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이 지난해 5대 금융지주 순이익 순위에서 우리금융지주를 다시 한번 제쳤다.
손 회장은 우리금융지주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농협중앙회의 유상증자 1조 원을 종잣돈 삼아 비은행 계열사인 NH농협캐피탈과 NH농협생명, NH손해보험 등의 경쟁력 강화에 힘을 쏟을 것으로 예상된다.
20일 금융권 실적을 종합해 보면 NH농협금융지주는 지난해 순이익 순위에서 우리금융지주를 제치고 4위를 차지했다.
금융지주 순위 경쟁은 국내 금융권의 ‘리딩뱅크’ 자리를 놓고 벌이는 자존심 싸움이다.
금융지주 순위 경쟁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금융당국과 간담회 등 공식 행사 등에서 지주회장의 의전서열 등에 영향을 준다.
금융지주별 2021년 연결기준 순이익을 보면 KB금융지주 4조4096억 원, 신한금융지주 4조193억 원, 하나금융지주 3조5261억 원, NH농협금융지주 2조6034억 원(농업지원사업비 부담 전 순이익), 우리금융지주 2조5897억 원 등이다.
NH농협금융지주 관계자는 “농업과 농촌을 지원하기 위한 농업지원사업비 등을 고려했을 때 농협금융은 다른 금융그룹 수준의 성과를 거뒀다”고 설명했다.
NH농협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는 금융지주 순이익 4위 자리를 놓고 그동안 엎치락뒤치락했다.
우리금융지주는 지주사로 전환한 첫해인 2019년 순이익 1조8720억 원을 내면서 4위에 올랐다. 2020년에는 NH농협금융지주가 역전에 성공해 우리금융지주를 제치고 4위를 차지했다.
손 회장은 우리금융지주와의 격차를 벌리기 위해서 비은행 계열사에 관한 투자에 공을 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NH농협금융지주는 NH농협은행에 편중된 수익 구조와 비은행부문에서 NH투자증권 의존도가 높은 것이 약점으로 꼽혀왔다.
지난해 NH농협금융지주 실적을 살펴봐도 전체 순이익에서 NH농협은행의 비중은 65.4%에 이르고 비은행 계열사에서도 NH투자증권의 비중도 18.3%에 달했다.
게다가 경쟁사인 우리금융지주가 증권사와 벤처캐피탈 등의 인수합병(M&A)을 통해 비은행부문의 경쟁력을 키우려는 점도 손 회장에게는 비은행 계열사를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금융업계는 NH농협금융지주가 우리금융지주와의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우리금융지주가 2014년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을 NH농협금융지주에 매각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이에 우리금융지주가 인수합병으로 비은행부문을 강화하는 데 성공한다면 NH농협금융지주는 다시 금융지주 순위 역전을 허용할 수도 있는 셈이다.
손 회장은 비은행 계열사의 사업영역별 특성에 맞춰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힘쓰고 있다.
NH농협생명과 NH손해보험 등 보험계열사는 수익성이 좋은 보장성보험 판매에 집중하고 NH아문디자산운용, NH농협리츠운용, NH벤처투자는 투자상품을 중심으로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을 마련해놨다.
올해 농협중앙회로부터 지원받는 1조1121억 원 규모의 자금은 손 회장이 비은행 계열사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NH농협금융지주는 지난해 12월 이사회를 통해 농협중앙회가 출자금 전액을 부담하는 1조1121억 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NH농협금융지주는 이번 유상증자로 조달한 자금을 자회사에 배분해 자본을 확충하는 데 활용한다는 방침을 세워뒀다.
NH농협캐피탈은 자동차금융에서 디지털을 활용한 비대면 영업채널을 확대하고 기업금융의 업무프로세스를 강화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수혈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NH농협생명과 NH손해보험은 2023년 새 국제보험회계기준(IFRS17)의 도입을 앞두고 있어 자본확충으로 지급여력비율(RBC)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급여력비율은 보험사가 가입자에게 보험금을 제때 지급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고객들이 보험사를 선택할 때 영향을 줄 수 있다.
지난해 9월 기준으로 NH농협생명의 지급여력비율은 222.7%(생명보험사 평균 261.8%), NH손해보험은 192%(화재보험사 평균 241.2%)로 업계 평균을 밑돌고 있다.
손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올해 농협금융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중앙회로부터 자금을 출자받게 된다”며 “농협금융 계열사는 자본확충을 통한 질적 성장으로 시장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승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