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웨스턴디지털이 일본 도시바의 반도체 매각을 놓고 협상에 실패하자 강도높은 법적대응을 예고했다. 매각절차가 차질을 빚으며 무기한 연장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SK하이닉스가 도시바 반도체사업을 인수할 가능성은 불투명해졌지만 웨스턴디지털과 도시바가 낸드플래시사업에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
|
|
▲ 스티브 멀리건 웨스턴디지털 CEO. |
웨스턴디지털은 14일 공식성명을 내고 “도시바와 반도체사업 매각에 관련한 협상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다”며 “권리를 되찾기 위해 법적절차를 거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고 밝혔다.
도시바가 경영난을 해결하기 위해 반도체사업을 분사한 뒤 매각에 나서자 웨스턴디지털은 도시바와 합작법인 설립계약을 들어 이를 강력하게 반대했다. 웨스턴디지털의 동의 없이 도시바가 반도체사업을 외부업체에 매각하는 것이 계약위반이라는 것이다.
도시바는 이후 매각절차를 일시중단하고 웨스턴디지털과 입장차를 좁히기 위해 별도 협상을 진행했다. 하지만 결국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웨스턴디지털은 “도시바의 꾸준한 발전을 위해 웨스턴디지털이 최적의 파트너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수전에서 승산을 높이기 위해 적극적인 견제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도시바는 웨스턴디지털이 제안한 인수금액이 비교적 낮다는 이유로 매각을 꺼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시바 반도체 인수전에는 이외에 대만 홍하이그룹, SK하이닉스와 미국 실버레이크-브로드컴 컨소시엄 등이 뛰어들었다.
웨스턴디지털은 국제상업회의소(ICC)에 이 문제를 놓고 중재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웨스턴디지털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도시바는 다른 업체에 반도체사업을 매각할 수 없게 된다.
SK하이닉스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까지 직접 나설 정도로 도시바 반도체사업 인수에 공을 들이고 있다. 웨스턴디지털의 주장이 힘을 얻을 경우 이런 노력은 모두 물거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이번 사태가 SK하이닉스의 낸드플래시사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도시바는 반도체사업 매각절차가 법적분쟁으로 지연될 경우 연구개발과 시설투자에 사용할 자금여력을 확보할 수 없어 낸드플래시시장에서 지배력을 잃을 수 있다.
|
|
|
▲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 |
도시바는 웨스턴디지털과 공동운영하는 낸드플래시 합작생산공장에 웨스턴디지털 직원들의 출입을 금지하는 계획까지 검토하며 강력히 맞서고 있다. 웨스턴디지털도 법적분쟁이 이어지는 동안 사업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도시바는 삼성전자에 이어 글로벌 낸드플래시 점유율 2위, 웨스턴디지털은 3위를 차지하고 있다. 4위인 SK하이닉스가 경쟁사들이 부진한 틈을 타 점유율을 빠르게 높일 기회를 만들 수 있다.
결국 웨스턴디지털이 도시바 반도체 인수에 성공하더라도 시장전체 판도에는 변화가 없고 인수금액 부담으로 향후 투자여력을 확보하기도 어려울 것으로 예상돼 SK하이닉스에는 긍정적인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도시바와 웨스턴디지털 사이의 갈등이 심해지며 인수전 결과를 더욱 예측하기 어렵게 됐다”며 “도시바가 성공적인 매각에 실패할 경우 시장경쟁력에 큰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