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DL케미칼이 2022년 그룹 차원의 ‘빅딜’로 인수한 미국 화학사 크레이튼 덕에 올해 1분기 실적을 방어했다.

크레이튼은 그동안 기대만큼의 효과를 내지 못했지만 올해 초반부터 고유가 반사이익 효과를 딛고 크게 반등했다. 이해욱 DL그룹 회장이 5년 전 던진 승부수가 본 궤도에 오를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DL '고유가 반사이익'에 미국 계열사 크레이튼 효자 노릇, 이해욱 '3조 승부수' 올해는 빛보나

이해욱 DL그룹 회장이 5년 전에 던진 미국 화학사 인수의 결실을 거두고 있다.


11일 DL그룹에 따르면 석유화학 계열사 가운데 크레이튼의 1분기 영업이익은 313억 원으로 모회사인 DL케미칼의 별도 기준 영업이익 235억 원을 추월했다. 

크레이튼 영업이익은 지난해 1분기 대비 848.5% 늘었지만 DL케미칼은 같은 기간 45.9% 줄었다. DL케미칼의 미국 자회사인 크레이튼이 영업이익에서 모회사를 앞선 것은 2022년 3분기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DL케미칼은 크레이튼의 선전에 힘입어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이 562억 원으로 지난해 1분기보다 8.5% 늘었다. 지난해 4분기 영업적자에서 곧바로 벗어나는 데도 성공했다.

같은 화학사지만 자회사와 모회사 사이 방향이 엇갈린 데는 크레이튼의 특수한 사업구조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크레이튼은 접착제 등의 원료로 쓰이는 폴리머 사업과 소나무 펄프 생산과정 부산물을 정제해 생산하는 케미칼 사업을 펼치고 있다.

주력 제품은 스타이렌블록코폴리머(SBC)로 미국 등지에서는 점유율 1위이며 생물 유래 자원에서 화학제품을 만드는 바이오케미칼 부문에서는 세계 최대 규모 생산능력을 가진 화학사로 꼽힌다.

생산기지가 미국을 중심으로 이뤄져 이란전쟁에 따른 중동산 원유 수급 차질에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다. 오히려 이란전쟁에 따른 제품 판매가 상승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또 케미칼 사업은 소나무 펄프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원료를 써 수급 영향이 거의 없었다.

그룹 지주사 DL은 1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크레이튼은 연말 비수기 영향에서 벗어나 가동률 회복과 판매 증가가 이어진 가운데 원재료 가격 상승 효과까지 더해졌다”며 “북미와 유럽 설비의 공급 안정성을 경쟁 우위 요소로 활용해 실적 개선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이해욱 DL그룹 회장의 5년 전 승부수가 마침내 빛을 보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 회장은 DL케미칼을 앞세워 2021년 9월 DL그룹 창사 82년 사이 최대 규모인 16억 달러(약 2조 원)에 크레이튼을 인수했다. 크레이튼 대출 대환에 약 1조 원을 추가로 써 모두 3조 원 가량이 투입된 그야말로 석유화학업계의 ‘빅딜’이었다.

나라별로 다른 회계기준을 고려한다 해도 2021년 기준 크레이튼 매출은 2조2545억 원으로 DL케미칼(별도) 매출 1조4723억 원을 크게 웃돌았다. 

그만큼 DL그룹 차원의 기대도 컸는데 크레이튼은 인수 이후 오랫동안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시장에서는 크레이튼을 놓고 DL그룹의 ‘아픈 손가락’이란 평가도 나왔다.

인수 첫 해인 2022년 영업이익이 506억 원으로 가장 높았다. 그 뒤 2023년에는 1563억 원의 영업적자를 냈고 2024년 영업이익 15억 원으로 반등했지만 지난해 다시 453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DL '고유가 반사이익'에 미국 계열사 크레이튼 효자 노릇, 이해욱 '3조 승부수' 올해는 빛보나

▲ 크레이튼의 미국 공장 모습. < DL >


DL케미칼은 크레이튼 인수를 위해 거액을 끌어다 써 반등도 절실했다. 

DL케미칼은 2021년 인수에 필요한 3조 원을 자체 보유 현금에 더해 크레이튼의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이른바 'LBO(Leveraged BuyOut)' 방식으로 확보했다. 인수 자금 가운데 2조원 이상을 차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DL케미칼의 1분기 실적에 이란전쟁이란 외부변수가 작용한 만큼 크레이튼의 영업흑자가 앞으로 구조적으로 안착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할 필요성이 큰 셈이다.

DL케미칼은 지속적 구조조정으로 크레이튼의 흑자를 안착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지난해 10월에는 프랑스 베르 공장의 폴리머 생산을 효율화했고 앞서 같은 해 5월에는 비핵심 사업 정리를 위해 미국 오하이오주 공장을 닫고 다이머 및 폴리아미드 사업에서 철수했다.

이 회장은 올해 크레이튼 경영진에서도 변화를 꾀했다. 지난 2월에는 류상우 전 카리플렉스 최고경영자(CEO)가 크레이튼 CEO로 선임됐다. 

카리플렉스는 수술용 장갑 등 의료용 고부가가치 합성고무와 라텍스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과거 크레이튼의 한 사업부였다. DL케미칼이 크레이튼보다 먼저 2019년 인수를 결정한 곳으로 인수 이후 DL케미칼의 ‘캐시카우’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류상우 대표는 카리플렉스 CEO에 오르기 전에는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거쳤다. 그만큼 알짜 회사를 키워낸 성과를 보인 경영자가 크레이튼으로 옮겨간 셈이다.

증권가 분석을 종합하면 크레이튼은 한동안 고유가에 따른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란전쟁이 예상보다 길게 진행되고 있는데다 전쟁 직후에도 곧바로 이전 수준의 생산량을 회복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재로선 고유가 수혜를 딛고 화학계열사를 이끄는 지주사 DL이 2분기에 분기 최대 이익 기록을 갈아치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DL이 역대 최대 영업이익을 거둔 것은 2024년 1분기(1724억 원)다.

전우제 KB증권 연구원은 “DL은 1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다시 한번 고유가 수혜주란 점을 확인했다”며 “크레이튼은 지난 3년 동안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완료하고 가장 유리한 고유가 환경에서 부활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내다봤다. 김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