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현 CJ그룹 회장(왼쪽)이 허민회 CJ 경영지원 대표를 발탁한 것은 허 대표의 계열사 경험에 외부 시각을 종합해 CJ그룹의 미래를 그리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
[비즈니스포스트]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각 계열사 ‘해결사’ 역할을 한
허민회 대표를 CJ 경영지원 대표로 발탁하면서 체질 개선에 속도를 높이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허 대표는 재무와 전략에 능통한 인물로 소위 문제가 있거나 실적을 내기 힘든 계열사에 유독 많이 투입됐다. 오너일가가 그의 능력을 높게 사지 않았다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허 대표는 앞으로 CJ에서 대외 업무를 총괄하며 외부의 시각을 종합하는 역할을 맡게 됐는데 그동안 쌓은 계열사 경영 경험을 토대로 CJ그룹의 미래를 만드는 데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18일 실시된 CJ그룹의 정기 임원인사를 살펴보면
이재현 회장이 그룹 컨트롤타워인 CJ를 통해 중심을 잡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회장은 이번 인사에서 CJ의 변화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파악된다. 허 대표를 CJ 수장으로 발탁하면서 자연스럽게 공백이 된 CJCGV 대표이사 자리를 해외법인장 출신 인물로, CJENM에서 한동안 공석이던 커머스부문 대표를 내부 승진 인물로 채운 것을 빼면 다른 계열사에 큰 변화는 없다.
지주사는 각 계열사의 사업 현황이나 재무구조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종합해 볼 수 있는 자리다. 그 위상을 감안했을 때 지주사 수장에 새 사람을 발탁한다는 것은 그룹 전체의 방향성을 새로 정립하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이 자리에 허 대표를 발탁했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보인다.
허 대표는 CJ그룹에서 오너일가의 신뢰를 두텁게 받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허 대표는 2012년 3월 CJ푸드빌 대표이사에 선임됐지만 1년 반도 안 돼 CJ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CJ그룹은
이재현 회장의 구속에 따라 경영공백 상태를 마주하게 된 상태였다.
CJ그룹은 이 회장 구속 직후 지주사 CJ에 5인 체제의 그룹경영위원회를 발족했는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CJ로 옮긴 사람이 바로 허 대표였다.
이른바 ‘5인 그룹경영위원회’는
손경식 회장,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이채욱 당시 CJ대한통운 부회장, 이관훈 당시 CJ 사장, 김철하 당시 CJ제일제당 사장 등으로 구성됐다. 허 대표는 이관훈 사장 산하에 만들어진 경영총괄 자리를 맡아 사실상 CJ그룹의 안살림을 도맡았다.
허 대표의 당시 직급이 부사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룹경영위원회에서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는 것은 그만큼 그가 오너일가에게 적지 않은 믿음을 얻고 있다는 의미로 봐도 무방하다.
허 대표는 당시
이재현 회장이 내려놓은 CJE&M(현 CJENM), CJ오쇼핑(현 CJ온스타일), CJCGV 등의 등기이사 자리를 물려받기도 했다.
허 대표는 경영이 쉽지 않은 계열사에 유독 발령을 많이 받았던 전문경영인이기도 하다.
그는 총수의 2014년 말 CJ올리브네트웍스의 총괄대표로 선임됐으며 이후 CJ그룹 창조경제추진단장, CJ제일제당 경영지원총괄 등을 역임했다. 이후 CJ오쇼핑, CJENM 대표이사를 거쳐 2020년 말 CJCGV 대표이사를 맡았다.
허 대표가 거친 계열사를 살펴보면 사정이 괜찮았던 계열사는 한 곳도 없다.
CJ올리브네트웍스 대표를 맡은 것은 회사가 출범한 직후였다. 초대 대표를 맡았다는 뜻인데 두 회사의 합병으로 만들어진 회사를 안정화하는데 역량을 쓸 수밖에 없었다.
▲ 허민회 CJ 경영지원 대표는 유독 CJ그룹의 험한 계열사를 여럿 거친 전문경영인이다. 그만큼 오너일가의 신뢰를 두텁게 받고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
CJ오쇼핑도 쉽지 않았다. 허 대표가 CJ오쇼핑 수장에 올랐을 당시 CJ오쇼핑은 취급고 기준 홈쇼핑업계 4위로 추락한 탓에 기존 2명의 대표이사가 모두 임기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등 부침을 많이 겪었다.
CJENM에서는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자회사 스튜디오드래곤 지분 매각, 티빙 분사 등 굵직한 결정을 주도했으며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로 기업의 존폐 위기를 겪었던 CJCGV 수장에는 2020년 말 부임하기도 했다.
하지만 허 대표는 대부분 오너일가의 기대에 부응하는 성과를 냈다. 여러 차례 있었던 쇄신 인사 속에서도 자리를 지킨 이유다.
허 대표가 CJ에 복귀하는 것은 CJ올리브네트웍스 수장에 발탁돼 지주사를 떠난 2014년 12월 이후 10년 만의 일이다.
허 대표는 이번 인사를 통해 CJ의 경영지원 대표로서 대외 업무를 총괄하게 됐다. 준법경영 관련 업무를 처리하는 컴플라이언스 조직과 홍보 조직 등이 그의 산하에 배치된다.
허 대표의 이력을 봤을 때 사업적 역량을 발휘하는 것과 다소 동떨어진 역할이 부여된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히려 사업적으로 충분한 경험을 갖춘 인물을 대외 업무 총괄이라는 자리에 발탁함으로써 CJ그룹이 방향을 잡는 데 더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CJ그룹의 컨트롤타워인 CJ에서는 사업적 역량도 중요하지만 외부 경영 환경의 변화를 면밀하게 살피는 일도 매우 중요한 능력으로 평가받는다. 내부 문제에만 몰두하기 보다 외부인의 시각에서 사업을 보고 전체 방향을 잡는 일을 필수적으로 요구받는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지주사와 IT(정보기술)·홈쇼핑·엔터테인먼트 계열사 등을 두루 거친 허 대표의 이력은 상당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
CJ그룹 관계자는 “허 대표는 앞으로 그룹 내부와 외부의 시각을 종합해 CJ그룹이 나아갈 방향을 정립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