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비디아를 비롯한 미국 빅테크 업체들이 협력사에 직접 투자를 추진하며 인공지능 사업에 공급망 안정화를 목표로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에 위치한 엔비디아 사옥. <엔비디아>
SK하이닉스도 이러한 추세 확산에 수혜를 볼 가능성이 거론된다. 대형 고객사와 중장기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실적 및 재무 안정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열리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CNBC는 8일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말을 인용해 “인공지능(AI) 투자 열풍의 수혜는 대형 IT기업을 넘어 경제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젠슨 황 CEO는 CNBC와 인터뷰에서 차세대 인공지능 기술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세계 최고의 기업들과 협력해 안정적 공급망을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엔비디아가 전날 유리 제조사 코닝과 협력해 광섬유 생산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한 배경은 결국 핵심 공급망 강화를 위한 목적이라고 강조한 셈이다.
두 회사는 미국에 모두 3곳의 생산 설비를 구축하기로 했다. 인공지능 반도체에 구리 선을 대체할 수 있는 광섬유 생산량을 현재의 10배 수준으로 늘리겠다는 목표가 반영됐다.
로이터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이를 위해 코닝의 지분 최대 32억 달러(약 4조7천억 원)를 인수하는 데 이어 수십 억 달러의 시설 투자금을 추가로 지원한다.
젠슨 황 CEO는 인공지능 인프라 시장의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가 필수라고 덧붙이며 향후 반도체 등 다양한 공급망 분야에서 인력 부족을 비롯한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구상에 따라 막대한 자본력을 갖춘 엔비디아가 직접 투자를 주도하며 협력사를 적극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공급망 투자가 빅테크 전반으로 확산되는 정황도 파악된다.
로이터가 8일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다수의 빅테크 기업들에서 생산라인 투자 및 반도체 장비 구매 지원과 관련한 제안을 받았다.
SK하이닉스가 제조하는 메모리반도체는 그동안 수요와 공급에 따라 현물 시장에서 주로 거래되는 일반 소비재 및 부품과 유사한 성격을 띠고 있었다.
▲ SK하이닉스의 서버용 메모리반도체 전시장 홍보용 사진. < SK하이닉스 >
여기서 더 나아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장비를 지원하거나 직접 설비 투자에 참여하는 방식이 활발하게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로이터는 다수의 빅테크 기업들이 전용 메모리반도체 생산라인 구축과 같은 안정적 공급망 확보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는 관계자들의 말을 전했다.
이러한 제안은 SK하이닉스뿐 아니라 삼성전자와 마이크론 등 고성능 메모리반도체 제조 역량을 갖춘 다른 기업들에도 유사하게 들어가고 있을 공산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빅테크 업체들이 인공지능 인프라 투자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사들일 수 있는 가능한 많은 반도체 물량을 확보하려는 노력에 힘을 싣고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는 삼성전자와 마이크론도 콘퍼런스콜에서 고객사들과 다년간의 공급 계약 체결을 논의중이라고 밝힌 점을 이러한 정황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들었다.
빅테크 기업들이 주요 공급망에 직접 투자하는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과거 재팬디스플레이 등 부품 협력사들의 생산 증설 자금을 제공했던 애플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애플은 주요 부품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단가도 일정하게 유지해 공급망에 영향력을 높이려는 목적을 두고 다수의 협력사에 투자를 지원했다.
엔비디아가 코닝의 공장 증설을 주도하는 것과 빅테크 기업들이 SK하이닉스 반도체 생산라인 투자에 참여하려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공급망 협력사들이 가격이나 물량 협상의 주도권을 고객사에 어느 정도 넘겨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다소 불리한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대형 고객사의 수주를 장기간 확보해 실적 안정성을 높이고 투자에 재무 부담도 덜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호황기가 이어지면 수혜가 다소 줄어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는 SK하이닉스가 실제로 고객사의 투자 지원을 받으면 메모리반도체를 장기간 낮은 가격에 공급해야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는 관계자들의 말을 전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은 이미 최근 이어진 반도체 호황기에 대응해 잇따라 추가 설비 투자 계획도 내놓았다. 고객사의 요청으로 증설 규모를 더 확대한다면 메모리반도체 업황이 공급 과잉 국면으로 전환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