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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임종룡 금융위원장. |
정부가 추진하는 조선업계 구조조정은 과연 신뢰할 만한가?
정부는 조선업계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할 때마다 해외의 조선해운 분석기관의 시장전망을 근거로 삼았다.
하지만 시장전망의 특성상 미래의 환경변화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아 불확실성에 기댄 채 구조조정 방안을 내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 클락슨, 2018년 이후 발주시장 회복 더뎌질 가능성 제기
10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조선업계 구조조정 방안을 짤 때 해외기관의 분석을 토대로 시장환경을 진단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는 논란이 제기된다.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은 최근 전 세계 선박발주 시장의 회복속도가 더뎌질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내놓았다.
클락슨은 매년 3월과 9월에 전 세계 선박발주가 어떻게 될지를 가늠할 수 있는 선박발주 전망을 내놓는다. 클락슨이 3월에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이후 전 세계 선박발주 물량은 지난해 9월의 보고서보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클락슨은 지난해 9월에 2018년 발주량이 2950만CGT(가치환산톤수)에 이를 것으로 봤지만 최근에도 발주가 좀처럼 늘어나지 않자 새 보고서에서 이 전망치를 2560만CGT로 낮춰잡았다. 2019~2021년 발주량 전망도 기존 1억870만CGT보다 6.8% 줄어든 1억130만CGT로 축소했다.
클락슨의 전망대로 전 세계 선박발주 시장의 회복속도가 둔화할 경우 정부가 당장 조선업계 재편작업의 틀을 다시 짜야하는 상황에 몰리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업계 안팎에서 나온다.
정부는 3월 말에 대우조선해양에 추가자금 2조9천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결정하며 그 근거로 클락슨이 지난해 9월에 발표한 시장전망을 들었다. 클락슨은 당시 유례없는 수주가뭄을 겪고 있는 조선사들이 2018년부터는 업황회복에 힘입어 신규수주를 늘릴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정부는 이 전망을 토대로 “대우조선해양에 추가자금을 지원해 살리면 업황이 회복되는 2018년 상반기에는 매각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클락슨이 반년 만에 기존보다 보수적인 전망치를 발표하면서 정부가 세운 대책의 전제가 사실상 무너지게 됐다. 내년에도 수주가뭄이 지속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클락슨은 1852년에 세워져 16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영국 기업으로 1961년부터 조선해운업황을 분석한 자료를 정기적으로 발간하고 있다. 전 세계 주요 선사와 조선소들은 경영전략을 수립할 때 클락슨이 내놓은 보고서를 참고하고 있다.
◆ 해외분석기관 전망 자료, 입맛 따라 인용하나
클락슨이 전망한 지표를 정부가 사용한 것은 이번에 그치지 않는다. 정부는 지난해 10월에 조선업계 경쟁력 강화방안을 발표할 당시에도 클락슨의 자료를 인용했다.
클락슨은 지난해 9월 말에 배포한 보고서에서 향후 5년 동안(2017~2021년) 전 세계 선박발주가 모두 750척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고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회복기에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고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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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권오갑 현대중공업 부회장,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 |
정부는 이를 근거로 삼아 대우조선해양을 포함한 3사체제로 조선업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정부는 당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3사가 서로 비용을 분담해 자율적으로 의뢰한 글로벌 컨설팅기업 맥킨지의 조선업 보고서는 무시했다.
맥킨지는 2017~2021년 5년 동안 전 세계 선박발주가 클락슨의 추정치보다 200척 적은 550척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조선경기가 회복되는 시점도 클락슨보다 2년 느린 2020년에야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맥킨지는 조선3사의 경영상황과 경기전망 등을 놓고 봤을 때 대우조선해양의 독자생존이 어렵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는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맥킨지 보고서를 참고만 한 뒤 클락슨의 자료가 더욱 공신력 있다는 이유를 들어 경쟁력 강화방안을 마련했다. 정부가 미리 방향을 잡고 이에 부합하는 내용을 내놓는 해외기관의 자료만 입맛대로 인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조선업계는 정부가 해외기관의 전망을 근거로 삼아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에 과도하게 기대는 점은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시장전망은 특성상 환경에 따라 예상을 빗나갈 수 있고 또 빗나가는 것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에 기대어 구조조정을 추진할 경우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을 때 여태껏 추진해온 구조조정이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무너져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해외기관의 전망치는 수요가 늘어날지 줄어들지를 판단하는 참고자료로만 인용하고 좀 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국내 조선3사의 경영환경 등을 감안해 구조조정 방향을 잡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