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미국 상장 플랜 구체화, 최태원 '주주가치 희석' 딛고 투자 골든타임 지킨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하이닉스의 미국 ADR 상장을 통해 수십조 원 규모의 반도체 투자 자금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하이닉스의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상장을 본격적으로 추진,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설비투자 실탄 확보에 나선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AI 반도체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빠른 설비 증설이 필요한데, 자체적으로 들어오는 현금만으로는 적기에 설비투자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메모리 가격 급등에 따라 SK하이닉스 현금흐름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신주발행 방식의 ADR 상장은 기존 주주들의 지분가치 희석을 불러올 수 있다며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5일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상장을 위한 공모 등록신청서(Form F-1)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비공개로 제출했다고 공시했다.

ADR이란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기업 주식을 미국 은행에 예치하고 이를 바탕으로 증권을 발행, 미국 증시에서 달러로 거래되는 대체 증권이다.

새로운 법인을 만들어 상장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SK하이닉스라는 하나의 법인이 발행한 권리가 두 시장에서 동시에 거래되는 것으로 '중복 상장' 규제에 저촉되지 않는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 16일(현지시각) 미국 엔비디아 연례 개발자회의 'GTC 2026' 전시장에서 SK하이닉스의 ADR 상장과 관련해 "한국 주주들뿐만 아니라 미국과 글로벌 주주들에게 노출될 수 있어 더 세계적인 회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세계 최대 자본 시장인 미국에서 투자금을 확보하는 동시에 기업가치를 재평가 받겠다는 것이다.

SK하이닉스는 전체 주식의 약 2.4%를 신규 발행, 이를 미국 은행에 예치한 뒤 ADR을 미 증시에 상장함으로써 15조 원 정도의 자금을 확보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이날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은 정기 주주총회에서 "ADR 발행 방식과 규모는 정해진 것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SK하이닉스가 ADR 카드를 꺼낸 가장 큰 이유는 설비투자금 확보다.

최근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 투자의 규모·방식은  AI와 기술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과거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반도체 제조용 클린룸 1만 평 기준 투자비는 2019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발표 당시 약 7조5천억 원이어삳. 하지만 2025년 10월 말 회사가 완공한 청주 M15X 공장 기준으로는 1만 평에 약 20조 원이 투입돼 설비투자금이 2.5배 이상 증가했다.

게다가 SK하이닉스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만 2050년까지 600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반면 2025년 말 기준 SK하이닉스가 보유한 순현금은 12조5944억 원에 그친다. 기존 현금과 자금 조달 방식만으로는 재무건전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천문학적 규모의 설비투자를 진행하는 게 쉽지 않아진 것이다.

이에 따라 SK하이닉스는 ADR 발행 비중을 점차 늘리며, 이를 통해 투자금을 더 확보하려고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만 TSMC는 1997년 첫 발행한 ADR 발행량이 현재는 10배까지 증가, 총 발생주식 가운데 약 20%가 ADR로 거래되고 있다.
 
SK하이닉스 미국 상장 플랜 구체화, 최태원 '주주가치 희석' 딛고 투자 골든타임 지킨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이 25일 경기도 이천 본사에서 열린 제78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SK하이닉스 >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 역시 향후 꾸준히 ADR 비중을 확대할 것"이라며 SK하이닉스가 미국 시장에서 직접 거래되는 구조를 확보한다면, 이는 유동성 보완을 넘어 글로벌 반도체 밸류체인의 투자 순환망 속으로 직접 편입되는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최태원 회장은 SK하이닉스의 ADR 상장뿐 아니라, 목적형 투자법인(SPC)을 설립해 이를 통한 투자금 확보도 추진하고 있다.

SK하이닉스와 외부 투자자가 지분을 나눠 갖는 목적형 투자법인(SPC)을 설립해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는 것이다. 반도체 공장 건설에 따른 재무부담을 완화하고, 빠르게 대규모 자금을 수혈해 투자 골든타임을 지키겠다는 포석인 것이다.

SK하이닉스는 그룹 지주사 SK의 '손자회사'다. SK가 현행 공정거래법 상 증손회사인 SPC를 만들려면 SPC 지분 100%를 보유해야 하는데, 최근 정부는 반도체 등 국가전략 첨단산업에 한해 지분 제한을 50%로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SK하이닉스의 ADR 상장, SPC 설립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기존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자금조달 방식이란 주장이다.

ADR 상장을 위해 신주를 발행하면, 주식 수가 늘어나면서 기존 주주들의 지분은 희석되면서 가치가 떨어진다는 게 이들의 반대 논리다. SPC 설립은 향후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이익에서 기존 주주의 몫이 줄어든다는 문제가 있다.

SK하이닉스의 미래 현금 흐름만으로 투자 여력이 충분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SK하이닉스 기존 주주 입장에서 지분이 희석화되는 신주 발행 방식의 ADR 상장은 반대한다"며 "미래에셋증권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2026~2028년 189조 원의 설비투자와 수십조 원의 연구개발(R&D) 투자를 집행한 뒤에도 무려 672조 원의 잉여현금흐름이 창출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왜 10조~15조 원의 신규 자금이 필요한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나병현 기자