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1. 한국은 세계 주요국 가운데 노조가 가장 극렬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인식은 사실일까, 아니면 친기업적 혹은 반노조적인 프로파간다로 형성된 선입견일까.
노동 문제는 각국의 역사와 제도, 관행이 모두 다르다. 일률적 기준으로 비교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여러 통계에서 나타난 수치를 통해 간접적으로 들여다볼 수는 있다.
일단 노조 조직률, 즉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했는지 비율부터 살펴보자.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은 2024년 기준 13%에 머문다. 민주화된 이후에도 오랜 시간 10% 초반 대에서 변하지 않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어떨까. OECD가 펴낸 2025년 9월 정책보고서를 보면 회원국 평균 노조 조직률은 2023~2024년 기준 15%로 나타났다. 평균은 한국보다 약간 높은 수준인데 국가별로는 편차가 컸다.
아이슬란드가 90%였고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 국가에선 과반이 넘는 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했다. 반면 동유럽 국가는 한 자릿수 중반에 머물렀다.
절대 수치보다 중요한 건 추세로 보인다. OECD 평균 노조 가입률은 1985년만 해도 30%였으나 해를 거듭하며 하락해 약 40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를 놓고 OECD는 사회·경제적 여러 요인이 작용하고 있는데 일부 논문을 인용해 기업 사이에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진 점을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짚었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OECD 전체 평균에는 다소 미치지 못했으니 이 수치만 놓고 보면 한국에서 노조가 극성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노조 조직률이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꾸준히 그 숫자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2. OECD와 한국산업노동학회 등 국내외 전문기관의 분석을 종합하면 한국은 대기업과 공공부문 정규직 중심으로 노조 조직률이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이 바깥 영역, 즉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에서는 노조 조직화가 힘든 구조적 제약이 이어지는 것으로 분석된다.
즉 한국은 규모가 되는 대기업과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노조가 오랫동안 단단한 조직력과 결속력을 보인다. 주요 기업은 글로벌 경쟁 한 가운데 놓여 있지만 노조는 이와 무관하게 유지된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노조 조직률뿐 아니라 파업 일수도 따져보자. 물론 이 역시 나라별로 제도와 관행, 집계 연도와 통계 방식 및 기준이 모두 달라 일률적 비교는 힘들지만 일면은 엿볼 수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2024 해외노동통계'를 보면 2013~2022년 10년간 한국의 임금 근로자 1천 명당 노동 손실일수는 35.2일로 조사됐다.
노동 손실일수는 파업으로 일하지 못한 시간을 일수로 환산한 수치다. 주요국을 살펴보면 영국은 22.9일, 미국 9.5일, 독일 6.2일, 일본 0.2일 등이었다. 한국이 압도적으로 높은 셈이다.
이처럼 한국이 파업을 많이 하는 건 최근의 경향이 아니라 꽤 오래된 일이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조사한 '노동자 1천 명당 파업 일수'를 바탕으로 호주의 통계분석업체(nationmaster)가 1996년부터 2000년까지 평균치를 비교분석한 결과를 보면 한국은 95일로 나타난다.
노조조직률이 높은 덴마크나 아이슬란드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낮지만, 주요 7개국(G7) 63.57일에 비해서는 상당히 높은 수치다. 한국의 파업 일수 순위는 조사 대상 27개국 가운데 6위였다.
가장 최근의 통계청 조사를 봐도 2025년 한국의 노사분규 발생 건수는 123건, 참가자를 모두 곱한 총 노동 손실일수는 무려 39만4천 일에 이른다.
과거부터 이어지는 여러 통계와 분석을 종합하면 한국에서 지난 수십 년간 일부 대기업과 공공기관 노조가 극렬한 파업 투쟁을 주도하고 있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3.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의 20%가 넘는 삼성전자 초기업노조가 5월 하순부터 18일간의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영업이익의 15%를 기준으로 성과급의 상한선을 없애라는 게 파업의 이유다.
1분기 영업이익만 해도 전체 코스피 상장사의 40%가 넘는 삼성전자의 노조가 총파업을 실행하면 손실 규모만 최대 3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사 측의 엄살이 아니다. 노조가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이다.
삼성전자의 파업이 우리나라 경제 전체에 미칠 악영향을 앵무새처럼 반복하자는 건 아니다. 대신 이 대목에서 이번 파업이 '얼마나 정의로운 일'인가를 한번 따져봐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고자 한다.
여기서 말하는 '정의'는 영화에서 악당을 심판하는 식의, 누가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자는 그런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사회적 차원에서 말하는 정의는 이익과 부담, 권력과 기회의 분배가 어떤 기준으로 이뤄져야 하는지에 대한 원리를 말한다.
우리 경제를 좌우하는 대기업일수록 노조의 활동에 대해서도 사회적 정의에 입각한 판단이 분명히 필요하다.
이 사회적 정의를 살피는 철학 사조에는 크게 공리주의, 자유주의, 공동체주의가 있다.
공리주의는 사회 전체의 효용 극대화가 정의의 기준이다. 이 기준에서 보면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은 수억 원의 성과급으로 노조원의 효용을 키운다. 하지만 사회 전체 효용은 노조의 예고처럼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자유주의에선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중요하다. 이 기준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조의 성과급 요구와 파업은 헌법과 법률에 보장된 합법적 권리다. 하지만 노조의 권리 주장으로 타인 권리도 침해되어선 안 된다.
삼성전자 주주는 손실을 감수하는 대신 배당을 받는다. 반면 삼성전자 노조는 그 어떤 손실 가능성을 감수하지 않으면서 이익이 커지는 대로 상한선 없는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노조의 무제한 성과급 요구는 회사뿐 아니라 주주의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
공동체주의는 공동선과 사회적 책임이 정의의 잣대다. 올해 300조 원으로 추산되는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삼성전자 노조원의 노동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위험을 감수한 경영진의 과감한 투자,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적 인프라와 정부 지원, 협력사 생태계의 역할이 더 크다.
하지만 삼성전자 노조는 회사 차원의 손해 가능성은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협력사와 상생을 도모하는 노조의 공식 입장을 전한 보도도 본 적이 없다. 반도체 부문 외에 사내 다른 사업부 노동자 처우를 거론하는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직원은 물론 실력이 있어 치열한 입사경쟁을 뚫었겠지만 엄밀히 따지고 보면 직장 운이 좋은 사람들일 뿐이다. 삼성전자의 막대한 이익에 그들이 무제한으로 보상받아야 할 합리적 근거는 분명하지 않다.
공동체주의 관점에서 삼성전자 노조가 보인 행태는 무엇보다 사회적 성과를 특정 집단이 무제한적으로 사유화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명백하게 될 수 있다.
#4. 그렇다고 삼성전자 노조를 사회악으로 치부하자는 말은 절대 아니다. 이번 파업 움직임은 삼성전자가 오랫동안 무노조 경영을 해오며 노조를 탄압했던 데 따른 업보의 차원도 있다.
그동안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해결돼야 했던 노사 갈등이 사상 최대의 이익을 보는 시기에 한꺼번에 분출되면서 벌어지는 혼란이기도 한 셈이다.
더구나 삼성전자 노조의 주장에는 공감할 수 있는 대목도 일부 보인다. 무한 경쟁의 시대에 인재 유치를 위해서는 적절한 성과 보상이 필요하며 이를 보장할 성과급 체계에 투명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바로 그것이다.
하여 이번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 시도를 우리나라 노사 교섭의 원칙과 방식을 개선하는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았으면 한다. 극단적이고 이분법적 시각은 우리 사회와 경제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문가들 견해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사업장 단위 개별교섭이 진행되어 동일 산업 내에서도 교섭 조건에 차이가 크고 사용자와 노조 간 정보력과 교섭력이 비대칭적인 상황이 문제로 꼽힌다.
이와 관련해 모범적 노사 관계의 전범으로 꼽히는 제조업 강국 독일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우리나라와 달리 독일의 노사교섭은 산업별 단체교섭과 사업장 공동 결정 중심의 자율적 협력 형태를 띈다.
물론 기본적 법체계에 차이가 있으니 이런 독일의 방식을 곧바로 우리나라에 가져올 수는 없다. 다만 방식 그 자체보다는 독일 노사 교섭에서 운영 원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름 아니라 노사가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체계를 가진다는 점이다. 사전에 충분히 정보를 알고 서로 논의하다보니 극단적으로 파업하지 않고도 협력적 노사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에 유독 파업이 많다는 건 노조에 정의에 관한 의식이 부족해서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노사협의와 관련한 제도에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신호일 수 있다.
극단적 갈등으로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사전에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구조를 하루빨리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른바 '어용 노조'만 있어야 한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단순히 노조가 약해진다고 해서 파업이 줄어들 것이라고 볼 순 없다. 파업이 줄어들려면 정의, 즉 이익과 부담의 기준을 놓고 싸우지 않아도 되는 제도를 갖춘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우리나라 기업의 노사 협의 구조가 커진 국제적 위상에 맞게 이제는 좀 더 정의로워졌으면 좋겠다. 이를 통해 이익과 부담이 정의롭게 이뤄진다는 믿음, 즉 사회적 신뢰 자본를 더 뚜껍게 쌓아야 한다.
신뢰 자본은 예측가능한 노사 관계에서부터 출발한다. 두텁게 쌓은 신뢰 자본은 기술 자본이나 금융 자본 이상으로 글로벌 무한 경쟁을 헤쳐나갈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박창욱 글로벌&기후대응부장 겸 건설에너지부장(부국장)
노동 문제는 각국의 역사와 제도, 관행이 모두 다르다. 일률적 기준으로 비교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여러 통계에서 나타난 수치를 통해 간접적으로 들여다볼 수는 있다.
▲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자택 앞에 삼성전자 노조의 천막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일단 노조 조직률, 즉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했는지 비율부터 살펴보자.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은 2024년 기준 13%에 머문다. 민주화된 이후에도 오랜 시간 10% 초반 대에서 변하지 않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어떨까. OECD가 펴낸 2025년 9월 정책보고서를 보면 회원국 평균 노조 조직률은 2023~2024년 기준 15%로 나타났다. 평균은 한국보다 약간 높은 수준인데 국가별로는 편차가 컸다.
아이슬란드가 90%였고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 국가에선 과반이 넘는 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했다. 반면 동유럽 국가는 한 자릿수 중반에 머물렀다.
절대 수치보다 중요한 건 추세로 보인다. OECD 평균 노조 가입률은 1985년만 해도 30%였으나 해를 거듭하며 하락해 약 40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를 놓고 OECD는 사회·경제적 여러 요인이 작용하고 있는데 일부 논문을 인용해 기업 사이에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진 점을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짚었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OECD 전체 평균에는 다소 미치지 못했으니 이 수치만 놓고 보면 한국에서 노조가 극성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노조 조직률이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꾸준히 그 숫자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2. OECD와 한국산업노동학회 등 국내외 전문기관의 분석을 종합하면 한국은 대기업과 공공부문 정규직 중심으로 노조 조직률이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이 바깥 영역, 즉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에서는 노조 조직화가 힘든 구조적 제약이 이어지는 것으로 분석된다.
즉 한국은 규모가 되는 대기업과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노조가 오랫동안 단단한 조직력과 결속력을 보인다. 주요 기업은 글로벌 경쟁 한 가운데 놓여 있지만 노조는 이와 무관하게 유지된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노조 조직률뿐 아니라 파업 일수도 따져보자. 물론 이 역시 나라별로 제도와 관행, 집계 연도와 통계 방식 및 기준이 모두 달라 일률적 비교는 힘들지만 일면은 엿볼 수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2024 해외노동통계'를 보면 2013~2022년 10년간 한국의 임금 근로자 1천 명당 노동 손실일수는 35.2일로 조사됐다.
노동 손실일수는 파업으로 일하지 못한 시간을 일수로 환산한 수치다. 주요국을 살펴보면 영국은 22.9일, 미국 9.5일, 독일 6.2일, 일본 0.2일 등이었다. 한국이 압도적으로 높은 셈이다.
이처럼 한국이 파업을 많이 하는 건 최근의 경향이 아니라 꽤 오래된 일이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조사한 '노동자 1천 명당 파업 일수'를 바탕으로 호주의 통계분석업체(nationmaster)가 1996년부터 2000년까지 평균치를 비교분석한 결과를 보면 한국은 95일로 나타난다.
노조조직률이 높은 덴마크나 아이슬란드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낮지만, 주요 7개국(G7) 63.57일에 비해서는 상당히 높은 수치다. 한국의 파업 일수 순위는 조사 대상 27개국 가운데 6위였다.
가장 최근의 통계청 조사를 봐도 2025년 한국의 노사분규 발생 건수는 123건, 참가자를 모두 곱한 총 노동 손실일수는 무려 39만4천 일에 이른다.
과거부터 이어지는 여러 통계와 분석을 종합하면 한국에서 지난 수십 년간 일부 대기업과 공공기관 노조가 극렬한 파업 투쟁을 주도하고 있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3.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의 20%가 넘는 삼성전자 초기업노조가 5월 하순부터 18일간의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영업이익의 15%를 기준으로 성과급의 상한선을 없애라는 게 파업의 이유다.
▲ 삼성전자 노조가 총파업에 들어가면 손실이 최대 3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사진은 반도체 공장 내부 모습. <삼성전자>
1분기 영업이익만 해도 전체 코스피 상장사의 40%가 넘는 삼성전자의 노조가 총파업을 실행하면 손실 규모만 최대 3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사 측의 엄살이 아니다. 노조가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이다.
삼성전자의 파업이 우리나라 경제 전체에 미칠 악영향을 앵무새처럼 반복하자는 건 아니다. 대신 이 대목에서 이번 파업이 '얼마나 정의로운 일'인가를 한번 따져봐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고자 한다.
여기서 말하는 '정의'는 영화에서 악당을 심판하는 식의, 누가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자는 그런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사회적 차원에서 말하는 정의는 이익과 부담, 권력과 기회의 분배가 어떤 기준으로 이뤄져야 하는지에 대한 원리를 말한다.
우리 경제를 좌우하는 대기업일수록 노조의 활동에 대해서도 사회적 정의에 입각한 판단이 분명히 필요하다.
이 사회적 정의를 살피는 철학 사조에는 크게 공리주의, 자유주의, 공동체주의가 있다.
공리주의는 사회 전체의 효용 극대화가 정의의 기준이다. 이 기준에서 보면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은 수억 원의 성과급으로 노조원의 효용을 키운다. 하지만 사회 전체 효용은 노조의 예고처럼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자유주의에선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중요하다. 이 기준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조의 성과급 요구와 파업은 헌법과 법률에 보장된 합법적 권리다. 하지만 노조의 권리 주장으로 타인 권리도 침해되어선 안 된다.
삼성전자 주주는 손실을 감수하는 대신 배당을 받는다. 반면 삼성전자 노조는 그 어떤 손실 가능성을 감수하지 않으면서 이익이 커지는 대로 상한선 없는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노조의 무제한 성과급 요구는 회사뿐 아니라 주주의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
공동체주의는 공동선과 사회적 책임이 정의의 잣대다. 올해 300조 원으로 추산되는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삼성전자 노조원의 노동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위험을 감수한 경영진의 과감한 투자,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적 인프라와 정부 지원, 협력사 생태계의 역할이 더 크다.
하지만 삼성전자 노조는 회사 차원의 손해 가능성은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협력사와 상생을 도모하는 노조의 공식 입장을 전한 보도도 본 적이 없다. 반도체 부문 외에 사내 다른 사업부 노동자 처우를 거론하는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직원은 물론 실력이 있어 치열한 입사경쟁을 뚫었겠지만 엄밀히 따지고 보면 직장 운이 좋은 사람들일 뿐이다. 삼성전자의 막대한 이익에 그들이 무제한으로 보상받아야 할 합리적 근거는 분명하지 않다.
공동체주의 관점에서 삼성전자 노조가 보인 행태는 무엇보다 사회적 성과를 특정 집단이 무제한적으로 사유화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명백하게 될 수 있다.
#4. 그렇다고 삼성전자 노조를 사회악으로 치부하자는 말은 절대 아니다. 이번 파업 움직임은 삼성전자가 오랫동안 무노조 경영을 해오며 노조를 탄압했던 데 따른 업보의 차원도 있다.
그동안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해결돼야 했던 노사 갈등이 사상 최대의 이익을 보는 시기에 한꺼번에 분출되면서 벌어지는 혼란이기도 한 셈이다.
더구나 삼성전자 노조의 주장에는 공감할 수 있는 대목도 일부 보인다. 무한 경쟁의 시대에 인재 유치를 위해서는 적절한 성과 보상이 필요하며 이를 보장할 성과급 체계에 투명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바로 그것이다.
하여 이번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 시도를 우리나라 노사 교섭의 원칙과 방식을 개선하는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았으면 한다. 극단적이고 이분법적 시각은 우리 사회와 경제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문가들 견해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사업장 단위 개별교섭이 진행되어 동일 산업 내에서도 교섭 조건에 차이가 크고 사용자와 노조 간 정보력과 교섭력이 비대칭적인 상황이 문제로 꼽힌다.
이와 관련해 모범적 노사 관계의 전범으로 꼽히는 제조업 강국 독일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우리나라와 달리 독일의 노사교섭은 산업별 단체교섭과 사업장 공동 결정 중심의 자율적 협력 형태를 띈다.
물론 기본적 법체계에 차이가 있으니 이런 독일의 방식을 곧바로 우리나라에 가져올 수는 없다. 다만 방식 그 자체보다는 독일 노사 교섭에서 운영 원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름 아니라 노사가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체계를 가진다는 점이다. 사전에 충분히 정보를 알고 서로 논의하다보니 극단적으로 파업하지 않고도 협력적 노사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에 유독 파업이 많다는 건 노조에 정의에 관한 의식이 부족해서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노사협의와 관련한 제도에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신호일 수 있다.
극단적 갈등으로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사전에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구조를 하루빨리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른바 '어용 노조'만 있어야 한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단순히 노조가 약해진다고 해서 파업이 줄어들 것이라고 볼 순 없다. 파업이 줄어들려면 정의, 즉 이익과 부담의 기준을 놓고 싸우지 않아도 되는 제도를 갖춘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우리나라 기업의 노사 협의 구조가 커진 국제적 위상에 맞게 이제는 좀 더 정의로워졌으면 좋겠다. 이를 통해 이익과 부담이 정의롭게 이뤄진다는 믿음, 즉 사회적 신뢰 자본를 더 뚜껍게 쌓아야 한다.
신뢰 자본은 예측가능한 노사 관계에서부터 출발한다. 두텁게 쌓은 신뢰 자본은 기술 자본이나 금융 자본 이상으로 글로벌 무한 경쟁을 헤쳐나갈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박창욱 글로벌&기후대응부장 겸 건설에너지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