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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이 다시 반도체사업의 꿈을 꾸는가? 구 부회장이 최근 시스템 반도체사업에 힘을 싣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업계는 구 부회장이 1999년 ‘빅딜’ 이후 포기한 반도체사업을 다시 부활시킬지 주목하고 있다.
21일 LG전자 등에 따르면 구 부회장은 기술협력을 위해 일본의 한 반도체 업체를 방문했다. 구 부회장은 ‘전력관리 반도체(PMIC)’사업을 본격 추진하기 위해 일본기업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력관리 반도체는 모바일기기와 디스플레이,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에 쓰이는 핵심 시스템반도체다. 구 부회장이 방문한 일본기업은 이 분야에서 손꼽히는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LG그룹의 공식입장은 반도체사업에 뛰어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LG 관계자는 “구 부회장이 일본을 방문한 것은 기술이전을 협의하기 위한 것이 아닌 통상적 협력을 위한 것”이라라고 말했다. 따라서 업계는 LG전자가 전력관리 반도체사업을 추진한다고 해도 직접 생산에 뛰어들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업계 관계자들은 LG전자가 ‘팹리스(Fabless)’ 사업에 진출할 가능성은 높다고 보고 있다. 팹리스는 자체 생산시설 없이 반도체 소자의 설계와 개발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를 말한다. 삼성과 같이 설계에서 생산까지 전 과정을 수행하는 종합반도체회사(IDM)나 TSMC사처럼 생산만을 전문적으로 맡는 위탁 생산 업체인 파운드리회사(foundry company)와 구분된다. 대표적 팹리스 회사로 미국의 퀄컴(Qualcomm)이 있다.
LG전자는 2011년 서울 양재동에 ‘시스템 IC연구소’를 세워 시스템반도체 핵심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또 경기도 안양에 ‘차세대 통신연구소’를 운영하며 4세대 LTE 통신기술과 5세대 무선통신기술을 연구개발하고 있다. LG전자의 이런 행보는 LG전자의 팹리스사업 진출 가능성을 점치게 한다.
구 부회장은 시스템반도체 사업에 남다른 애정을 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 부회장은 LG반도체가 현대그룹으로 넘어가기 직전인 1998년까지 LG반도체 대표를 맡았다. 이러한 경력 때문에 반도체 등 기초 부품 기술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구 부회장이 시스템반도체 사업에 관심을 갖는 까닭은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물인터넷과 스마트카 사업이 본격화됨에 따라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와 스마트폰용 모뎀칩, 센서, LED용 칩 등 시스템반도체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근 시스템반도체 등 비메모리사업 강화를 주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LG전자는 이미 스마트TV에 탑재되는 자체 AP 개발은 성공한 상태다. LG전자는 원래 세계적 반도체기업인 브로드컴으로부터 ‘밉스(MIPS)’란 AP를 공급받았다. 하지만 2012년부터 스마트TV에 자체 개발한 AP를 넣었으며 지난해부터 독자적 쿼드코어 AP를 탑재하고 있다.
LG전자는 최근 모바일 AP 독자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구 부회장은 기초 기술 역량을 가져야 완성품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하며 모바일 AP 개발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LG전자는 2012년부터 ‘오딘’이란 모바일 AP를 개발해왔다.
오딘 개발은 송상원 LG전자 시스템 IC연구소 최고기술경영자(CTO)겸 상무가 책임지고 있다. 송 상무는 세계적 반도체 제조회사인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에서 ‘오맵(OMAP)’이란 자체 AP 개발을 주도했다. 지난해 초 LG전자에 영입됐다. LG전자는 대만의 위탁 생산 업체인 TSMC와 손잡고 올해 2분기에 독자 모바일 AP 양산을 시작한다.
구 부회장이 독자 모바일 AP 개발을 지시한 것은 우선 퀄컴에 대한 부품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대책으로 분석된다. LG전자는 애플이나 삼성전자와 달리 독자적인 모바일 AP가 없다. 이 때문에 안정적 부품조달 능력과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또 자체 모바일 AP는 소프트웨어 성능 최적화를 위해 필수라는 분석도 나온다.
LG전자가 본격적으로 반도체 설계와 개발사업에 뛰어들면서 LG그룹이 사실상 반도체사업을 다시 시작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LG계열사인 LG실트론은 구미공장에서 반도체 기판인 웨이퍼를 생산하고 있다. LG실트론은 국내 웨이퍼 생산 1위 업체다.
LG이노텍은 LED칩 생산과 포장에 이르는 모든 생산 설비를 갖추고 있다. 이밖에도 국내 팹리스 업계 1위인 ‘실리콘웍스’와 LCD 구동 드라이버 칩을 생산하는 ‘루셈’도 LG전자에 시스템반도체를 생산해 제공하고 있다.
LG그룹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에서 강력하게 추진된 ‘빅딜’ 정책에 따라 LG반도체 사업부를 현대전자에 넘겼다. 당시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반도체는 선친이 물려주신 사업”이라며 쉽게 포기할 수 없다고 버텼다.
LG반도체 사장이었던 구본준 부회장도 정부의 합병 요구를 인정할 수 없다고 맞서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정부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반도체사업을 포기했다. 현대전자는 2001년 하이닉스로 회사이름을 변경했고 2012년 SK로 넘어가 현재 SK하이닉스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