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롯데그룹 계열사들이 사외이사로 현장 경험이 풍부한 업계 전문가를 사외이사로 활발히 영입하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사진)의 변화 의지가 계열사 사외이사진 변화로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의지와 무관하지 않은 흐름이라는 것이 재계의 시각이다. 위기라는 평가를 받는 롯데그룹이 살 길을 찾으려면 계열사 이사회의 전문성부터 강화해야 한다는 판단이 선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10일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가 공시한 주주총회소집결의를 살펴보면 과거 롯데그룹의 행보와 상당히 결이 다른 지점이 하나 보인다. 바로 사외이사 선임 관련 안건이다.
롯데그룹은 국내 재벌그룹 대부분이 그랬던 것처럼 학계와 고위 관료 출신을 사외이사로 선호했다. 업계의 동향을 파악하기에 교수와 같은 학계 출신만한 사람을 찾기 힘들고 관료 출신은 사업이 어려울 때 대외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장점이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올해 양상은 과거와 매우 다르다. 롯데쇼핑은 새 사외이사로 3명을 선정하는데 모두 유통업계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인물들이다. 일본인 히로유키 카나이씨는 일본 색조화장품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1위 기업인 도기와의 최고경영자(CEO)다. 독일 종합생활용품 기업은 헨켈의 일본법인 대표도 지냈다.
조현근 전 풀무원샘물 대표이사는 필립모리스인터내셔널 아시아 총괄과 디아지오재팬 마케팅&신제품개발 임원, 디아지오아시아태평양 일본 대표이사 등을 역임한 인물로 담배와 주류, 식품 등 유통업과 밀접한 회사에서 경력을 쌓았다.
정창국 전 에코비트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재무 전문가인데 P&G 아시아본부 재무매니저를 거쳐 골프회사 아쿠쉬네트코리아와 ADT캡스, 에코비트 등에서 최고재무책임자를 역임했다.
롯데쇼핑 사외이사에서 물러나는 기존 인물들이 학계와 소비자업계 트렌드 전문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유통업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뛴 경험을 갖춘 유통업계 전문가들의 면면이 더욱 부각된다.
수익성이 흔들리고 있는 롯데칠성음료도 새 사외이사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롯데칠성음료는 다가오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새 사외이사로 2명을 뽑는데 이 가운데 1명은 경쟁기업인 CJ제일제당에서 식품사업부 상무와 베트남법인장을 지낸 박찬주 현 DKSH퍼포먼스머터리얼코리아 대표이사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새 사외이사로 교수만 2명 선임했던 것과 대비되는 행보다. 롯데칠성음료가 CJ그룹 출신 인물을 영입하는 것은 변화를 위해서라면 다른 대기업 출신 사람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롯데그룹 유동성 위기의 진원으로 꼽히는 롯데케미칼도 사외이사에 변화를 주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새 사외이사로 조혜성 전 LG에너지솔루션 기술연구원 분석센터장과 서휘원 전 삼양사 AM BU장을 선임하기로 했다.
조 센터장은 석유화학업계에서 최초로 여성 임원 승진 기록을 세운 인물로 LG에너지솔루션이 LG화학에서 분사하기 전부터 연구개발 분야의 전문가로 경력을 쌓았다. 서 전 삼양사 BU장 역시 사빅코리아 스페셜티제품 마케팅전략 담당 이사와 한국바스프 첨가제사업부문장 등을 거친 화학업계 전문가다.
롯데케미칼이 기초소재부문의 부진 탓에 3년 동안 내리 영업손실을 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기 위해 전문성을 갖춘 인물을 이사회 구성원으로 발탁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 롯데그룹 계열사의 사외이사진은 과거 학계나 고위 관료 출신으로 대부분 구성돼 있었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타워 전경. <롯데그룹>
롯데웰푸드는 인도 중심의 경영전략을 고도화하기 위한 차원에서 사외이사를 다양화하고 있다. 롯데웰푸드는 현대자동차 인도법인 대외협력담당 출신인 김도식 현 현대차 자문을 사외이사로 영입한다. 롯데웰푸드는 해외 사업에서 가장 성장세가 높은 인도에 더욱 집중하겠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는데 이런 전략을 고도화해줄 수 있는 인물로 김 자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물산에서 최고마케팅책임자와 CJ제일제당 식품마케팅본부장을 역임했던 손은경 전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도 롯데웰푸드의 새 사외이사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롯데쇼핑과 롯데칠성음료, 롯데케미칼, 롯데웰푸드 등 계열사의 기존 사외이사를 보면 검사와 변호사, 판사 등 법조인 출신뿐 아니라 국세청이나 감사원, 공정거래위원회와 같은 소위 ‘권력 기관’의 고위 관료를 지냈거나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인물이 대부분이었다.
올해는 예전과 다르게 업계 이해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영감각을 갖춘 인물이 대거 사외이사로 진입하는 것은 그만큼 신동빈 회장이 롯데그룹 계열사의 강도 높은 쇄신을 주문했기 때문이 아니겠냐는 말이 재계 안팎에서 나온다.
신 회장은 지난해 말 불거진 롯데그룹의 유동성 위기설과 관련해 논란을 종식하기 위해 그룹의 상징인 롯데월드타워를 금융권에 담보로 내거는 등 선제적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본업 경쟁력 강화 측면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시각이 많다.
신 회장이 인수합병을 통한 사세 확장이라는 과거의 경영 방식을 버리고 철저히 내실을 챙기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하는 것도 바로 이런 상황 때문이다.
신 회장은 롯데렌탈과 코리아세븐의 ATM사업부 등을 매각하며 소위 성장성이 낮은 사업에서는 손을 떼고 있으며 신사업이라고 하더라도 당장 성과를 내기 힘들다는 판단이 서면 과감히 철수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말 청산하기로 결정한 롯데헬스케어가 대표적 사례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