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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금융 회장으로 내정된 윤종규 전 KB금융 부사장 |
KB금융지주 회장 선출과정은 금융지주체제의 앞날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줬다.
KB금융사태가 금융지주체제의 한계를 그대로 확인했다면 이번 회장 선출과정은 경영권을 창출하는데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줬다. 또 금융지주체제의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광범위한 합의도 이끌어냈다.
KB금융 회장 선출은 그동안의 밀실인선에서 벗어났다. 후보들의 명단이 공개돼 사실상 인사검증이 이뤄졌다.
물론 이 과정에서 노조의 입김이 너무 강하게 들어갔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하지만 그동안의 폐쇄성에서 벗어났다는 점은 큰 성과다.
KB금융사태을 겪으면서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의 갈등을 제거할 수 있는 방안들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나왔다. 일단 KB금융지주는 회장을 선출한 뒤 회장에게 은행장 겸임 등에 대한 의견을 구해 결정하기로 했다.
금융당국은 이번 KB금융사태를 계기로 금융지주체제 지배구조 개선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들은 당장 다른 금융지주들에게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하나금융지주는 내년 3월 현 김정태 회장의 임기를 끝내고 새로운 회장을 뽑아야 한다.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은 회장 선출방식을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 공개적으로 진행된 KB금융 회장 선출
KB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KB금융 회장 최종후보 면접일정을 비롯해 장소와 방식도 모두 공개했다.
KB금융 회추위가 최종 회장후보 인선과정을 모두 공개하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회추위가 면접장소와 시간을 미리 밝힌 것은 이례적”이라며 “회장후보 인선이 투명하게 이뤄졌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KB금융 회추위는 이번 회장후보 인선과정 초기부터 계속 투명성을 강조했다. 김영진 KB금융 회추위 위원장은 당시 “1차와 2차 회장후보군은 각 후보들이 동의할 경우 누구인지 공개하겠다”며 “회장후보로 뽑힌 인사가 과다한 지지활동을 펼칠 경우 불이익을 주겠다”고 밝혔다.
KB금융 회추위는 회장후보를 공개하면서 그 과정에서 외부의 의견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동안 배제됐던 주주와 KB금융 직원들의 의사를 묻고 여론을 통한 검증도 시도했다.
김 위원장이 지난 2일 회의 전 KB금융 최대주주인 국민연금관리공단과 KB국민은행 노동조합 관계자를 만나 회장후보 선정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김 위원장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KB금융 회장선임에 책임감을 느낀다”며 “회추위원들이 각자 판단하는 부분을 모아 최적의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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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왼쪽)과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 <뉴시스> |
◆ KB금융지주 방식이 신한금융과 하나금융에 영향 줄까
KB금융 회장은 초대 황영기 전 회장 시절부터 사외이사 9명으로 구성된 회추위가 내부 추천과 외부 헤드헌팅회사의 추천을 받은 후보들을 토대로 면접을 통해 선임하는 방식으로 선출됐다. 이런 과정은 모두 비공개로 운영됐다. 그러다 보니 낙하산, 관피아 등의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김 위원장은 “KB금융 회장선출은 그동안 밀실논란과 사외이사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며 “이번에 최대한 공정하고 투명한 방식으로 회장 선출절차를 명확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KB금융의 회장 인선과정 공개가 이전의 폐쇄적 방식에서 진일보한 부분이 있다고 평가한다. 나아가 회장 선임방식을 개선하겠다고 밝힌 신한금융과 다음해 3월 회장 인선을 앞둔 하나금융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린다.
신한금융과 하나금융은 장기집권한 전 회장의 자리를 내부인사가 이어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KB금융보다 상대적으로 ‘낙하산 논란’에서 자유롭다. 그러나 폐쇄적 선출방식 때문에 현직 프리미엄이 강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어 앞으로 변화가 주목된다.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은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연임에 성공한 뒤 회장 선출방식을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방식이 지나치게 ‘현직 프리미엄’이 크며 만 67세 미만인 CEO 선임가능 나이도 불합리하다는 지적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 회장은 2011년 2월 처음 회장이 된 뒤 현직 회장과 사외이사 5명으로 구성된 회추위를 만들었다. 회장은 다음 임기에 도전할 경우 회추위에서 빠진다. 20년 동안 연임했던 라응찬 전 회장 같은 사례를 막기 위해 회장이 되려면 만 67세 미만이어야 한다는 제한도 걸었다.
하지만 회추위를 구성하는 사외이사들과 한 회장의 친분이 공정한 경쟁을 막는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지난해 회장 인선에서 한 회장과 경쟁했던 이동걸 전 신한금융투자 부회장은 “한 회장은 3년 이상 회추위원들과 소통했으나 다른 후보들은 30분짜리 인터뷰 기회만 얻었다”며 “신한금융 회장 선임과정에 절차의 공정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밝혔다.
신한금융 퇴직임직원 모임인 ‘신한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임’은 한 회장이 만 67세 이상의 전직 임원들이 회장후보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나이제한을 걸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당시 후보로 거명되던 이인호 전 신한금융 사장 등이 만 67세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하나금융도 현직 회장과 사외이사 6명이 회추위를 구성한다. 신한금융과 마찬가지로 회장은 연임 의사를 밝힐 경우 회추위에서 빠진다. 회장 나이를 만 70세로 제한하는 점도 비슷하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이사회 내의 경영발전보상위원회가 관할하는 경영평가 승계 프로그램을 통해 선출된 첫번째 회장이다. 그는 16년 동안 CEO로 일했던 김승유 전 회장의 뒤를 이어 2012년 3월 선임됐다.
김 회장은 지난 3월 사내이사 수를 1명으로 줄이고 사외이사 8명 중 4명을 교체했다. 4월에 3년 회장 재임 후 임기를 1년씩 연장하던 기존 제도를 3년 동안 더 이어서 일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하나금융 안팎에서 이를 놓고 김 회장이 연임을 준비한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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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재 KB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이 22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 KB금융 본점에서 열린 KB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뉴시스> |
◆ KB금융 회장은 국민은행장 겸임할까
윤 전 부사장이 KB금융 신임 회장으로 내정되면서 KB국민은행장 겸임도 주목된다.
KB금융 회추위는 지난달 26일 회의에서 신임회장이 결정된 뒤 은행장 겸임에 대한 선택권을 부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김 위원장은 당시 “일단 훌륭한 회장을 뽑은 뒤 어떤 지배구조가 좋은지 협의해서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전 부사장은 이에 관해 뚜렷한 의사를 내놓지 않았다. 그는 “은행장 겸임은 제도보다 운영에 달렸다고 본다”며 “지금의 상황과 여건에서 어떤 운영체계가 KB금융에게 도움이 되는지 이사회와 의논하겠다”고 밝혔다.
KB금융 안에서 지주 회장의 은행장 겸임을 놓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은행 노조는 공개적으로 내부출신 회장이 은행장을 겸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일부 회추위원들은 LIG손해보험 인수 등 비은행계열사의 비중을 늘리려면 회장과 은행장은 따로 선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겸임을 찬성하는 쪽은 KB금융사태의 근본적 원인이 임 전 회장과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 간에 벌어진 알력다툼이었다는 점을 든다. KB금융은 설립초기에도 황 전 회장과 강 전 행장의 갈등을 겪었다.
KB금융 관계자는 “한 집안에 권력자 둘이 같이 있는 것이어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지주회사 회장이 은행장을 함께 맡는 것이 차라리 더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겸임을 반대하는 쪽은 지주회사 회장이 은행장까지 맡을 경우 보험이나 증권 등 다른 계열사의 존재가치가 줄어든다는 점을 우려했다. 다양한 금융사업을 해야 하는 금융지주체제 본래 목적에도 어긋난다는 것이다.
KB금융 회추위 관계자는 “KB금융 사태는 체제가 아닌 운영의 문제”라며 “KB금융 회장이 국민은행장을 겸임하면 국민은행에 지나치게 비중이 쏠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회장-은행장 겸임 놓고 고민하는 금융지주사
대부분의 금융지주사 내에서 은행의 비중은 60~90%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KB금융 회장이 은행장을 겸임할 경우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변화를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KB금융 총자산 가운데 국민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75.7%였다. 하나금융은 KB금융을 앞질러 하나은행의 비중이 전체의 87.7%에 이르렀다. 가장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보유했다고 평가받는 신한금융도 신한은행 자산이 68.3% 수준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금융지주사는 은행 위주였던 국내 금융회사의 글로벌시장 진출 및 몸집 불리기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며 “현재 성과는 미진하고 내분이 심해지고 있는 만큼 어떤 식으로든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지주사 회장이 은행장을 겸직하는 금융지주사는 모두 7곳이다. 그러나 모두 외국계이거나 지방 기반, 혹은 특수한 사정을 지닌 곳이라 KB금융과 단순하게 비교하기 힘들다. 이 가운데 4곳은 올해 안으로 은행에 통합될 예정이거나 통합될 가능성이 높다.
홍기택 KDB금융지주 회장 겸 KDB산업은행장은 대표적 정책금융기관을 이끌고 있다. 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도 우리금융 민영화를 책임진다는 명목으로 겸임을 선택했다. 우리금융은 우리은행에 흡수합병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KDB금융도 산업은행이 다음해 정책금융공사와 통합되면서 올해 말 없어질 예정이다.
하영구 한국씨티금융지주 회장 겸 한국씨티은행장과 아제이 칸왈 한국SC금융지주 회장 겸 한국SC은행장은 외국계 금융지주사의 수장이다. 한국씨티금융은 오는 31일 씨티은행에 통합되고 한국SC금융도 올해 안에 은행과 통합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질적으로 은행장을 겸직하는 금융지주사 회장은 박인규 DGB금융지주 회장 겸 대구은행장, 성세환 BS금융지주 회장 겸 부산은행장, 김한 JB금융지주 회장 겸 광주은행장뿐이다. 3명 모두 지방은행 기반의 금융지주사 회장이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KB금융의 경우 한동안 회장이 은행장을 겸임하다 경영상태가 좋아지면 다시 분리하는 방안도 선택할 수 있다”며 “다른 금융지주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금융당국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제윤 금융위원회 위원장도 15일 국정감사에서 금융지주사 회장과 행장 겸임문제에 관해 “각 금융지주사의 문화와 역사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라 일괄적용이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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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제윤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뉴시스> |
◆ 속도내는 지주사 지배구조 개선방안
KB금융사태는 현재 금융지주사 지배구조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드러낸 사례로 평가받는다. 금융당국은 이번 신임회장 선출을 계기로 금융지주사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내놓고 있다.
신 금융위원장은 15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부가 금융지주사 지배구조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뒤 세부적인 부분을 금융지주사가 구성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정부나 국회에서 큰 틀을 정하고 자세한 부분은 각 금융지주사 이사회나 주주총회에서 정리해야 한다”며 “금융지주사 내규에 지배구조 관련 내용이 제대로 반영됐는지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금융권 관계자들도 신 금융위원장의 발언에 대체적으로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금융지주사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원론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 금융지주사가 그에 맞춰 자체적으로 지배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KB금융사태가 수습국면에 들어간 지난달 말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규준을 조만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이 모범규준은 금융지주사 회장 및 사외이사의 선임과정을 투명화하고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6월 금융업계 종사자 및 학자와 시민단체를 아울러 함께 만든 ‘금융회사 지배구조 선진화방안’의 내용을 기반으로 모범규준을 만들었다.
선진화방안에 금융지주사 사외이사의 보수를 활동내역에 따라 지급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사외이사 개인의 활동내역과 보수도 공시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주로 학자인 사외이사의 다양성을 늘리기 위해 금융위원회와 금융지주사가 공동 예비인력집단을 만드는 것도 포함됐다.
금융위원회는 모범규준에 매년 금융지주사 이사회를 재신임평가하고 2년마다 외부평가를 받도록 권고하는 내용을 추가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금융지주사는 CEO 선정 때 선임절차와 원칙을 미리 정해 공개하고 자격기준과 후보추천절차도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한다.
신 금융위원장도 국정감사에서 “빠른 시일 내로 금융지주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말 모범규준을 완성했으나 국회에서 지배구조법이 논의되고 있어 발표를 늦췄다"며 ”법률에 근거하려 했으나 KB금융 사태가 터진 만큼 빨리 발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2012년 6월 국회에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안’(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을 상정했다. 그러나 제2금융권 대주주 적격성 문제를 놓고 여당과 야당의 입장이 갈리면서 2년간 계류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KB금융 사태를 계기로 금융위는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의 연내 국회통과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 관계자는 “다음해부터 적용될 수 있도록 국회에서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통과를 우선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