 직원을 주목했다. 영어실력이 탁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총괄회장은 이 직원의 전공이 패션머천다이징이라는 점에 착안해 당시 신세계백화점이 국내 최초로 선보인 회원제할인점 프라이스클럽의 의류구매담당 바이어로 발탁했다. 통상 매장 근무를 거치게 한 뒤 구매전문 담당자로 배치했던 관례를 깨는 인사였다.

‘백화점의 꽃’이라고 불리는 바이어는 대부분 남자가 맡는다는 인식을 무너뜨렸을 뿐만 아니라 당시 이 직원의 나이가 20대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젊더라도 능력이 있으면 믿고 쓴다’는 이 총괄회장의 인사 스타일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여성 직원은 1998년 코스트코코리아로 이직해 비식품부 부사장까지 지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