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환율이 걷잡을 수 없이 하락하고 있다.
정부는 지나친 엔저에 우려를 표현하고 있지만 뚜렷한 대책은 없다. 당장 엔저로 내년부터 우리나라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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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29일 “엔저 등 대외리스크를 면밀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며 최근 엔화 가치의 급격한 하락세를 경계했다.
이런 경계는 최 부총리뿐 아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12일 “엔화 환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할 것이 우려된다”며 “상황을 주의깊게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발언은 최근 엔화 환율이 위험수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29일 현재 엔화환율은 100엔 당 959.72원으로 한달 넘게 1천 원을 밑돌고 있다. 950원대 환율은 2008년 8월 이후 6년만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환율보다 체감하는 실질적 엔화가치 하락폭은 더 크다. 상대적 물가변동을 반영한 실질실효환율은 2010년을 100이라 했을 때 73까지 현저하게 떨어졌다. 이는 1982년 이후 32년 만에 최저수준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급격한 하락세뿐 아니라 엔화약세 현상은 2012년 9월 무렵부터 2년째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여기가 엔화환율의 바닥이 아니라는 점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엔화환율이 더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미국은 양적완화를 종료하지만 일본은 지속적인 ‘윤전기 정책’으로 시중에 엔화를 계속 공급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주요 은행들이 예상한 내년 4분기 원엔환율 평균은 870원이다. ING, 씨티, 모건스탠리가 모두 800원 중후반대 환율을 예상한 가운데 BNP파리바는 762원까지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엔화가치가 하락하면 일본 수출 감소로 인한 직접적 피해보다 국제시장에서 받는 간접적 타격이 더 크다. 일본과 우리나라는 주력 수출군이 겹치기 때문이다. 2010년 이후 엔화환율과 우리나라 수출은 양의 상관관계를 보인다. 엔화 가치가 오르면 수출이 늘고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수출이 감소한다는 의미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16일 국회 경제정책포럼에서 “엔화가치 하락으로 우리나라 수출 경쟁력이 저하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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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
신세돈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일본과 경합하는 품목이 5천억 달러 수출 중 적어도 500억~1천억 달러”라며 “엔저현상이 지속되면 6개월에서 2년 내로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정부 당국은 엔저환율에 뾰족한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원엔시장이 없어 직접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다. 원엔환율은 원달러환율과 엔달러환율을 통해 간접적으로 계산되는 재정환율이다.
최경환 부총리는 “원엔환율은 재정환율이기 때문에 정부가 할 수 있는게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환율은 원달러환율 뿐인데 이를 조절하면 미국 등 다른 국가의 반발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정책당국과 경제전문가들이 지난 26일 모여 엔저 대책을 논의했으나 뚜렷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기업들이 자금난에 대비해 환변동보험에 가입해야 한다는 것 정도가 고작이다. 이마저도 기업들이 환율변동 추이를 확신하지 못하고 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엔저가 유리한 부분도 있다. 엔화 채무가 많거나 원재료를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는 기업은 엔저의 수혜를 입는다. 대표적인 곳으로 포스코·롯데쇼핑·현대제철·가스공사·한국전력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