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베르 바댕테르 프랑스 전 법무부 장관의 유해가 2025년 10월9일 팡테옹 안치식을 맞아 프랑스 국기에 덮혀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팡테옹으로 옮겨지고 있다. 관에는 유해 대신 그의 변호사 법복, 사형제 폐지에 관한 1981년 국회 연설문 사본, 저서 세 권이 들어 있다. 바댕테르 전 장관은 1981년 프랑스의 사형제 폐지에 앞장선 공로 등을 인정받았다. <프랑스 대통령궁 공식 유튜브 영상 갈무리>
로베르 바댕테르(Robert Badinter)는 누구인가. ‘전 법무부 장관’이라는 직함이 먼저 눈길을 끈다.
팡테옹은 프랑스가 국가 차원에서 최고의 예우를 갖춰 조국을 빛낸 프랑스인을 모시는 영묘이다. 건물 정면에는 ‘위대한 인물에게, 조국은 감사를 표한다(Aux grands hommes, La patrie reconnaissante)’라는 문구가 크게 새겨져 있다.
로베르 바댕테르가 지난해 이장되면서 2026년 5월 현재 총 82명이 유해가 안장돼 있다. 지하 납골당으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볼테르, 장 자크 루소가 서로 마주보며 잠들어 있다. 그 뒤로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 알렉상드르 뒤마와 같은 문학가도 한 자리씩 차지한다. 마리 퀴리와 피에르 퀴리 부부와 같은 과학자들도 영면하고 있다. 프랑스 시민들은 빅토르 위고, 마리 퀴리의 석관 위로 꽃들 올려뒀다.
여기에 역사가이자 레지스탕스 영웅인 마르크 블로크(아날학파 창시, 1944년 총살)가 2026년 6월 안장될 예정이다. 참고로 여성은 모두 7명이다. 국내에 잘못 알려진 것과 달리, 여성은 마리 퀴리 혼자가 아니다.
이렇게 귀한 자리에, 우리나라로 치면 조국·추미애·박범계(문재인 정부), 한동훈·박성재(윤석열 정부) 전 법무부 장관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영국신문 가디언의 부고기사 등을 보면, 로베르 바댕테르(1928년 3월~2024년 2월)는 1950년대 초 파리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라도 변호해야 한다. 그들도 인간이기 때문이다”라는 가르침에 따라, 코코 사넬이나 브리짓 바르도와 같은 유명인뿐 아니라 사형 선고를 받은 다섯 명의 흉악범도 변호했다. 흉악범 변호에는 위험이 따랐다. 1976년 그의 가족이 살던 파리 아파트 현관 앞에서 폭탄이 터지기도 했다. 그는 “변호는 변호하기를 좋아하는 것이지, 변호 받는 이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사회당)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에 재임하면서 담대한 도전에 나섰다. 1981년 격심한 비난 속에서도 사형제 폐지 법안을 의회에 제출하고 의회 통과에 앞장섰다. 프랑스에서는 18세기부터 일부 지식인이 사형제 폐지를 주장했지만 실제 이를 위한 진지한 시도는 없었다.
프랑스는 1789년 시작된 혁명 때 기요틴으로 왕의 목을 잘랐던 나라 아닌가. 2차 세계대전 뒤에도 사형제를 지지하는 보수 우파가 연달아 집권 했고, 1980~81년 당시 여론조사에서도 사형제 폐지에 대한 여론은 미미했을 뿐이다. 다행히 1981년 당시 하원은 좌파가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었고, 상원에서도 우파에서 이탈표가 나왔다. 바댕테르는 당시 의회 연설에서 “내일, 여러분 덕분에, 프랑스의 사법 제도는 더 이상 사람을 죽이는 사법 제도가 아닐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밖에 바댕테르는 15살 이상 동성애 관계를 이성애 관계와 동일하게 비범죄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정규 사법 체계 밖에서 운영되던 ‘특별 군사법원’을 폐지했다. 그는 이후 2011년까지 상원의원을 지냈고, 유고슬라비아 분쟁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바댕테르가 2024년 2월 사망하자 파리 법무부 청사 앞에는 조문록에 글을 남기기 위해 수천 명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프랑스 언론은 그를 두고 정의를 위해 헌신하고, 억압에 맞서 싸우고, 법치를 수호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고 평가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추도식에서 그를 두고 “국가의 도덕적 양심”이라 말했다.
물론 사형제를 둘러싼 논란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한국은 ‘사실상 폐지 국가’에 속하지만 일본은 지난해 6월 9명을 연쇄 살인한 시라이시 다카히로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25년 1월 사형 집행 절차를 공식적으로 재개했고, 올해 4월 독극물 주사 외에 총살형, 전기형 등 집행 방식도 다양화하겠다고 밝혔다. 국가별로, 국민과 정치인들이 결정할 것이다.
사형제를 두고 토론을 벌이는 것과 별개로, 프랑스가 전직 장관인 바댕테르를 기리면서 무엇을 얻고 있는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프랑스 공동체는 그를 기림으로써 ‘좋은 국가’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으며 답하고 있다. 또한 대외적으로 ‘우리에게 이런 위대한 인물이 있다’고 자랑하면서, 앞으로도 그런 쪽으로 공동체를 가꿔가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를 빼고, 좋은 국민묘지는 공동체에 큰 힘이 된다. 안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