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SEC가 기후정보공개 규정을 공식적으로 폐지하기로 했다. 사진은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SEC 본부 모습. <연합뉴스>
하지만 미국 주요 기업들이 활동 무대로 하는 캘리포니아주 정부 차원에서 기후공시를 시행하는 법안이 남아있어 연방정부 차원의 제도 공백을 상당 부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5일(현지시각) 로이터와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홈페이지 공고를 통해 바이든 행정부 시절에 제정된 '기후정보공개 규정'을 폐지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증권거래위 대변인은 공지를 통해 "우리는 해당 규정을 폐지하고 기업 공시가 투자자에 중요한 정보에 초점을 맞추도록 요구하는 위원회의 핵심 임무로 회귀하는 쪽에 집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2년이 넘게 이어진 기후정보 공시 관련 소송을 끝내는 의미를 담은 발표로 풀이된다.
앞서 2024년 3월 기후공시 규정이 처음 제정됐을 당시 이를 놓고 미국 공화당 성향의 주 정부 25곳과 미국 상공회의소 등은 미국 기업들에 부당한 부담을 줘 수정헌법에 위배된다는 명분에 따라 폐지할 것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2025년 초까지만 해도 증권거래위는 기후정보 공개 공시 규정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입장이었으나 2025년 3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신임 위원장이 취임하면서 태도를 바꿨다.
증권거래위는 규정을 보호하기 위한 어떤 법적 조치도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고 법원의 관련 자료 제출 요청에도 응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홈페이지에 게재된 발표 내용에 따르면 증권거래위는 이미 백악관 예산관리국에 공시제도 폐지 요청을 전달한 것으로 파악된다. 예산관리국이 폐지안 검토를 마치면 증권거래위에 이를 회신해 위원 투표로 최종 결정을 내린다.
블룸버그는 이같은 절차가 통상적으로 몇 달은 걸린다고 설명했다.
다만 증권거래위 기후공시 규정이 폐지된다고 해서 미국 기업들이 기후정보 공개 의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캘리포니아주가 지난 2월 '기후 기업 데이터 책임법(CCDAA)'을 시행했기 때문이다.
▲ 미국 캘리포니아주 101번 국도를 따라 차량들이 주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정 규모 이상 상장사만을 대상으로 하는 증권거래위 규정보다 오히려 범위가 더 넓다고 볼 수 있다.
또 캘리포니아주는 기후 리스크까지 보고하도록 요구하는 '기후 관련 금융 리스크 보고법(CRFRA)'도 의회에서 승인한 바 있다.
이는 연 매출 5억 달러(약 7500억 원)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기후 기업 데이터 책임법보다도 적용 대상 기업들이 더 많다. 다만 기후 관련 금융 리스크 보고법은 현재 엑손모빌과 소송전이 진행 중이라 집행은 정지돼 있다.
미국 전문가들은 캘리포니아주 법안의 시행이 정착된다면 사실상 미국 전역에서 기후정보 공시가 시행되는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라 보고 있다.
케이트 고든 전 미국 에너지부 고문은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캘리포니아주의 입법 사례는 주의 경제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매우 높다"고 강조했다.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캘리포니아주가 미국 국내에서 차지하는 총생산 비중은 약 14%에 달한다. 사실상 캘리포니아주에서 공시가 시행되면 미국 전역의 기업들이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더구나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에는 애플, 구글, 엔비디아, 메타 같은 글로벌 기술 기업 본사가 집중돼 미국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고든 전 고문은 "캘리포니아주는 이같은 일(기후공시)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려는 목표를 가지고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일례로 캘리포니아주가 올해 배출권거래제 도입 선언을 했을 때도 이것이 미국을 선도하는 일이 될 것이라는 입장을 명확히 밝힌 바 있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