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현(64) 만도 대표이사 부회장이 연임가도에서 암초를 만났다.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공식적으로 신 대표의 재선임 반대를 공언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만도가 한라 유상증자에 참여해 주주권익을 훼손했다고 보고 있다. 이번 일은 국민연금이 앞으로 의결권을 강화하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특히 주총 시즌을 맞이해 국민연금의 향후 움직임에 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민연금, 신사현 만도 부회장 연임 반대  
▲ 신사현 만도 대표이사
6일 열린 ‘국민연금기금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에서 국민연금은 7일 만도 주총에 참여해 신 대표이사 재선임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결정했다. 국민연금은 만도 지분 13.41%를 소유한 2대 주주다.


국민연금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만도의 한라 유상증자 참여 때문이다. 지난해 4월 만도는 자회사인 마이스터를 경유해 모기업인 한라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당시 기존 주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만도는 100% 비상장 자회사인 마이스터에 3786억 원 규모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공식적 이유는 물류 인프라 강화와 신사업 전개였다. 그러나 마이스터는 유상증자의 대부분인 3385억 원을 한라 유상증자에 썼다. 마이스터는 주식회사가 아닌 유한회사이기 때문에 상법에 열거된 상호주식 의결권 행사 금지 규정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국민연금은 한라 유상증자로 인해 만도의 장기적 기업 가치가 훼손되고 주주 권익이 침해됐다고 보고 있다. 이는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의결권 행사 세부 기준상 대표이사 선임 반대 이유에 해당한한다. 총 8명의 위원 중 이날 회의에 참석한 6명은 “(만도의 유상증자 참여는) 부실 모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며 당시 결정을 내린 신 대표이사의 책임을 지적했다.


기업들은 국민연금의 이번 결정에 긴장하고 있다. 소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던 예전과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그동안 ‘주총 거수기’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갖고 있었다.


경제개혁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2008년 국민연금의 의결권 반대 비율은 5.4%에 불과했다. 2009년 6.59%, 2010년 8.08%로 조금씩 상승했으나 2011년엔 7.03%로 오히려 떨어졌다. 2012년 2월엔 최태원 SK 회장의 하이닉스 대표이사 선임을 놓고 당시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 중립을 택하면서 ‘재벌 봐주기’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때문에 국민연금의 의결권은 정부 안에서도 화두였다. 박근혜 정부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주요 추진과제로 국민연금 의결권 강화를 제시했다. 이에 힘입어 국민연금의 의결권 반대는 2012년 기준으로 전체 중 17%로 대폭 증가했다. 지난해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롯데쇼핑 이사 선임에 반대한 것을 필두로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과 조양호 한진 회장의 이사 선임에 반대투표를 했다.


의결권 행사 지침도 기업견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개정됐다. 이를 통해 올해 2월부터 특정 기업 사외이사 선임에 의결권을 행사하는 이사회 참석률 기준이 기존 60%에서 75%로 상향됐다. 계열사를 포함해서 한 기업에서 최대 10년 이상 재직한 사외이사 선임에도 반대의결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다만 횡령과 배임혐의를 받은 임원에 대한 반대 의결권 행사 논의는 오는 5월로 보류됐다.


국민연금 지분 비중이 높은 일부 기업은 국민연금의 이런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민연금이 단일주주로는 최대주주인 삼성물산과 LG상사 등 일부 기업의 경우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를 강화하면 경영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가진 기업은 130개가 넘는다. 10% 이상인 기업도 삼성물산·제일모직·LG상사·CJ제일제당·SKC 등 20여 개나 된다. 전체 투자 금액만 약 60조 원이다. 국민연금이 대주주 반대파와 연합할 경우 기업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당장 국민연금의 뜻대로 신 대표이사가 재선임되지 않을 확률은 낮다. 대주주인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 및 한라 자체 지분이 27%를 넘기 때문이다. 신 대표이사의 연임을 반대하는 주주도 국민연금 뿐이다. 업계는 신 대표이사가 무리 없이 연임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공식적으로 제동을 건 이상 만도가 더 이상 한라를 지원하기는 힘들 것이란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일단 신 대표이사 측은 국민연금의 반대 의결권 행사의 근거를 반박하고 나섰다. 지원 과정에 문제가 있더라도 결과적으로 한라가 회생해 만도의 주가가 상승했다는 주장이다. 당시 만도의 주가는 9만9500원이었지만 현재는 약 13만 원으로 30% 이상 오른 상태다. 한라그룹 관계자는 “당시 만도는 한라 리스크에 발목이 잡혀 있었다”며 유상증자 결정으로 리스크가 해소돼 주가가 정상화됐다. 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