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 투자기관들이 한국 증시에서 매도세를 확대하며 점차 이탈하는 배경은 코스피 지수 하락을 예측해서가 아니라 투자 포트폴리오 조정이 목적이라는 외신 분석이 제시됐다. 5월21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연합뉴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주가 상승이 집중되면서 자연히 기관 및 개인 투자자들이 리스크 관리를 위해 자산 비중을 재편성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21일 논평을 내고 “한국 증시에서 해외 투자기관의 이탈은 불길한 신호로 보인다”며 “코스피 지수가 과열되었다는 의미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한국을 제외한 글로벌 투자자들이 2026년 초부터 현재까지 매도한 주식은 600억 달러(약 90조 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코스피 지수가 해당 기간에 70% 이상 상승하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상승률을 보였음에도 해외 투자자들이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고 있는 셈이다.
블룸버그는 이미 한국 증시에서 과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증권사 계좌 예탁금과 신용융자 잔고 등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점이 이런 시각의 근거로 꼽힌다.
신용융자 잔고는 개인 투자자들이 얼마나 많이 빚을 내 투자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하지만 블룸버그는 해외 기관 투자자들이 코스피 지수 하락을 예측해 주식을 매도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들이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위해 주식 보유 비중을 조정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한국 증시 상승은 글로벌 인공지능 관련주 상승세가 소수 종목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예시”라며 “투자자 매도세는 대부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집중되고 있다”고 바라봤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메모리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한국 증시의 다른 종목과 차별화된 주가 상승세를 보이며 오히려 주식 매도를 자극하고 있다는 것이다.
MSCI(모간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신흥시장 지수 전체에서 SK하이닉스의 비중은 중국 빅테크 기업인 텐센트와 알리바바를 합친 수준에 이른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대만 TSMC를 합치면 해당 지수 전체의 25% 이상을 차지하는 데다 2026년 들어 전체 상승분의 약 70%를 책임진 것으로 집계됐다.
▲ SK하이닉스의 서버용 메모리반도체 전시용 제품. < SK하이닉스 >
기관 투자자들이 한국 증시에서 겪는 이러한 ‘딜레마’는 2020년 말 MSCI 신흥시장 지수에서 중국 기업의 비중이 40%를 넘었던 당시와 유사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다만 블룸버그는 개인 투자자들의 경우 기관과 달리 반도체와 같은 특정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데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블룸버그는 별도의 분석 기사에서도 “글로벌 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면서 코스피 변동성이 커지고 있지만 인공지능 관련주 성장세가 꺾일 것이라는 관측은 많지 않다”고 보도했다.
투자기관 삭소마켓의 찰루 차나나 투자전략가는 블룸버그에 “한국 증시는 인공지능 인프라 열풍을 대표하는 시장이 됐다”며 “다만 인플레이션 심화 우려가 커지고 미국 기술주 흐름이 부진하자 투자자들이 차익 실현에 나서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런 추세가 근본적 시장 논리를 바꿀 정도는 아니라고 바라봤다.
블룸버그는 “인공지능 열풍은 여전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TSMC 및 아시아 반도체 공급망 전반의 강세 전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CBH은행의 크리스토프 르루아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인공지능 관련주에 투자가 집중되는 현상은 증시에 약점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경제적 가치와 희소성이 집중된 영역에 수요가 몰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반도체 관련주는 인공지능 설비 투자 업황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어 투자자들이 상황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는 권고도 제시됐다.
블룸버그는 한국 증시가 여전히 과거 평균치와 비교해 저평가된 상태에 있다고 말했다. 코스피 전체 주가수익비율(PER)이 7.6배로 최근 5년 평균인 10.2배를 밑돌고 있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됐다,
미국 나스닥 지수 주가수익비율 평균이 약 27.4배,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는 약 24배 수준이라는 데 비춰보면 낮은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는 셈이다.
투자기관 티로프라이스의 클래런스 리 연구원은 “모든 반도체 관련주가 저평가 상태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하지만 실적 전망치를 고려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여전히 합리적 수준”이라고 블룸버그에 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