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강력한 일자리 창출 의지를 내보이면서 최근 인력과 영업점을 줄여오던 시중은행들이 난감한 상황이 빠졌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1호 업무지시로 일자리위원회를 신설하고 직접 위원장을 맡으면서 일자리 창출에 힘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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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열린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를 마친 뒤 참석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새 정부는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과 비정규직 철폐를 첫 목표로 삼고 있는 만큼 민간부문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일자리 공약으로 △1천명 이상 민간 대기업의 청년 5% 이상 의무 채용 △희망퇴직남용방지법 제정 등도 내놓았다.
문제는 새 정부가 최우선 국정과제로 일자리 창출을 앞세우고 있는 만큼 시중은행들도 동참해야 하지만 여건상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시중은행들은 모바일은행 및 인터넷뱅킹의 비중이 점차 커지는 데 발맞춰 인력과 영업점을 꾸준히 줄이고 있다. 시중은행들이 최근 내놓는 금융상품의 경우 비대면채널을 통한 계좌개설 및 상품가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55%~94%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권 직원 수는 지난해 말 11만4775명으로 2015년 말보다 2248명 줄었다.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 신한은행, KEB하나은행, 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영업점 수는 지난해 말 기준 4919곳으로 2015년보다 177곳 줄었다.
KB국민은행이 올해 초 2795명을 희망퇴직 시켰고 한국씨티은행이 영업점 100여 곳을 줄이기로 하는 등 올해도 인력 및 영업점 구조조정은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의 일자리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시중은행들은 더 이상 대규모 희망퇴직을 실시하거나 영업점을 축소하기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공약에 따른 법적 제한이 당장 이뤄지지 않더라도 정부로부터 각종 규제 및 허가를 받는 금융회사의 특성상 정부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다만 인건비 등 판매관리비가 국내은행의 수익성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점 때문에 정부의 정책에 따라 신규 채용을 늘리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이 발표한 ‘은행그룹의 비용구조가 경영성과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은행의 인건비 증가율은 총이익 증가율을 웃돌고 있다. 10년 동안(2005년~2015년) 국내은행의 연평균 인건비 증가율은 3.9%로 은행의 이익증가율인 1.9%보다 높다.
시중은행들이 지난해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기 위해 애쓴 이유이기도 하다.
아직 새 정부의 경제팀과 경제수장이 정해지지 않은 데다 구체적인 정책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대부분 시중은행들은 올해 채용계획을 미루며 눈치를 살피고 있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상반기 채용계획을 내놓았지만 일반직이 아닌 입출금 창구업무 직원만 뽑기로 했다. KB국민은행과 KEB하나은행 등은 아직 상반기 채용계획을 내놓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비정규직을 없애겠다고 선언한 점도 시중은행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시중은행 대부분은 비정규직 직원이 거의 없는 상황이지만 정규직 직원의 20~40%가 무기계약직 직원이거나 ‘준정규직’이라는 별도의 직군을 만들어 임금과 승진에 차별을 두고 있다.
문 대통령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뿐 아니라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이들의 처우개선을 놓고 시중은행들의 부담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한국씨티은행과 기업은행은 각각 무기계약직을 포함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최석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